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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마가복음

마가복음 1:9-11,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다

by Message.K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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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장의 본문 중에 9-11절의 본문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이 나타나는데, 이 구절에 대한 해석과 의미를 살펴보면서 설교를 나눠보고 영적인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1:9-11,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다
마가복음 1:9-11,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다

 

 

[막 1:9-막 1:11] 본문

(9)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10)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11)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가는 세례 요한의 세례를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나서 바로 아무 설명도 없이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하늘로부터 난 소리와 비둘기의 이중적인,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시청각적 표징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즉 예수님의 정체를 확증해 주었다.

예수님 세례의 독특성-우리가 오늘날 받는 세례와는 현저하게 다른-을 보여 주고자 한 마가의 목적을 성취시키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 분명히 누구이신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선언이다. 요한을 통해서 세례를 받으신 것을 포함해서 예수께서 하시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니었다. 그의 진정한 본성이 드러난 것이었다. 예수님의 세례는 그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서 그분이 죄된 인간과 동일시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더 나아가 마가는 즉각적으로 예수님의 시험에 대한 언급을 덧붙임으로써 자신이 말하고자 한 바를 강조하고 있다. 이 시험 또한 죄를 짓지 않았으면서도 예수께서 자신을 죄인과 동일시하신 예이기 때문이다.

 

 

9절 해석: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다가오시는 분은 예수로 명시되었다.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었지만, 어린 시절 나사렛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셨다(마 2:22-23). 나사렛은 갈릴리의 조그마한 도시로서 갈릴리 바다와 지중해 중간쯤에 있다. 이 도시는 독립투쟁으로 명성이 자자했기 때문에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멸시와 회피의 대상이었다. 나사렛은 예수님과 같은 위대한 왕의 고향으로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향조차도 그분의 겸손하심과, 일반 백성과 일치됨을 드러내고 있다. 나사렛은 상업의 교차로였기에 예수께서는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도 교류하셨을 것이다(참조, 요 1:46). 요한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요한의 세례가 죄로부터의 회개를 위한 것이었다면 예수님은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 가장 위대한 선지자(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죄악됨을 고백하고 회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를 인정할 필요가 없는 분이었다. 그분에겐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요 8:46; 고후 5:21; 히 4:15; 요일 3:5).

 

예수께서는 죄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세례를 받으셨다.

  • 1-이사야나 에스라, 느헤미야처럼 나라를 대신해서 죄를 고백하신 것이다.
  • 2-하나님의 사명을 성취하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전개하기 위해 모든 의를 이루신 것이다.
  • 3-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함으로 자신이 하실 공사역의 막을 올린 것이다.
  • 4-요한의 사역을 지지하신 것이다.
  • 5-하나님의 회개하는 백성들, 즉 죄인들과 자신을 일치시킨 것이다.
  • 6-우리에게 좇아야 할 모범을 보여 주신 것이다. 요한의 준 회개의 세례는 교회에서 받는 그리스도인의 세례와는 다르다. 바울은 요한의 추종자들에게 다시 세례를 받도록 했다(행 19:2-5).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은 죄로 인해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으셨지만, 아버지께 대한 순종의 행위로서 세례를 받아들이셨고 하나님도 이를 승인하셨다. 우리도 이와 같은 겸손과 하나님께 대한 헌신 그리고 종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10절 해석: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신 것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요한에게 보여주는 표지이었음이 분명하다. 요한은 메시아가 오실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기적적으로 하늘이 열리기 전까지는 언제 메시아가 모습을 드러내실지 모르고 있었다.

 

[요 1:29-요 1:34]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30)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31)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함이라 하니라(32)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33)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34)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성경은 예수님 외에는 하늘이 갈라지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건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는 사건은 요한에게 메시아를 드러내 보여 주었다. 하늘이 ‘찢어지는’ 혹은 ‘갈라지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인간으로 현현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인간 세계로 개입하심을 나타낸다. 이것은 마치 하늘을 말아 올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보좌를 계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사 63:19-64:2, 한글 개역은 하늘을 ‘가른다’로 번역함). 또한 성령의 강림과 비둘기 그 자체는 이스라엘에게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를 보여 주었다. 창조 때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창 1:2). 대홍수 이후 비둘기는 노아에게 물이 빠졌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창 8:8-12). 성령의 강림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상징한다. 메시아의 도래는 성령 강림을 통해 표시될 것인데, 이 경우엔 비둘기 형태로 강림하신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으셨을 것이다(사 61:1-2).

 

[눅 4:18-눅 4:19]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비둘기는 성령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중요한 것은 새 자체는 아니지만 비둘기 같은 성령의 강림은 성령께서 예수님과 관계하는 방식을 강조하고 있다. 성령께서 강림하시는 장면은 온화하고 평화롭지만 예수님 안에 내주하시기 위해 오시는 적극적인 임재를 그리고 있다.

 

 

11절 해석: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 일 후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서 하나님이 예수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하였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에 관해 우리가 읽는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 이 ‘소리’는 1:10에서 잠깐 열린(가른) 천상의 영역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이 헬라어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너로 말할 것 같으면, 넌 내 아들이고 내 사랑하는 자다”라는 것이다. 모든 신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혹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릴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는 다른 독특한 관계를 하나님과 맺고 계신다. 그 분은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독생자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구절은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엄청난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을 얻으신다는 것을 뜻한다. 헬라어에서 이 동사는 술정적 아오리스트constative aorist이다. 즉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 분은 항상 아들 안에서 기쁨을 얻으신다. 예수님은 세례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니다. 그 분은 이미 영원한 과거애서부터 신성을 가지고 계셨다. 열린 하늘과 비둘기와 소리는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 약속된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셨으며,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늘에서 난 소리들은 구약성경의 두 구절들을 반향하고 있다.

 

(시 2:7)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편 2편은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의 대관식을 묘사하는 메시아 시편이다. 이 시편에 기술된 그리스도의 통치는 그 분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에 시작될 것이며 그가 와서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우실 때 완성될 것이다.

 

(사 42:1)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이사야 42:1-17은 하나님을 섬기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그 분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고난당하고 죽으실 종이신 메시야를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구절을 말하고 있는 하늘의 보좌에서 난 소리는 고난을 당하고 죽으실 종이요, 영원히 다스리실 왕이신 예수님의 두 가지 지위를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가 나타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성부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세례를 받으시며,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 위에 강림하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하지만 세 위격으로 동시에 존재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다. 막 1:9-11은 예수님께서 영원히 다스릴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왕으로 신분을 그리고 있지만 그 분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온 인류를 위해 ‘모든 사람의 종’되기를 자처하심을 보여주는 세례 받으시는 장면이다. 이 대목을 통해 우리들도 비록 하나님의 자녀, 즉 왕의 자녀들이 되었지만 우리의 사명은 이 세상을 섬기는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의 종임을 예수님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오늘 하루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늘 자각하며 거기서 위로를 얻고, 반면에 이 세상과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종으로 섬기는 고귀한 시간들로 채워지길 소망한다.

 

오늘은 마가복음 1장 9-11절의 본문을 통해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신 의미와 뜻을 살펴보았는데요.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친히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다는 것의 심오한 의미도 같이 나눠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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