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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누가복음

마르다와 마리아, 누가복음 10장 38-42절

by Message.K 2022. 3. 14.

이 본문은 너무나 우리가 자주 접했고 잘 알고 설교자가 앞에 서면 무슨 말과 어떤 메시지와 어떤 분위기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빤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솔직히 설교하기가 주저된다. 하지만 내가 감히 용기를 내어 설교하는 것은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마르다와 마리아의 상황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잠시나마 여러분에게 경종을 울리는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음 한다.


 

 

문을 훑어보자면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매지간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성향은 너무나 달랐다. 아무리 자매지간이고 형제지간이라 해도 성격이나 기질이나 성향이 다른 것은 하나님이 우릴 독특하게 창조하신 목적이 있기도 하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부응하는 우리의 소명을 우리는 부르심이라고 한다. 우리의 부르심 안에는 은사라는 귀한 선물이다. 어떤 이는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반면에 어떤 이는 행정적인 일을 관할하는 은사가 있고 어떤 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굳굳하게 일하고 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남들 앞에 서서 리더하는 은사가 있기도 하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다양한 은사를 주셨다. 교회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서로 부대끼다 보면 서로 서로의 은사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는 이 은사를 통해 다른 사람 앞에서 우쭐대거나 교만해하거나 비교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특별하게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마르다를 특별하게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지으신 바에는 후회하심이 없고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사에도 후회하심은 없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러한 은사적인 접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깐 마리아는 말씀을 잘 앉아서 듣는 은사가 있었으며 반면에 마르다는 예수님 접대 위원회 위원장으로 음식준비와 행사 준비의 은사가 있었다는 식의 접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우선순위(priority)의 문제이다. 그 우선순위가 무언가?  

람들은 이 본문을 보면서 다들 자신은 마르다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 또한 그렇게 늘 생각해 왔다. 언제나 우리는 마리아였던 것처럼 말이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한 마디로 평하자면 마르다는 행동지향주의적인 인간형-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이고, 마리아는 말씀중심주의적인 인간형-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이라 할 수 있다. 마르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액션Action, 행동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 Preparation에 총력을 기울였다. 일종의 일중독Workholic적인 증상도 나타난다. 그는 일을 위해 부름받은 사람이기 보다 일에 쫓겨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의 열심은 대단하고 그의 액션은 열정적이며 진지하다. 그는 너무나 일에 빠져 있고 집착하고 있고 몰입해 있다. 일을 하지만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으니 원망과 불평이 나온다. 그리고서 짜증과 스트레스의 물결이 밀려온다. 여러분들 중에 이러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마르다의 심경이 얼마나 절박한지 알 것이다. 이런 사람들, 일에 쫓겨 다니는 사람들은 결국 그들에게 다가오는 또 하나의 심리적인 괴물은 바로 비교comparison대조contrast이다. 마르다의 의식과 무의식을 덮치고 있는 것은 이러한 Complex들이다.

 

 

40-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끌어당기다', 즉(상징적으로; 걱정으로)'마음이 어수선 하다',.  압박하다, 괴롭히다 <눅 10:40>동. to drag around; 1)둘레에 모여들다, 물러나게 하다, 분산시키다 2)은유. 정신적으로 배회하다, 마음이 산란하다 

르다는 너무 바빠서 삶이 황무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선교 지도자의 한 사람인 프레드 미첼Fred Mitchell은 그의 책상 앞에 이러한 표어를 늘 붙여 놓았다 한다.

 “너무 바빠서, 너의 삶이 황무지가 될까 주의하라”

  

 

 

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오늘 하루도 빡빡한 일상들과 업무들과 일과 일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는가? 바쁘게 살아가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마르다처럼 삶이 황폐하게 될까 주의하라. 일에 치여 살지 않기를 바란다. 일에 쫓겨 살지 않기를 바란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나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성공하는 사람들의 8번째 습관 등의 책에서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여러분의 삶의 혁신과 개혁을 위해 코비의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여러분, 우리의 우선순위가 일이 되어선 아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도외시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뒷전에 미룬 채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 뿐만 아니라 많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이러한 고민들 가운데 놓여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우리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그 우선순위를 잘 선택한 여인, 마리아가 여기 있다.  

 

 마리아는 주님 앞에서 앉아 있다. 

'가까이 앉다', 앉다 <눅 10:39>동. to sit down near, at;

  1)옆에 앉히다

  2)옆에 놓다, 가까이 두다

3)옆에 앉다

 

주님 옆에 고스란히 앉아 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마음,내면 세계로부터 외면 세계를 지향할 때 가장 능률적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셨다. 그래서 잠언의 한 기자는 내면 세계의 원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지킬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마리아는 마음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그 마음이 바로 예수님 옆에, para앉아 있었다. 그 분 앞에서 그 분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있다. 마르다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을 위해 일한답시고 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마르다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우선순위가 뒤바뀐 경우였다.

 

 리아는 주님 옆에 앉아 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믿음은 행함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나며 앉음에서 난다. 행함은 믿음의 표현하는 도구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이러한 마르다가 빠진 늪에 빠지고 만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그 분 앞에서 늘 앉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모든 것의 우선순위이다.

 

 

마리아의 앉음은 여유를 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르다 눈에는 낭창함게으름은근 슬쩍 빠짐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군대에서 훈련에서 열외당한 사람은 훈련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 가시이며 눈총을 받기 마련이다. 마르다 눈에는 마리아가 그렇게 보여진 듯 하다. 

 

 

 

퀸시 아담스John Quincy Adam이란 사람은 워싱턴에서 자신이 외롭게 지낼 때 자신의 사랑하는 딸에게 장래 결혼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남편감으로 어떤 사람을 고르는 것이 좋을 지 충고하는 편지를 썼다.

 

 

내 딸아! 너의 남편감으로는 정직한 사람을 구하고 그의 정직함이 계속 유지되도록 해 주어라. 편히 살 수 있을 만큼 부유한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떠한 다른 여건보다도, 존경할만한 도덕적인 성품을 높이 사길 바란다. 다른 어떤 위대함보다 영혼의 위대함을 생각하고, 다른 것의 부함보다 마음을 부함을 생각하라!

 

 

마리아는 영혼의 위대함을 먼저 생각했다. 마음의 부함을 먼저 생각했던 여인이었다. 우리의 일도 중요하고 일의 성취와 열매도 위대하면 좋겠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이 살찌는 것이고 우리의 영혼에 생명력이 넘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의 영혼이 살아 역사하는 것이 우선순위에 앞선다. 마리아가 그러했다. 

 

 

마르다는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이와는 반대로 마리아는 앉아 있다’… 이 말은 아주 중요한 말이다. 그녀는 주님 앞에 앉아 주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다. 주시하고 있다. 말씀을 듣고 있다. 행동하지 않고 그녀는 듣고 있다. Listening!!!

 

 

녀는 주님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마르다에겐 없었다. 마리아에게 있었던 것이 마르다에겐 없었다. 마르다에겐 열심만이, 열정만이, 에너지의 과다한 소비만이 있었다. 준비위원회의 위원장 혹은 여전도회장 같은 역할로 인해 일에 치여가는 마르다에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앉아 있는 것은 일종의 사치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평가는 달랐다. 그는 오히려 마리아를 칭찬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평가에 민감해야 한다. 그 분의 음성을 듣는 일이 없이는 모든 것이 무의미할 뿐이다. 종교신앙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마르다의 그러한 준비, preparation도 어쩌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일은 해야 하고 진전이 있어야 하고 결과가 나와야 한다.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행사가 진행이 되고 예배는 순조롭게 출발하겠지만 하나님이 정작 원하시는 것은 교제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앉아 있는 일이다. 하나님과의 은밀한 만남이 없는 예배Worship은 마르다적인 행동(액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일을 위한 준비Preparation? 아니면 앉음을 위한 Preparation?

그대는 마르다인가? 마리아인가?

 

 

 

우리에게는 분명히 마르다적인 요소와 마리아적인 요소가 병행되어야 하며 필요하고 둘 다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예수님이 매기신 우선순위에 따라 우리가 살아갔음 한다. 

모든 일이 있기 전에 먼저 그 분의 말씀을 들으라! 그 분의 음성에 민감하라! 그 분 앞에 앉아 있으라! 그 분 옆에 앉아 있으라! 예배의 시작은 바로 그 분 앞에 앉아 있는 마리아의 행동으로부터 시작함을 명심하라.

 

오, 하나님! 당신 앞에 더 앉아 있는 마리아처럼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살게 하소서!

오늘 사랑하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영혼의 위대함을 생각했던 마리아처럼,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먼저 자신의 영혼과 인생과 삶을 지혜롭게 챙기고 준비하고 예배하였던 마리아처럼,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시는 주의 사랑하시는 종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렐루야!






*이 본문을 가지고 후에 다시 새롭게 설교한 내용은 아래에 링크를 걸어두었습니다.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로이드 존스가 <목사와 설교>에서 설교에 재탕에 대해서 언급했었죠. 설교자가 자라고 성숙하면서 설교도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설교를 담는 그릇에 더 담을 것이 많을 수도 있고 그릇이 더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8-42절, 너의 삶이 황무지가 될까 주의하라

*.신약성경 누가복음 10장 38-42절의 본문을 가지고 <너의 삶이 황무지가 될까 주의하라>란 주제로 한 설교입니다. 제가 시골에서 학창시절을 보낼 때 전도사님으로부터 들은 에피소드이다.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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