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장 1-13절의 본문을 가지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이다.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따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 본문은 애매하고 다소 난해한 구석이 있다.
먼저, 그토록 순결하고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했다는 것이 놀랍다. 예수님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주인이 자신을 자르고 정리해고 할까봐서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빚 잔치를 벌였던 사람들을 불러서 50%, 20씩 대박세일과 채무를 탕감, 할인을 해 준다. 주인의 돈을 청지기가 자기 맘대로 주무른다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떻게 주인의 채무를 자기가 자기 돈 다루듯이 함부로 다룰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이자가 많이 비싸도 그렇지 말이다.
그런데 성경에선 분명히, 이 친구 속성 자체가 8절에 청지기 앞에 ‘옳지 않은’이라고 붙어 있다. 이 친구는 원래 인격, 인성 자체가 다소 부정직하고 사기꾼같고 불의하다는 점을 전제로 깔고 있다. 그런데다가 어찌 이 사건을 옳다고 용납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왜 이런 약샥 빠르고, 다소 정치적인 인물을 선호하신다는 말인가? 자신은 비폭력의 영웅 간디처럼 그렇게 비정치적인 인물로 살다가 죽으셨으면서, 자기 제자들(지금 대화의 대상은 제자들과 바리새인들로 추정됨)은 약간 간교한 인물로 살기를 원하신단 말인가?
이런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이야기가 비유인 것을 분명히 간파해야 한다. 비유는 단지 비유일 뿐이다. 단 한가지의 포인트만 캐치하면 된다. 거기서 많은 것을 확대해석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의도를 흩트리게 된다.
예를 들어, -청지기는 낭비벽이 심한 놈인데, 그러니 옳지 않은 청지기였는데, 어떻게 예수님은 그렇게 사람을 못 보느냐고, 예수님은 외모만을 보느냐고.
-예수님은 정말 눈 앞에서 아부만 하는 자들만 좋아하시나? 하필이면 청지기 편을 드시느냐고?
-주인이 받을 손해는 엄청나겠는데, 왜 주인은 청지기를 칭찬만 하고 있냐고. 그것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
이런 모든 상황에서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를 칭찬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칭찬했는가? 그 청지기의 인격이나 됨됨이는 영 아닌데 말이다.
여기서 청지기가 잘 한 것은 바로 그가 물질에 대한 태도가 옳았다는 점이다. 9절에 보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했다. 여기 보면 청지기는 ‘옳지 않은’이란 단어가 붙었다면, 재물 앞에는 ‘불의의’란 단어가 2번씩이나 붙어 있다.
청지기는 자신이 잘릴 것을 알고 미리 대안을 세우길 자신의 가진 재정에 대한 정보를 총동원하여서 빚잔치를 벌인 고객들을 상대로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 빚은 도저히 갚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청지기가 삭감을 해줌으로써 고객들로 하여금 빚을 갚을 의지와 여력을 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청지기를 칭찬한 이유는 이 친구가 자신의 장래와 미래를 위해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겼다는 점이다. 자기가 주인에게 잘리면 혹시나 고객들에게 재물을 통해 환심과 선대를 베푼 점으로 인해 자신의 장래가 그 사람들과 연결되어 위로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9절의 말씀을 그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재물이 무어냐는 것이다. 재물은 단순히 돈, 경제력, 부요함이 아니라 여기선 12절에 보면 너희가‘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했다. 청지기는 자신의 맡은 재물이 주인의 것이었지, 자기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잘 활용하여 칭찬도 듣고 자신의 미래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소유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 높이 살만하다.
제자들이 천국과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받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것들(mammon, 셈어인데 돈을 의미)을 취급해야 한다. 이 말은 사람이 소유를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따라서 영원의 결과를 얻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로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물질은 지극히 작은 것이다. 왜 우리가 장차 받을 하나님 나라의 축복에 비하면 그것은 지극히 작은 것이다. 하지만, 그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그 지극히 작은 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큰 것, 즉 영원한 것에도 충성된다는 10절의 말씀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이 비유에선 청지기가 자신의 미래와 안녕을 위해서 물질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청지기가 자기 돈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돈을 멋대로 굴릴 수 있는가? 재테크도 아니고 단순히 빚을 탕감해주는 것인데.
기억하자. 청지기는 지금 자기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을 가지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다.
청년.대학부 여러분! 우리가 가진 돈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이 돈은 그냥 하나님이 우리에게 붙여주신 것이다. 언제 또 떠나갈지 모른다. 우리의 모든 소유가 마찬가지이다. 물질 뿐만 아니라 시간, 건강, 외모, 은사, 가족관계, 사람, 백...이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영원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 잠시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다. 즉 남의 것이다. 아버지의 것이기도 하지만, 오늘 본문의 표현에 의하면 ‘남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남의 것, 내게 한시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여러분의 미래를 준비하고 구비하고 예비하라는 것이 바로 오늘 말씀의 골자이다. 우리의 돈, 우리의 자가용, 우리의 집, 우리의 주식, 우리의 적금 등. 이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것이고 남의 것이고, 잠시 여러분 손에 있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 지극히 작은 것고 하나님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고 했다. 갑자기 이런 두 주인 이야기는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지만, 14절부터 나오는 바리새인을 누가는 설명하기를 뭐라고 설명하는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돈을 좋아라하는 사람들 앞에서 여러분, 돈의 힘을 믿지 마십시오, 돈을 정말 별 것 아닙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더 사랑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이야기하면 먹히겠는가? 지금 그 모양새이다. 여러분 돈이 얼마나 좋은가? 제가 총각 때도 차량이 1500cc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는데, 목사가 되고나서 레이란 차, 경차를 타보게 되었다. 좋은 점은 톨게이트비가 50%란 점과 아무데다 주차해도 그리 신경이 안 쓰인다는 점이다. 큰 차를 타다가 작은 차를 타니깐 아 내가 참 배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좋다.
더 편안하고-첫째 아들이 SUV을 팔았을 때(분에 넘치는 차였다!), 아빠가 차 어디갔어? 아빠차 좋은데, 아빠차 타자! 한동안 그랬다!, 더 분위기 있고-제가 청년때는 도시락싸서 데이트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건 조금 촌스럽고 정말 둘이 사랑해서 눈이 멀어버리면 모르겠지만, 비싸고 고급스럽고 분위기 있는 음식점을 가면 더 좋다-, 더 빠르고-2G에서 3G로, 3G에서 4G로, 4G에서 LTE로, LTE에서 LTEA로...점점 기술과 문명은 더 빨라질 것이다. 돈이 되면 기술을 살 수가 있다-, 더 비쥬얼하고-돈이 좀 있으면, 능력만 좀 있으면, 외모와 몸매가 되는 배우자를 구할 수 있다. 비쥬얼이 탁월한, 배우자, 프로필이 탁월한 배우자, 집안이 되는 배우자를 구할 수 있겠다, 인격과 영혼의 상태 돈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잘 모르겠다!- , 더 감각적이고-티코 같은 차(티코차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길!)를 타고 데이트를 하는 것보다 쉐단이나 더 멋진 자가용을 타고 심야데이트도 즐기고, 노천극장도 가고 그러면 더 멋지지 않겠는가!-, 더 훌륭하게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돈을 너무 좋아하고 돈이 주는 유익과 편안함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을 경계하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 돈이 주는 유익과 힘은 굉장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작은 것임을 알고 그 지극히 작은 것을 통해 신실하게 하나님께 충성한다면, 더 큰 것, 하나님의 나라의 일도 충성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대학.청년회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극히 작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쓰임받지 않겠는가?
물질 뿐만 아니라 시간, 건강, 외모, 은사, 가족관계, 사람, 백...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소망을 가진 자로서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청지기가 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청지기로 모든 것을 맡기셨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물질의 청지기가 아닌 물질의 주인처럼 행세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막았던 것을 보았다.
사랑하는 청년. 대학부 여러분! 지극히 작은 것, 육신적인 것, 이 땅의 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자들이 되어보시지 않겠는가?
여러분에게 주어진 20, 30대! 정말 중요한 시기에 여러분이 만난 소중한 사람들과 인연들...그 인연들이 40대, 50대에 계속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여러분의 소중한 인연의 사람들에게 충성할 수 있는 기회 1주일을 드리겠다. 1주일동안 다음주 8월 10일에 있는 Present행사에 데려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한번 꼬셔보라! 최선을 다하고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시간도, 물질도, 재능도, 능력도, 비쥬얼도, 화술도 부족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역사하실 것을 믿고, 지극히 작은 것에 한 번 충성해보는 지극히 큰 자가 되어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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