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아들'에 대한 신학적인, 역사적인 배경연구를 통해 그가 이방인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그토록 하나님의 뜻과는 멀어진 탕자가 바로 우리들이며, 그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함을 제시하는 설교이다.
목적: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비추어 전도의 동기를 점검하라!
우리는 전도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기쁨인가, 아니면 부담인가? 1차 입양, 2차 입양, 3차 입양하면, 전도축제, 새생명축제 이런 행사를 하면서 우리는 과연 어떤 느낌으로 행사를 치르는가? 우리가 사람들을 단지 전도의 대상물로만 여기고는 있지 않은가? 한국교회의 숫적 성장과 부흥, 그러나 지금은 도태되는 성장. 성장지향주의, 업적지향주의, 실적중심주의가 낳은 결과는 아닌지.
오늘 예수님의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복음 전도의 올바른 동기를 설명해보자.
1. 사람들이 전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라)
-하나님의 명령,-영혼 사랑의 표현, -예수 그리스도의 본
2. 이야기의 배경: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림, WHY? ‘이 사람이 죄인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당시 죄인이라 함은 그 시대, 그 사회에서 버림받은 그룹의 사람들을 지칭.
집 떠나는 탕자(15:11-16)
3. 여러분은 누구를 죄인이라고 규정짓는가?
우리 그룹에 속하지 않은 그룹만은 죄인이라고 규정짓는가? ex)한국 사람들이 제일 안 되는 것 중 하나? 먹을땐 꼭 한국사람끼리만 먹어야한다. 선교여행을 가도, 선교를 가도 꼭 김치를 먹어야 하고, 된장, 고추장, 마늘을 먹어줘야한다. 진정한 선교는 자기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끼리끼리 문화, 선배선교사님의 심각한 충고: 절대 한국사람들끼리는 선교팀을 짜지 말라! 개인은 충줄한데, 팀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어렵다는 현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째 아들도, 둘째 아들도 죄인이긴 마찬가지이다.
4. 유대 군중은 분명, 둘째 아들이 유산 중의 자기 몫을 달라하는 것에(11-12절) 대해 분노했을 것이다. 그렇게 분노를 느낀 이유는?
첫째 아들은? 유대인을 지칭...장자는 신명기 21:17에 의거하여 유산의 2/3를 가짐, 두 몫을 가짐. 장자는 ‘기력의 시작’이기 때문에 특별대우.
둘째 아들은? 이방인(죄인)을 지칭. 차자는 유산의 1/3을 가짐.
유산은 통상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받는 것인데, 살아 계신 부친 앞에서 유산을 달라하는 것 또한 발칙한 도발이요, 기분 나쁜 처사이다.
5. 예수님 당시 유대 문화는 가족 문화였기에, 어린 아이들도 율법을 충분히 교육받았을 것이다. 가족이 함께 모여 살도록 되어 있었는데, 13절에 나타난 탕자의 소행이 바리새인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비도덕적, 반도덕적인 패륜아적인 처사였다. 가족과 함께 말씀, 율법생활을 했더라면, 이런 불상사가 생길 수 없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이 비유의 둘째는 이방인일 가능성이 높기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불쾌했던 것이 아닐까?
6. 탕자는 유대교의 식사법(레 11장)이 지키도록 교육받았고 자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14-15절에서 그 소년이 가진 직업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 소년이 가진 직업은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일이었다.
-직업은 돼지치기였다. 레 11:7에 보면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쪽발이고 되새김질을 못하기 때문에 부정한 음식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고기를 먹어선 아니되며 시체를 만져서도 아니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기준에 따라 소, 양, 염소는 가축으로 길렀다. 하지만 돼지는 부정한 짐승으로 여겼다. 돼지는 여러 가지 이유(건강에 관심, 부정한 동물들은 보다 더 죽음과 관련됨, 가나안 문화를 반대하는 논점에서)로 인해 부정한 짐승, 부정한 음식으로 규정되었다. 그런 돼지와 함께 있는 둘째 아들 자체가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율법교육을 받은 가정의 아들이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지만, 율법과 반대되는 정말 최악의 부정한 곳에 처해 있는 모습은 유대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7. 16절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청중으로 하여금 탕자에 대해 훨씬 더 혐호감을 느끼도록 하는가? 부정한 짐승이 먹는 음식, 그 먹이인 쥐엄열매를 먹고자 하는 둘째 아들이 얼마나 추해 보일까? 얼마나 꼴불견이며 더러워 보이겠는가?
8. “저런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이렇게 말하면서 당신이 아예 복음 전파의 대상에서 제외시켜버린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 여러분 주위에 정말 저 사람은 도저히 안 되겠다. 저 사람은 복음과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한 번 이야기해보라.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태도와 탕자, 세리, 죄인들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태도를 비교해보라!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에는 그러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저 사람은 도저히 안 돼! 우리도 이방인이었고, 우리도 철저한 죄인이지 않았는가? 혐오할만큼 어리석은 죄인들이지 않았는가?
9. 우리가 바로 탕자(둘째아들)가 아닌가?
1) 아버지가 죽지도 않았는데 유산을 달라고 하는 예의도 모르는 배은망덕함
2) 물질, 건강, 시간, 기회들을 모두 자신의 욕심과 죄짓는데 써버리고 낭비해버린 욕심
3) 부정하디 부정한 곳에서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면서 절망과 탄식으로 살았던 죄인
4) 세상의 것에 목말라 한없이 탐닉하다가 결국 허무하게 모든 것을 탕진해버리고, 겨우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고 외치는 우리의 죄성
우리의 모습은 세상의 모습이다. 우리가 오늘 만나는 사람 중에 탕자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또한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요, 복음이 필요한 자임을 기억하자. 복음을 왜 전하는가? 그 사람에게 복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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