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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마가복음

마가복음 16:14-20, 불가능한 전도는 없습니다

by Message.K 2023.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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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16장의 본문을 토대로 '불가능한 전도는 없습니다'란 주제로 전도설교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세 가지로 정리하면서 설교했는데, 먼저 나폴레옹의 이야기를 서두로 하여 세 가지 주제를 설교하고 마지막에는 전도에 대한 실화(예화)를 들면서 도전한 내용입니다.

 

 

마가복음 16:14-20, 불가능한 전도는 없습니다
마가복음 16:14-20, 불가능한 전도는 없습니다

 

 

 

 

나폴레옹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나폴레옹 왈 ‘내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 Nothing is impossible in my dictionary라고 했던가? 웰링턴 공작은 나폴레옹이 전쟁터에 있고 없고 차이는 병사 4만 명의 가치와 맞먹는다고 했다. 그만큼 나폴레옹은 위대한 인물이었다.

  나폴레옹에 대한 책이 60만종이 넘는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가 프랑스와 유럽에 미친 영향력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애리스테어 혼은 나폴레옹에 관한 저서를 여러 권 썼는데, <나폴레옹의 시대>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어떤 시기가 나폴레옹 시기인가를 놓고 고민을 할 정도이다. 그는 생몰연대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의 목표는 단 하나다. 모두 다시 합치고 모두 화해시키고 모든 증오를 잊고 모두를 하나로 모으고 여러 이질적인 요인들을 통합하여 새로이 하나의 프랑스와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위원회를 결성하여 대혁명의 원칙과 성문법과 관습법에서 보존해야 할 부분들을 하나의 문헌으로 작성했다. 모두 102번의 법률 회의에서 전쟁을 하느라고 바쁘신 몸인 나폴레옹은 57번 이상을 참석했다. 그가 프랑스 민법전(속칭 나폴레옹 법전)에 들인 공력을 잘 보여주는 숫자이다.

 

“소설 같은 나의 생애여! 내가 죽으면 나에 대한 연민이 물결칠 것이다”

 

1815년 6월 배신자 푸셰(푸셰 역시 자신이 추대한 루이 18세로부터 국외 추방 명령을 받는다.) 주도로 프랑스는 나폴레옹을 버렸다. 하지만 민중들의 지지와 권력을 되찾자는 측근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나폴레옹은 말메종으로 향했다. 워털루 전투 이후 마지막 망명길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곳을 방문해서

 

“나의 불쌍한 조제핀! 그렇게 사랑하던 장미를 꺾으며 길을 걷는 그녀의 모습을 지금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라고 탄식했다. 나폴레옹은

 

“내 안에는 다른 두 인간이 있다. 머리를 가진 인간과 가슴을 가진 인간”

 

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의 가슴을 가장 강력하게 차지하고 휘저어 놓은 여인은 조제핀이었다.

퇴락한 나폴레옹은 애당초 미국으로 향했으나 영국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영국 선박에서 나폴레옹은 대접을 잘 받았다. 나폴레옹은 영국의 런던 근교에서 감시는 받겠지만 안락한 생활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탄 벨레로폰 호가 영국 플리머스에 닻을 내리자 모든 상황은 급변했다. 통신이 두절되었고, 사람들은 나폴레옹의 짐을 뒤져 귀중품까지 약탈해갔다. 프랑스 황제는 영국의 전쟁포로, 혹은 유배 정치인으로 전락했다.

 

 

  나폴레옹은 8월 9일 노섬벨랜드 호를 타고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향했다. 대서양 남쪽에 버려진 섬, 바다와 같았던 나폴레옹은 작은 섬에 유배되었다. 10월 14일 나폴레옹은 라스 카즈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 섬에서 자신의 회고록을 작성할 생각을 하고 눈앞에 보이는 세인트헬레나 섬을 마주했다. 유배 생활 동안 그의 회고록을 정리하던 다정한 라스 카즈도 강제로 떠나야 했다(이후 라스 카즈는 <세인트헬레나 회고록(1823)>을 남겨 나폴레옹 연구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프랑스의 작가 샤토브리앙은 <저승 비망록(1841)>으로 반 나폴레옹의 선두에 섰다).

  나폴레옹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이 외로운 영웅에게 하나, 둘 등을 돌렸다. 1820년 7월 나폴레옹의 병세는 완연해졌다. 유럽 전역을 안방 드나들 듯 하던 강인한 한 남자는 환자가 되어 이렇게 말했다.

 

 “침대가 내게 아주 달콤한 공간이 되었소. 이 세상의 어떤 보물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요. 얼마나 엄청난 변화인지. 내가 얼마나 쇠락했는지 …,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면 힘겹게 노력해야만 한다오 … 내 근력과 사지가 나를 버렸고 … 나는 식물처럼 되어 버렸소. 이제 사는 것이 아니오.”

 

  그는 아들인 나폴레옹 2세에게 역사를 깊게 성찰하고 공부할 것을 당부했다. 자신처럼 살지 말고 평화롭게 유럽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바다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1821년 5월 5일 새벽 5시 나폴레옹은 전설의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후, 이 영웅의 죽음에는 독살설 등 여러 가지 추측들이 어지럽게 떠돌아 다녔다.1)

  

불가능이 없다고 했던 인물, 지상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60만종의 글로 나올만큼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그 또한 쇠락하는 몰골을 보여주는, 불가능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불가능한 한계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불가능한 것, 그것은 인간이 가진 운명인지도 모른다.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길면 칠십~팔십, 맥시멈 100년 안에 우리의 생이 끝이 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

 

Impossible is everything! not nothing!

 

이라는 의미이다.

 

 

 

불가능한 것 천지가 이 세상이다

불가능에 도전하기 위해 미국의 애리조나에 있는 앨코어회사에서는 냉동인간 100구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불치병의 환자들이 후에 과학이 발달하면 다시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1구당 1억이고 추가비용은 더 들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불치병을 향한 인간의 목마름, 불가능과 불멸을 향한 인간의 도전!

 

 인류는 끊임없이 이러한 도전을 감행했다.

 이러한 인류와는 달리 또 다른 도전을 감행한 분이 있다. 그 사람도 역시 불가능에 도전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는 그 불가능의 고지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가 뛰어넘었던 고지는 바로 죽음, 즉 사망의 관문이었다. 사람들은 그 관문을 통과하면 다시 이 생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사람은 그 죽음의 관문을 넘고서 다시 이 땅에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고 가까스로 죽다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부활한 인간이 있었다. 

 

그 분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사실이 믿기는가?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자신을 보이셨다고 9-11절에 나온다. 마리아는 이 사실을 믿었다. 왜냐하면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이야기한 것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고,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고 11절에 말한다. 또한 길을 걸어가던 12-13절에 등장하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목격하고는 또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만 남은 제자들도 역시 믿지 않았다고 말한다.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에 가능하다고 믿지 않으려는 마음!

 

 오늘 저는 여기서 세 가지 정도 같이 테마를 나눴음 한다. 불가능이 팽배한 세상 가운데, 돈이 많으면, 엄청난 자본이 있으면 오히려 모든 불가능도 가능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만큼 물질주의,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물질이나 돈이나 자본이 아닌, 황금이 아닌 오직 신적인 능력으로 불가능을 비욘드하여 가능케했던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앞에서 과연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열한 제자들도 믿지 않았다.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사용된 두 단어, 아피스티아, 불신앙, 불충성 이란 말과 스클레로카르디아, 믿기를 거절하는 완고한 마음, 둔함 은 예수가 전에는 그의 제자들에게 사용한 적이 없는 단어들이다. 예수님의 책망은 지금 부활이 성취된 상황 가운데서 벌어지기 때문에 이 단어들은 부활 후에 제자들의 불신적 상황을 강하게 책망하기 위해 사용된 특별한 단어들인 것이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같이 주목해보고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을 3가지 정도 나누길 원하는데,

 

 

 

첫 번째는 ‘믿음’이다

우리에게는 불가능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돈으로 가능하지 않은 인생의 궁극적인, 본질적인 문제들 앞에 인간은 절대자이신 하나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시기 위해 친히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셨다는, 사망 권세를 정복하셨다는 불가능한 사건을 믿는 가능의 믿음이 필요하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는가? 예수님은 열 한 제자들, 3년 동안 제자훈련 빡세게 했던 그들에게, 보여줄 것 다 보여주고 나눠줄 것 다 나눠주고 동고동락했던 그들, 제자훈련의 마지막 단계인 십자가까지, 자기가 죽는 것까지 다 보여줬는데도 믿지 못하는 그들을 향하여서 아피스티아, 스클레로카르디아라는 새로운 단어들을 사용하시면서 책망하고 계신다.

 

사랑하는 청년대학부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가? 보지 못한 것을 믿는가? 2천년 전의 그 사건을 믿는가? 그 사건을 신화나 레전드가 아니라 설화가 아니라, 사실Fact로 받아들이는가?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바로 믿음이다. ‘보지 않고 믿는 자에겐 복이 있다’ 하셨다.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식당에서 우연챦게 한 번 보는데 그 유가족들의 눈물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져서 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 텔레비전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리곤 했다. 죽음은 이처럼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하는 깊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그 사람의 부재로 인한 수많은 파장들과 피해, 정신적인, 영적인, 경제적인, 관계적인 상실을 가져오게 된다. 죽음! 목사님께서도 아침에 말씀하셨지만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정말 그런 것 같다.

 

메멘토 모리

                          이어령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기저귀를 차고 나온다.

아무리 부드러운 포대기로 감싸도

수의(壽衣)의 까칠한 촉감은 감출 수가 없어.

 

잠투정을 하는 아이의 이유를 아는가.

한밤에 눈을 뜨면

어머니 숨소리를 엿듣던

긴 겨울밤

어머니 손 움켜잡던

내 작은 다섯 손가락.

 

애들은 미꾸라지 잡으러 냇가로 가고

애들은 새둥지 따러 산으로 가고

나 혼자 굴렁쇠를 굴리던 보리밭 길

 

여섯 살배기 아이의 뺨에 무슨 연유로

눈물이 흘렀는가.

너무 대낮이 눈부셨는가.

너무 조용해 귀가 멍멍했는가.

 

굴렁쇠를 굴리다 흐느끼던 눈물

무엇을 보았는가.

메멘토 모리

 

훗날에야 알았네.

메멘토 모리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 돌을 쌓아 천년가는 성과 도읍을 세우는 까닭도 생명이 쉬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2) 메멘토 모리! 그리고 메멘토 크리스투스!

  

불가능한 전도는 없습니다.

 

첫 번째,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

 

 

 

두 번째, 순종이 필요하다

 주님은 제자들의 불신과 완악한 마음을 꾸짖으시고 나서 바로 오더, 명령을 주신다.

우리 다같이 15절을 읽어보자!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면서 그 믿음 이후에 명령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하고 경험한 증인들!-법정에서의 증인들의 고백과 증언처럼-그 증인들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고 명령하신다!

  제자들은 이제 주님의 지상명령을 순종하면 된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것을 보았다. 목격하였다. 이제 그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가 살아나셨고, 죽음을 정복하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을 보았으니 그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된다. 그 부활은 예수님만의 부활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가 공유할 선물인 ‘부활’인 것이다. 이 사실을 전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전하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구두로 말하고 전하는 것이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다. 책으로 펴내는 것도, 신문으로 찍어내는 것도, 호외요 호외라고 하면서 전단지를 뿌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직접 발벗고 나서서 인격과 인격이 부딪히면서 복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메멘토 크리스투스를 전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셨다. 이것은 고전 1:21의 말씀처럼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는 것이다. 전도의 미련한 도구를 통해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다. 전도를 하다가 돌에 맞을 수도 있었고 매를 맞을 수도 있었고 욕을 당할 수도 있었던 제자들이었고, 바울이었고 신약의 많은 사도들, 제자들이었다. 그러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이 명령 앞에 우리가 내려야 할 결단은 순종이다.

 

 

  전도축제가 선포되고 우리가 태신자를 작정하면서 전도의 포커스를 두고 우리 교회가 나아가고 있다. 청년대학부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고, 한계도, 부족함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가 하나님의 사역과 사명을 감당하는 필드 앞에서 우리도 태신자를 작정하고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순종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 주님은 다짜고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다.

 

(롬 1:14)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은 지금 여기서 말하기를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임을 분명히 의식하면서 자신은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자’, ‘복음의 채무를 지고 있는 자’라고 밝히고 있다. 그가 이렇게 대상들을 나열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복음을 전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복음전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선심 쓴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지 않았다. 바울은 어떻게 이것을 ‘빚’이라고 했을까? 빚을 져 본 사람은 그 사람의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알 것이다. 바울은 이런 빚진 자의 마음을 복음에다 적용하고 있다.3)

  여러분에게 주어진 복음의 빚이 분명히 있다. 바울은 고전 9:16-17에서 이렇게 말한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빚진 자의 사명, 빚진 자의 의무라고 바울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라고 자신을 표현했고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통로로 자신의 사명을 인지했다.

 

  사랑하는 청년대학부 여러분!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이 말씀 앞에 순종하자. 여러분이 주님 앞에 순종함의 훈련을 감당하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도 못하면서 여러분의 윗상사나 사장이나 선배들이나 교역자에게 순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존 비비어의 순종을 보면서 충격적인 대목이 있었다.

 존 비비어 목사는 부목사로 8개월 동안 굉장한 청소년 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 없이 담임목사님이 그 행사를 취소하라고 했다. 8개월동안 재정과 시간과 노력과 땀과 모든 것이 총망라된 그 프로젝트를 말이다. 존 비비어 목사는 완전히 피가 거꾸로 쏟는 느낌이었다.

 

 주님은 존 비비어가 모든 걸 다 터뜨릴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말씀하셨다.

 

“존, 나는 너를 이 교회에 데려와 그 목사를 섬기게 했다. 내가 그 목사에게 맡긴 사역에 연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 사람의 손발이 되라고 너를 불렀다. 내가 이 교회 사역 책임자로 세운 사람은 단 한 명이다.”

 

  그 분은 모세를 생각하게 하셨다.

 

“모세는...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다”(히 3:5)

 

  ‘존, 내가 너로 이 목사를 섬기게 한 그 기간에 대해 심판 날 네가 내 앞에서 맨 먼저 할 일은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구원으로 인도했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네 위에 세운 목사에게 얼마나 충성했느냐 하는 것부터 심판받을 것이다.’

 

 

  그 분의 다음 말씀 위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 사실 네가 올랜도에 있는 학생들을 모두 구원하더라도, 내가 네 위에 세운 목사에게 복종하고 충성하지 않는 것 때문에 심판받을 것이다.”

 

분열이란 영어는 division이다. di + vision 비전이 두 개란 뜻이다. 오늘날 교회와 가정이 분열되는 이유는 비전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머리가 둘인 기관은 분열될 수밖에 없기에 하나님은 지도자를 세우신다.6)

 

  주님의 비전에 제자들이 순종하기를 원했고 그들이 순종함으로 전 세계의 복음화가 이뤄졌다. 만민에게...헬라어는 ‘온 창조 세계에’로 되어 있다. 온 천지 만물, 우주 만물이 그리스도의 복음, 메멘토 크리스투스해야 한다. 모든 피조물은 복음을 들을 필요가 있단 말이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교회의 사명 앞에 순종하라!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다’

 

-순종하는 마음이 예배 수천 번, 수백 번 보다 낫고 말씀을 잘 듣고 청종하는 것이 물질적인 희생과 예물과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한 말씀을 메멘토!

 

 

 

셋째, 의탁이다

결과를 주님께 맡기는 마음, 자세이다!

  믿음이 있고, 명령이 있은 후 순종이 있었다. 우리는 복음전도의 사명에 순종하였다. 행동하였다. 실천하였다. 그러면 그 후에 모든 결과를 주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의탁하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11장: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의 복음전도의 사명이 무겁고 힘든 것이라면 주님은 우리에게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은 분명히 수고한 무거운 우리의 짐을 가져가시고 주님의 멍에를 주실 것인데, 그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했다.

 믿고 맡기면 믿고 세례 받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며 또한 믿는 자들에게는 기이한 표적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귀신이 떠나가고 새 방언으로 말을 하며 어떤 재해나 사건사고로부터도 치유함을 받는다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다. 제자들은 불신과 완고한 마음으로 14절에서는 주님을 믿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20절에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승천하신 그리스도! 그리고 나타나지 않지만 성령의 강림하심! 그러할 때 결과는?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고 믿음으로 나아가고 맡길 때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말씀을 표적으로 더욱 확실하게 증언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표적은 무언가? Sign이다. 우리가 식당가서 카드 긁으면 사인하라고 한다. 우리가 돈 쓴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주님께서 복음을 전한 곳에서 알게 모르게 하나님께서 싸인을 해 주신다. 카드는 우리가 사인을 하는 것이지만, 복음전도는 하나님께서 싸인해주시는 영광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복음을 전하였다면 모든 결과를 주님께 맡기고 의탁하라!

 

고전 3장: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불가능한 전도는 없습니다!

  •     첫 번째, 믿음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라!
  •     두 번째, 순종이다. 믿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사명에 순종하라!
  •     세 번째, 의탁이다. 복음을 전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라!

 

이 보다 더 좋은 예화가 있으면 그걸 하겠다! 듣지 못한 무리들을 위해 한 번 더!

 

 

 

CCC 전도훈련의 전도와 기도 그리고 몇십 년 후의 결과!

유정옥씨라는 한 사모님의 이야기이다.

대학시절 CCC훈련을 받는 가운데 전도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그날 따라 주어진 미션이 전도를 해서 영접을 시키든지 아니면 그 사람의 신상정보를 다 받아오는 것까지 해야 미션이 완수되는 것이었다. 전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어슬렁거리다가 결국 오후의 약속시간은 다가오고 해서 결국 버스정류장에서 웬 청년을 만나서 자기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렇게 해야 자기가 미션이 완성된다는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하면서 다소 비굴하게까지 하면서 설명을 해서 결국 그 청년의 신상정보를 받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가 보니 그 미션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채 그냥 빈손으로 온 친구들도 많이 있어서 정말 자기가 그렇게까지 전도를 해야 했었나 싶을 정도의 자책감과 자괴감까지 들면서 괜히 자신에 대한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날 전도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저녁시간에 같이 기도하고 몇개월 동안 그 청년을 위해서 기도하고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수십년이 지난 후 우연찮게 그 청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청년이 그렇게 그날 그런 복음전도의 시간이 지나고 몇 개월 우연찮게 교회를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서 교회를 출입하게 되었는데, 그 날 이후로 계속 믿음생활을 하게 되었고 결국은 신학을 하여 지금은 목사님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태신자 작정: 사랑교구가 이 시간 했음 한다! 복음의 빚진 자로써 작정은 우리가 하지만, 씨는 우리가 뿌리지만 나게 하시는 분은 자라게 하시고 열매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이 시간 노란 종이에다 여러분의 태신자를,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적어보자!

 


 

각주

1) http://navercast.naver.com/worldcelebrity/history/273

2) 이어령, 지성에서 영성으로(경기: 열림원, 2010), 33-36.

4) 예를 들어, 고전 4:1-2; 갈 2:7; 살전 2:4; 딤전 1:11; 딛 1:3.

5) 존 스토트, 66-67.

3) 사실상 빚을 지는 데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첫 번째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제 삼자로부터 어떤 사람을 위해 돈을 받게 되는 경우다. 예를 들어, 내가 당신에게 1,000파운드를 빌렸다면, 그것을 갚기까지 나는 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친구가 당신에게 주라고 내게 1,000파운드를 주었다면, 나는 그 돈을 건네주기까지 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전자의 경우에 나 자신이 돈을 빌림으로써 빚을 진 상태가 되었다. 후자의 경우에 당신에게 주라고 1,000파운드를 맡김으로써 내가 당신에게 빚을 지도록 한 사람은 바로 당신의 친구다.

   이 두 번째 의미에서 바울은 빚을 지고 있다. 그는 로마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갚아야 할 어떤 것도 빌린 적이 없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게 그들을 위한 복음을 맡기셨다. 그는 자신의 서신서들에서 서너 번에 걸쳐 자신이 ‘복음을 맡았다’고 쓴다.4) 이 비유가 부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청지기직(또는 수탁자직)에 대한 것임이 사실이지만, 기저에 있는 사상은 똑같다.5)

6) 존 비비어, 순종, 윤종석 역(서울: 두란노, 2009), 30-32.

 

 


오늘은 마가복음 16:14-20의 본문을 가지고 '불가능한 전도는 없습니다'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인데, 이를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한데, 첫째는 믿음이요, 둘째는 순종이요, 셋째는 의탁이라는 것을 같이 나눠 보았습니다.

 

 

 

로마서 1장16-17절,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후문맥: 이신칭의의 교리(V.16-17) 개요: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15절). -왜냐하면(gar)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16a절). -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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