구약성경 사사기 13-16장까지의 이야기는 사사 삼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3장은 삼손의 출생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사사기가 그러하듯 삼손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통념을 깨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죠.
블레셋의 40년 동안의 압제
이스라엘이 사사 시대에 40년 동안 이방인의 압제를 받은 경우는 가장 긴 경우에 해당하며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제까지 가장 긴 세월은 하솔 왕 야빈이 지배했던 20년(드보라와 바락이 활동했던)이었는데요(4:3). 시간이 갈수록 이스라엘의 타락은 심화되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에 의해 36년동안 고통을 당했는데요. 경상도 크기만한 이스라엘은 이런 이방인의 압제와 통치가 늘 반복되었는데 이번에는 최장기간, 40년 동안 압제를 받게 됩니다. 너무 오래된 속박에 의해 이스라엘은 고통에 대한 감각이 우둔해진 것인지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느낌입니다.
부르짖음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그러나 하나님은 계획은 있었다!
사사기 12장 말미에서 색깔없는 지도자, 입산, 엘론, 압돈의 평화로운 2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들이 잘 했고 잘 못했고를 떠나 이스라엘은 13:1에 또 다시 이방인의 손아귀에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사사기 13장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이스라엘은 이전에는 그래도 고통스런 이방인의 압제와 압박으로 인해 부르짖는 기도의 시간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부르짖음 조차 잃어버린, 잊어버린 모양새입니다.
사사기 13:2-3
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사사기 13장에서 중요한 대목은 이스라엘의 위기는 40년 동안 블레셋 압제가 아니었습니다. 40년이건 400년이건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느냐? 부르짖지 않았으냐?는 사안인데요. 13장에서 아무리 눈 씻고 보아도 이스라엘이 기도했다, 부르짖었다는 대목은 없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대목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사자를 한 가정에 보내셨다는 것인데요. 그 가정은 바로 마노아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노아에게 직접 나타나지 않고 먼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났다는 대목입니다. 마노아에게 직접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노아는 아내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다시 임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사기 13: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삼손의 출생을 위해서 마노아 아내에게, 그리고 또 다시 마노아의 아내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두번씩이나 현현했다는 대목인데요. 그런데, 40년동안 블레셋의 압제하에 있던 이스라엘은 기도하지 않았고 부르짖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3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라고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스런 상황을 차마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으셔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마노아는 의심이 많은 친구인지, 아니면 아내의 말을 보편적인 당시 분위기처럼 무시해서인지, 믿지 못해서 인지 다시 임해달라고 했고 여호와 하나님은 친히 사자를 다시 보내주셨습니다. 마노아의 아내와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가 방문했기 때문에 반응만 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짖지 않는 세대와 부르짖지 않는 시대를 아파하시면서 친히 움직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의 문제는 바로 '불임'이었습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불임은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도 불임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 저주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자녀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마노아의 아내가 임신을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저주가 이스라엘에 임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단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 가정, 마노아라는 한 불임 가정에 오셨다는 것 자체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데요. 바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마노아의 가정이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인해 죄의 저주에 빠져, 40년 동안 블레셋의 압제를 당하는 이스라엘로 대변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부르짖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러나, 부르짖으면 고통의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부르짖음이 없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백성의 고통을 방치하고 무관심해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르짖었다면 그들의 고통의 기간은 더 짧아졌을 것입니다.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부르짖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자기를 찾는 자들을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시간'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목숨은 시간입니다. 시간의 길이입니다. 우리에게 형통한 날도 있을 수 있고, 곤고한 날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형통한 날만 많았으면 좋겠지만 우리에겐 언제나 깜짝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터집니다. 고통의 시간, 곤고한 시간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어두움의 시간을 resize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두움의 시간, 터널의 시간은 언제나 인간에게 필요합니다.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질퍽하게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순간이 길어져선 아니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주시도록, 부활의 체험을 경험하도록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에겐 '부활'이 있습니다. 봄날을 수놓고 있던 벚꽃이 어느새 내린 빗줄기로 인해 떨어져버렸습니다. 봄의 표상인 벚꽃의 만개함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시점입니다. 그러나 내년 봄에도 또 다시 벚꽃은 자신의 자태를 뽐낼 것입니다. 계절의 순환을 통해, 우리는 부활의 의미를 되새김질할 수 있습니다. 매일 밤 우리는 너무나 피곤했던 하루를 뒤로 하고 잠에 빠져 듭니다. 그리고서 아침에 되면 다시 새로운 생기로 일어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매일 잠으로 죽고 우리는 매일 아침 깸으로 부활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부활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하감하시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경감시키시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도록!
이스라엘의 표상, 사사 삼손
40년 동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지만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진 이스라엘인 듯 한데요. 그런 이스라엘이 의인화된 인물 바로 사사 '삼손'이기도 합니다. 삼손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삼손은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뜻에 의해 기적적으로 탄생한 신동(Wunderkind)이었다.
둘째, 삼손은 이스라엘처럼 여호와께 절대적으로 구별된 삶을 살도록 소명을 받았다.
셋째, 삼손은 이스라엘처럼 무분별하고 기회주의적이며 성숙하지 못한 인격을 지녔다.
넷째, 삼손은 지속적으로 이방 여인들에게 끌렸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변함없이 우상들에게 끌렸던 것과 같다.
다섯째, 삼손은 이스라엘처럼 원수들에게 압박과 박해를 당했다.
여섯째, 삼손은 고통이 임하면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일곱째, 삼손은 이스라엘처럼 앞을 보지 못했다.
여덟째, 삼손은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삼손의 부모, 마노아 부부의 문제점
삼손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특별히 사용하시려고 모태에서부터 택하신 자입니다.
삿 13장 5절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그러나 그의 부모의 관심은 온통 아이가 없던 집안에 아들이 태어난다는 사실에만 쏠려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요. 왜냐하면 삼손이 태어났다면 그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더 '나실인의 규례'를 지킬 수 있는 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말 그대로 표류하는 듯한 방탕한 욕망에 남아로 성장했습니다. 부모님의 말에 순종할 줄 모르는 천덕꾸러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대가 사사 시대이니깐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확실히 마노아 부부는 삼손이 태어났다는 것, 불임 가정에 출생했다는 것에만 집중했고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볼 수 있는 혜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계속된다
그의 어머니는 삼손에게 이름을 '삼손'이라고 '작은 태양'(Sunny boy)이라고 지어줬는데요. 이 이름 또한 이스라엘의 어두움을 환히 밝힌 그런 태양같은 존재로 성숙하라는 의미 보다는 현실적으로 볼 때, 태양을 숭배하는 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삼손이 살았던 동네는 마하네단인데, 여기서 몇 킬로미터만 내려가면 벧세메스가 나옵니다. 이곳의 이름을 문자적으로 풀이하면 '태양의 집'이며, 한때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던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삼손의 이름이 여호와가 아닌 태양 숭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시고 그를 축복하셨습니다(24절).
사사기 13:24-25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삼손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하나님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하나님때문에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이라는 정말 위기의 인물을 통해서라도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움직이실 것입니다. 교부들은 삼손을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에 비교하는 것을 즐기기도 했는데요. 삼손에게는 액션영화에서나 자주 볼 수 있는 '폭력, 로맨스와 섹스, 유머'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내러티브의 최고봉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삼손이야기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런 말을 남겼죠.
로마서 5:20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삼손의 죄악이 더하면 더할수록, 이스라엘의 배교와 매춘(성경에는 '우상숭배'를 매춘이라 비유했다)이 성행하면 성행할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넘쳤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 당신의 거룩한 이름과 영광을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공로와 업적과 행적에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손톱에 때만큼도 못한 존재'이지만, 그분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의 이름을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삼손의 이야기는 충분히 다루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금 사사기 13장을 묵상한 것을 포스팅해 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진리는 지금도 통용되는 진리인 것 같습니다. 삼손과 같은, 이스라엘과 같은 우리에게도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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