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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누가복음

누가복음 18장 1-8절,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

by Message.K 2023. 2. 26.

누가복음 18:1-8의 본문을 통해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인데, 이 구절에 대한 의미를 해석해보고 기도에 대한 '낙심과 붕괴'현상도 알아보고 종국적으로 택하신 자만이 밤낮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봅니다. 

누가복음 18장 1-8절,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
누가복음 18장 1-8절,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


 

기독교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도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외면당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외부적인 활동에 가려져 내부적인, 내면적인 기도가 배제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는 기도의 의해 움직이고 나아가는 ‘기도하는 교회’가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라는 사실!
 

 

1.기도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

정확히 말하자면, 기도응답에 대한 3가지 타입입니다.
 

  • -YES,
    -NO,
    -Wait

 


요즘 같은 인공지능시대,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이 편리하게 처리되고 실행되는 시대에 No, Wait는 기도하는 사람 입장에서 힘겹고 어려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2.이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오늘의 기도는 인간은 기도하지만, 하나님 편에선 안 들어주고 싶은 NO였다가, Wait였다가 다시 YES가 되는 장면연출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구하고 구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이런바 애걸복걸의 막장드라마 같은 느낌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자주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강제할 때가 있습니다. 내 뜻이 가장 위대하고 대단한 것이냥, 하나님은 도대체 뭐 하시느냐 면서 그분께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진력을 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기도의 유형이 바로 이런 유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거부하고 싶은 유형이죠.
 

 

 

 


 

3. 원한의 기도는 다릅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자신의 뜻을 계속 주장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계속 중언부언하면서 하나님께 아뢰는 측면도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성경은 ‘원한’이라고 했습니다. 가슴에 쌓인게 많은 겁니다. 너무 억울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셈이죠. 성경은 하나님을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결핍되고 없고 연약하고 나약하고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편이 되어주시길 기뻐하시는 분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이렇게 처절한 상황에 있는 자들에 목매어 하시는가요? 그분은 수많은 재벌이나 엘리트, 특권층들의 계급에 속한 사람들처럼 자신들의 특권에 집착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다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부족한 것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완전한 자신의 사랑과 성품을 세상에 보여주고자 하셨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제가 한때 너무 간절해서 하루종일 예배당에 있으면서 오늘 찬송가를 한번 다 부르면 내 소원 들어주실랍니까? 그러면서 1장부터 불렀는데, 하루만에 못 부르겠더군요. 몇일만에 다 부르긴 했는데요. 목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건 내가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하나님을 맞추는 경우인데요. 오늘 불의한 재판장을 향해 자신의 요구를 계속 제시하는 이 과부에겐 ‘원한’이 있었다는 것에 특이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원한은 동기부여가 확실히 셋업된 상태입니다. 여러분에게 원한이 있나요? 저의 찬송가 사건은 원한이라기 보다는 욕망이 끼여 있었습니다. 오늘 설교제목 7절의 문구처럼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지, 이게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욕망’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과부는 지금 욕망과 기호와 취호와 성공을 위해 이렇게 부르짖는 게 아니라, 자신의 영달과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원한에 의한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한이 많은 민족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도 많았던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세대나 시대를 보면 그것도 옛날 말인 듯 싶기도 한데요. 너무 편리하고 너무 잘 나가면 절박함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인데요. 원한이 깊은 사람, 원한을 장착하고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4.그 원한은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겐 수많은 사연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수많은 사연과 아프고 기구한 운명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야기만 들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많은 사연이 존재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요하게 볼 대목은 바로 이 원한이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진 택하신, 선택받은 자들의 원한이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선택받으심을 믿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다는 것을 날마다 감격하며 노래하시나요? 그 하나님의 사랑은 가족들, 부모나 자식이나, 부부간에 2차, 3차적으로 나타나면 좋지만 설사 그런 루트가 없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여러분이 가슴 벅차하시는가요?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세상이 모두 나를 버려도 세상이 모두 나를 외면하고 욕해도 나를 사랑하시는 분, 그 한분, 최후의 보루가 내 안에 있으니 바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시는 분은 여러분은 부모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부모님 보다 더 심층적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게 보내셔서 죄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택하신 자가 원한이 생긴 것입니다.


 

 


 

5. 중요한 것은 택하신 자만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한도 원한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 하늘에 닿게끔 과부는 어떻게 했나요? ‘밤낮 부르짖었다’는 표현으로 대변되겠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을 끊임없이 졸라대고 보채고 귀찮게 해서 결국 자신의 소원을, 원한을 풀어제친 과부의 간절함과 절박함에 대해 예수님은 ‘밤낮 부르짖는’ 이라고 이야기하셨는데요. 여러분 선택받은 자만이 기도할 수 있고, 밤낮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예수님 종말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말도 하셨는데요. 이 사람들도 주여 주여 했고 밤낮 부르짖었을 것인데요 왜 그들은 그런가요? 라고 질문할 수 있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구나가 다 기도할 수 있고 부르짖을 수 있지만, 본질적인 대목은 택하신 자만이 기도할 수 있고 기도는 우리가 천국가는 날까지 해야 합니다.
 

J.C라일은 “구원을 위해서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누구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영접기도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천국가는거 아니냐?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의 오른쪽 강도는 천국에 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가 기도를 열심히 했나요? 부르짖었나요? 그렇지 않죠. 그냥 죽기 직전 절박하게 예수님을 의지했고 부르짖은 것으로 인해 그는 낙원에 가 있으리라는 예수님의 선언을 듣게 됩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서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날마다 기도해야 하는 기도의 과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기독교인 행세를 하는 것만큼 파렴치한 것은 없습니다. 신자는 개인기도시간을 스스로 확보해야 합니다.
 



신자들이 신앙이 퇴보하고 배역에까지 이르는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인기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영적인 중병에 걸리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게 타락하기 전 붜, 이미 개인적인 타락은 은밀히 진행됩니다.
 
 
우리는 매일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식사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 일생일대의 가장 큰 숙제이고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식사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매일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요즈음은 매일 커피를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일 커피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카페인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매일의 기도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택하신 자들만이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타 종교의 수많은 의식이나 습관들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날마다 잠잠히 때로는 요란스럽게 그분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원한이 있든, 원한이 없든 구해야 합니다. 그분이 없으면 우리는 미쳐 죽어버릴 것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분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는 미쳐 죽을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 경제적인, 심리적인,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기도 없이는 하루 하루 견디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그 ‘택하신 자의 원한’이 우리를 밤낮 부르짖게 만드는 것입니다.
 

 

6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

택하신 자들만이 하나님께서 상달되는 기도를 드릴 수 있고, 택하신자들의 원한에 하나님은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 택하신 자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밤낮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밤낮 부르짖는다는 것은 구약시대에 아침, 저녁에 드렸던 제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새벽에 아침에 여는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저녁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밤낮으로 부르짖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수 없습니다. 간절한 사람만이, 절박한 사람만이 밤낮으로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며 예전에 수험생 엄마들이 자식을 위해 그렇게 도를 닦는 것처럼 절간에서, 우상 앞에서 소원을 빌었는데요. 우리에게 원한이 있다면 우리도 우리의 원한에 관심이 많으신 하나님,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밤낮으로 부르짖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눅 18장 7절: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의 원한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하지만, 그 택하신 자들의 원한 보다 더 관심이 있는 것은 바로 택하신 자들의 부르짖음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찾고 부르짖느냐에 관심이 있는 것이죠. 상황이 원한이 있든, 없든 우리는 매일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종일관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시고 주목하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돌리고 그 하나님의 귀에 여러분의 기도의 볼륨을 올리시길 바랍니다. 그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이제 우리의 찬송을 받기를, 우리의 기도를 듣기를 기대하십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는다는 것에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 이 한 사람, 무시하는 재판장도 결국 과부의 번거로운 부르짖음에 끈질건 요구에 들어주었던 극단적인 예를 드시면서 예수님께선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7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이야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낙심의 사전적인 의미는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상함’인데요. 우리가 바라고 기도하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인간의 심리와 마음을 미리 아시고 낙심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8. 낙심과 붕괴


낙심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마음이 상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붕괴는 낙심의 단계에서 더 깊은 단계, 나락으로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낙심은 회복속도가 조금 낫지만 붕괴는 회복속도가 더딥니다. 회복불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 붕괴입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한 형사가 용의자 여인을 만났는데 감정의 변화가 생깁니다. 박해일이 탕웨이에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면서 형사의 넘지말아야할 선을 넘는데요. 그건 순전히 감정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었는데 -육체적인 관계는 없었습니다 - 그런데 형사로서의 정체성이 붕괴됩니다. 붕괴는 무너지고 깨어짐 입니다. 회복불가능의 상황까지 갑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낙심 또는 붕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낙심에 대해 이야기하시지만 붕괴는 또 다른 사안입니다. 낙심되면 기도는 그나마 할 수 있지만 붕괴되면 기도의 근처에 갈 수조차 없습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기도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붕괴를 경험했을때 그래도 빨리 일어나는 사람은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붕괴를 피할수만 있다면 시험을 피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낙심도, 붕괴로 결국은 기도로 나아갈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사안입니다
 
 
 
 

9. 삶의 아이러니: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그러나 기도하다가 낙심하는 자가 많아서 종말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의문표를 날리시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낙심이 쌓이고 축적되니 결국 신앙의 붕괴가 왔나 봅니다.
 
   

10. 기도는 행복과 만족에 이르는 가장 탁월한 길입니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시 55:17)
 
건물을 지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춧돌을 놓은 것, 첫 삽을 떠야 합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기 위해 쓸 나무를 처음 쓰러뜨린 날이 있었죠.

언제 사람의 마음에 성령의 집이 지어지기 시작하는가?
‘-그것은 바로 기도의 사람의 마음에 성령이 처음 부어지는 때’이다.


회심한 호텐토트 사람 왈,
 
“주여, 저의 모든 원수로부터 구원하소서, 무엇보다 악한 제 자신에게서 구원하소서!”
 
기도를 위해서도 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꺼지지 않는 성전의 불처럼, 기도가 일상에서 계속 타올라야 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킨 것(주일성수)때문에, 나라가 가난해지지 않는다. 냉랭한 기도는 불없이 드리는 제사이다. 하루의 기도를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선 택하신 자들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하나님께선 택하신 자들 중에서도
부르짖는 자를 주목하십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는데 오래 참으시지 않을 것입니다.

 

 

 

17세기 위대한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브루스 목사를 향해
 

“그의 기도는 하늘을 향해 쏘아올린 번개와 같았다.”고 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기도는 “영혼의 맥박”이며, 영적 기상도이다.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권고하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인생에 있어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생존키트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백신입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18장 1-8절의 본문을 가지고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자들의 원한>이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했는데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택하신 자들의 특권인 기도, 부르짖음에 관심이 많으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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