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누가복음 10:17-24의 본문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기뻐하는가>란 주제로 설교한 포스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일꾼worker이기 이전에 예배자Worshiper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겼음 좋겠습니다.
칠십인이 파송되어 사역들을 훌륭하게 감당하고 돌아왔습니다. 귀신들이 떠나가고 사탄이 항복하고 놀라운 권능과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기 때문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내가 과연 이런 일을 했단 말인가?’ ‘내가 무엇이기에 이러한 기적을 베풀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오히려 더 놀라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모든 권세는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19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시면 제자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알아서 해야합니다. 물론 성령께서 도와주시겠지만. 그런데 주님은 이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아주 맛뵈기만 보여준 것이 아니라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이 가진 것은 물건을 살 때 맛뵈기로 보여주는 샘플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20절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자기들로부터 능력이 나가고 있는 것에 기뻐하였지만 예수님은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고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전도자로 나아갈 때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제자,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사탄의 종(노예)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역자로서 주님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영원토록 즐거워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단 한 가지 사역, 즉 사람들을 구출하셔서 하나님의 백성 삼아 예배자로 만드는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한 주간 자신이 한 일로 기뻐하는 자가 아니라, 예배의 자리로 나올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음을 성도들과 함께 기뻐하는 자입니다.
종종 우리는 사역을 하면서 사역의 기쁨에 도취될 때가 있습니다. 나의 재능과 은사가 발휘되어지고 사람들로 그로 인해 즐거워하고 감동받을 때 굉장한 자기 자랑과 교만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예배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사탄이 왜 타락했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던 천사중의 천사, No2였던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자신을 찬양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예배자가 아닌, 타락한 예배자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역자이기 이전에 우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어로 더 다가오는 문장이 있습니다. Worker이기 이전에 Worshiper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꾼만 되고, 주님의 예배자가 되지 못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버림을 당할 것입니다. 왜 주여 주여라고 그렇게 열심히 나를 불렀으면서도 나를 예배하지는 않느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과 이사를 베풀고 많은 권능과 사역을 감당하였지만 왜 너는 나를 예배하지 않느냐? 일만 하였지, 예배는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 나라에서는 사역은 필요없다. 예배만 거기에 남을 것이다. 그런데 왜 너는 예배자가 되지 못했느냐? 왜 주여 주여 외치기만 했지, 내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흘려버리기만 하느냐고 책망하실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하늘나라에 기록된 것,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호적에 기록되어졌다는 것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예배하는 우리가 되었음 좋겠습니다.
문득, 우리는 사역을 감당하면서 하나님과 예배하면서 나누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얼마나 친밀합니까? 대학시절, 하나님과 교제하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도 아닌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를 하느냐고?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M.T도 가지면서 교제를 하는데, 하나님?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무슨 교제를 나누는가?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선배들이, 목사님, 간사님들이 그렇게 충고하고 지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돌아보니, 정말 요즘 시대가 하나님과 교제하기가 힘든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정말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가 정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수많은 멀티미디어와 스포츠와 런던 올림픽과 우리의 일상의 자잘한 일들로 인해 뭍혀 버릴 하나님과의 교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부끄러워하면 나도 너를 부끄러워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주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상 주님과 함께 큐티를 하고, 성경을 읽고, 독서를 하고, 기도를 하면서 성령충만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누는 것에는 얼마나 인색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역자입니다. 사역을 나름대로 다들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열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사역, 우리의 사역의 열매, 그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존재를 보시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자신의 호적에 올려놓으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물건취급하듯이, 쇼핑해서 책 한권 구입해서 책꽂이에 꽂아둔 것처럼 우리를 사물로 취급하신 것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우리와 영원토록 교제하기 위해서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교제는 없고 온갖 다른 것이 난무하고 있는 현실은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기뻐합니까? 예배로 기뻐합니다. 웨스터민스터 요리문답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인간의 제일 첫째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즐거워한다는 것은 Enjoy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포츠나 음식이나 취미나 무언가를 enjoy하는 것!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엔조이하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엔조이하는 그 방편이 바로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배를 회복하십시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진정한 교제를 회복하는 이 여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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