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장 18-23절의 본문을 가지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에 대한 설교문입니다. 사가랴에게 임한 불가능한 세례요한의 출생은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동시에 부부의 기도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만약 1세기에 책을 출판하는 방법이 오늘날과 같았다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서점의 같은 서가에 문고판으로 나란히 꽂혀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하는 것처럼, 사도행전을 쓴 누가가 쓴 누가복음 또한 성령의 역사로 가득 차 있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기적의 역사를 써가는 성령의 기록이 세례요한의 출생부터 시작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은 또한 저작 동기와 목적이 분명한 책입니다. 데오빌로(신의 사랑을 받은 자라는 헬라어) 각하라고 하는 것을 보아 로마의 고위관리로 생각될 수 있는 이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정확히 알려 그의 믿음을 확정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누가는 그의 후원으로 복음서를 필사하고 성도들에게 복음을 글로 보급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복음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경험과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처방을 내리는 사람이 바로 의사입니다. 누가복음은 의사인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의사인 누가가 비합리적이고 신비주의적이고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가장 합리적인 의술가가 가장 비합리적인 성령의 기록을 썼다는 것! 어쩌면 이러한 방식이 더 사람들에게 납득될만하고, 수용할 만한 접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의사의 눈으로 본 정확한 사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은 그 기적, 성령의 기적을 기술하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먼저 세례요한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신실한 제사장, 성직자였고, 6절에서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부의 불가능한 문제, 현실적인 불가능은 바로 불임 즉 아이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상황을 같이 읽습니다. 18절입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실제로 이 부부가 아이를 갖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인 벽이 컸고 그것은 그들에게 불가능한 일로 보였습니다. 부부는 불가능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 가브리엘이 등장하여 이 부부에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19절에 무어라고 소개합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불가능 앞에 서 있다면, 이 천사는 자신을 소개할 때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고백합니다.
천사는 이야기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불가능 앞에 서 있는 부부에게 하나님의 좋은 소식, 그 좋은 소식을 바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소식! 그 좋은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 가브리엘은 등장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에겐 과연 어떤 불가능이 있습니까? 나름대로 한번 묵상해보십시오. 불가능을 이유하면서 우리도 사가랴처럼 ‘나는 늙었습니다. 남자로서 생산능력에 의문이 드는 나이이고, 아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변명하고 핑계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핑계와 합리화는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전혀 엉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나의 불가능은 하나님의 가능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수 많은 불가능을 한 번 적어보시고, 그 불가능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유도 적어보십시오. 우리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무수한 불가능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한번 믿음의 눈을 가지길 소원합니다. 우리는 불가능 앞에서가 아니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가능 앞에 서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세례요한의 탄생을 위해 하나님은 불가능의 태를 여시고 가능의 생명을 준비하시고 계십니다.
친애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불가능한 현실과 문제와 상처와 아픔 앞에 서 계십니까? 아니면 그 불가능을 하나님의 가능으로 바꾸는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서 계십니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부부의 불가능의 저변에는 깊은 기도가 충분하였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천사는 사가랴에게 이야기하길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고 말씀합니다. ‘너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벌어지는 기적, 가능, 불가능을 바꾸는 가능의 기적은 기도에서 출발되어졌습니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의인의 간구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금 우리는 기도에 관한 명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이 이스라엘의 의로운 부부, 이 가정에 역사하심으로 누가복음의 성령의 기적은 출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붙잡고 있는 불가능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하나님의 가능을 선택하며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귀한 동역자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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