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 초반부는 삭개오사건을 다루고 있다. 삭개오는 세상적으로 부자였지만, 그의 영혼과 마음은 죽어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희망은 예수님을 향한 갈급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천국은 바로 갈급한 자의 것임을 오늘 설교를 통해 깨닫기를 원한다.
오늘 우리는 여리고로 들어가서 우리에게 익숙한 한 사람, 삭개오를 만나게 됩니다. 삭개오는 표면적인 죄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삭개오의 직업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평이 좋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평판으로 좋은 직업이다, 나쁜 직업이다로 분류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런 기준으로는 평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매국노와 같은 사람, 로마의 앞잡이로 세금을 거두는 세리중에서도 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눈에는 더욱 죄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사람을 예수님께서 만나주신 장면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를 설명하기를 2절에 세리장, 부자, 그리고 3절에서 키가 작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삭개오를 부자라고 설명하는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의 의도는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18장 18절 이후에서 잠깐 보면 어떤 관리가 등장하는데, 이 관리에게 예수님은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물질이다. 그 물질을, 물질의 주인되신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아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네가 가진 물질(재산)을 다 팔아 나눠 주고난 후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관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그 관리는 굉장한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쉽게 정리할 수 없을 정도의 재산을 보유했나봅니다.
성경에서도 18:23에서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고 했습니다.
When he heard this, he became very sad, because he was a man of great wealth. very wealthy, very sad 라고 말합니다. 큰 부자였기에 큰 슬픔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난 이 일화를 이 18장 후반부를 지나, 19장에 넣으신 것은 의도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18장에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죄인 삭개오, 그도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그 삭개오를 향해 구원을 선포하시는 장면은 누가복음을 계속 읽어가는 성경을 읽는 독자들인 우릴 놀라게 만듭니다. 9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예수님의 이러한 선포는 부자요, 세리장이었던 삭개오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던 맹인에게 구원과 치유를 허락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만나기위해 적극적이었던 삭개오에게 구원과 회개의 기회를 부여하시고 구원까지 선물을 주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갈급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대조적으로 드러납니다. 모든 것이 형식이고, 종교적이며, 그 종교생활을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확보하고, 사람들의 이목과 시선에 노예가 되는 사람들! 사람들의 칭찬과 갈채에 민감하며 또한, 다른 사람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7절에 보면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렸다고 했습니다. 수군거리기를 좋아하는 바리새인들! 삭개오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환영하기 위해 냉큼 수그렸습니다. 자존심을 벗어던진 삭개오! 나무에 올라갔다는 것, 그 자체가 삭개오의 적극성과 겸손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이 굉장히 적극적이었다는 것! 굉장히 비판적이고 거부하는 바리새인들과는 대조적인 이 한 사람! 그리고 삭개오의 구원은 구원의 결과로, 행위의 열매를 가져왔고, 생활의 회개로 이어졌습니다. 8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성경은 읽는 것만으로도 복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갈급한 자가 천국을 선물로 받을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는 자, 자기의 것을 버리는 자,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자라는 것을 부분적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오늘 죄인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거듭 태어나는, 변화의 삶을 내디딘 삭개오의 삶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삭개오를 통해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세상을 향해 잃어버린 자, 하나님을 향해 잃어버린 자, 하나님은 그들을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자신을 낮추고 우리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그분의 주되심을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만으로 우리의 영혼과 인생의 부족을 채울 수 있다고 고백한 어거스틴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길 소망합니다. 천국은 삭개오처럼 갈급해하는 강렬한 사모함이 있는 자의 것임을 기억하자. 우리는 더 나아가 삭개오 보다 더 강력한 변화가 삶 가운데 넘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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