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장 14-31절의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복음의 때>라는 주제로 한 설교이다. 바리새인과 부자 VS 나사로, 그들이 생각하는 때는 먼훗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here and Now라는 것을 본문을 가르친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16:14-18)
예수님께서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비웃음을 던졌습니다. 돈을 밝히는 사람 앞에서 돈에 대한 이야기로 정곡을 찌르니,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자기 이야기가 아닌 듯 비아냥거리는 모양새입니다.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말씀으로 들릴 때, 감사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 들려도, 그 말씀이 자기 메시지로 들리지 않는 것만큼 불행한 경우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의 표적을 향할 때 믿음으로 반응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주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 앞에 민감하게 반응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씀을 자기의 말씀으로, 자기화시키는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하는 말씀을 타인에게 하는 말씀으로 넘겨버리면서 비웃고 있는 불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손한 태도에는 불손한 중심이 서려 있는데, 15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1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은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라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는 엄연히 다르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왜냐구요?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펙을 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외모를 제거한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의 핵심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견딜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16절에 이제 세례요한의 시대까지가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라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시대부터는 새 시대가 되었음을,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십니다.
16절의 말씀에 대한 오해로, 율법의 가치를 오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가지 측면에서 율법의 유효성을 주장합니다.
첫째, 율법의 한 문자를 천지와 비교하십니다(17절). 율법의 한 획의 무게가 하늘과 땅을 더한 무게보다 무겁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기 쉬워도 율법의 한 획이 없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속사가 하나님나라의 시대로 전진한다고 해서 율법(과 선지자)이 무효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하늘과 땅이 존재하는 한 구속사의 전진 가운데서도 율법(과 선지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둘째, 예수께서는 율법의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해 율법 가운데 한 조항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이혼과 간음에 관한 계명입니다. 예수께서 의도하시는 것은 하나님나라의 시대가 되면 마구 이혼하고 마구 간음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이 계명이 하나님나라의 시대가 되어도 변함없이 유효한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선 율법을 그토록 중시여기며, 자랑한다고 하는 무리들이 오히려 율법을 가장 천히 여기면서 무시하고, 오히려 인간적이며 부차적인 것들, 세상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에 자랑과 허영심에 쌓인 채, 속된 말로 돈만 밝히는 종교지도자들의 행실에 대해서 비판하고 계십니다.
이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연락하는 부자(눅 16:9-31)
재물에 대한 비판적인 글 모음 가운데 마지막 내용은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비유에서 부자와 가난한 나사로가 살았던 모습을 서술하면서 생전의 경제적인 삶이 사후의 상태를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교훈하십니다.
*생전의 모습(19-21절)
*사후의 모습(22-31절)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생전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부자는 호화롭고 럭셔리한 삶과 스타일에 흠뻑 취한 나머지 그의 집 대문 앞에 있는 거지 나사로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생전의 모습과는 달리 거지 나사로는 22절에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23절에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사후의 충격적인 반전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이 땅의 현재적 삶이 우리의 영원한 삶을 결정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를 하십니다. 부자의 부유했던 생전의 모습과 사후의 모습을 대조하면서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 지를 조망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지금 그리고 여기Here and Now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먼훗날 천국가서 동행하려면 늦습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시고, 더욱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시길 바랍니다. 나사로는 사랑하기엔, 나누기엔 너무 늦어버린 비극적인 반전의 주인공입니다. Here and Now에서 온전히 순종하고 말씀에 거하는 삶을 살라는 메시지, 그것을 31절에서 마무리해주고 있습니다.
31절: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며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바리새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린 듯 했지만, 정작 그들은 율법에 거하기를 거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모세와 선지자들도 듣지 않는데, 죽은 자가 부활하는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의 출현에 변화되겠냐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언젠가는 새롭게 변화될 것이다, 조만간에 달라질 것이다, 막연하게나마 내일은 다른 삶을 살것이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메시야가 눈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지금 그리고 여기, 일상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하시길 바란다. 그 삶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복음의 때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재, here and now이며, 비천하고 가난하고 볼품없었던 이 세상의 나사로의 생이었지만 그가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의 때를 준비한 주인공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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