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29-31의 본문은 너무나 익숙한 본문, 이 본문을 가지고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는 주제로 설교할텐데,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의도를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29-31절 본문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구하지 말며(29절)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다. 29절에 보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했다. 우리 인생은 먹기 위해 사는 인생은 아니지만 실체를 보면 '먹기 위해 사는 것'이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고상한 표현도 있지만, 정말 궁핍하고 가난한 사람은 먹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다. 먹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먼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의 생계 문제를 위해서 '구하지 말'라고 하셨다. 정말 입에 풀칠하지 못할 정도의 뼈저리게 가난한 사람에게는 이런 류의 말씀은 부적절하다. 그들에게 빵과 밥과 먹는 것은 생존여부를 결정짓기 때문에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사람들은 다들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 살고 돈을 번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쌓기 위해서 더 많은 영역과 영향력을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것은 인생의 어쩔 수 없는 법칙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인간들에게 근본적으로 던지시는 것은 우리의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는 것, 구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의 기도제목이 그러해선 아니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 이유를 30절에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은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돈을 위해,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 구하고 기도하고 바란다. 다른 종교들에서도 다들 자신과 자신의 자녀와 가족들의 형통과 복락을 위해 빈다. 기도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그런 기도의 종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는지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시지 않는다. 우리 마음에 무엇이 있고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떤 행동을 표현하는지에 관심을 가지신다. 우리가 더 잘 먹고 더 잘 마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고 우리의 욕망이다. 더 낮게는 우리의 욕구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욕구와 우리의 욕심을 구하지 말라고 하신다. 왜냐? 그거 다 알고 있다고 하신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30절)
부모가 자녀를 키워보면 이런 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녀가 뻔한 것만 계속 요구하고 자기 욕심만 구하면 부모 마음이 별로 기쁘지 않다. 어린 아이 때야 젖 달라고, 밥 달라고 떼쓰는 것은 이해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도 늘 자기 욕심, 먹고 마시는 것만 구하면 부모가 자녀 키우는 보람이 없지 않은가! 성인이 되었는데도 자기만 생각하고 부모 입장 한번 헤아려주지 않는 자녀들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늘 자기 문제, 자신의 먹고 마시는 일차적인 욕망, 승진, 자녀의 성공, 더 나은 자가용과 더 넓은 집과 더 많은 연봉을 꿈꾸면서 그것을 지독스럽게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방향이 아닌 것이다. 기도의 내용, 기도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개인적으로 기도하면서 돈 달라는 기도는 거의 하지 않는다. 입에서 언급하는 것을 삼가하고 있다. 시종일관 우리는 돈에 매여 사는 인생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돈에 매여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에게 매여 살기를 원하시지 돈의 노예, 돈에 종속된 삶을 원하시지 않는다. 돈에서 자유한다는 것은 돈이 많아서, 부자라서 자유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도 하나님이 계시기에 자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돈이 얼마나 있어야 자유할 수 있는가? 돈이 얼마나 없어야 부자유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이방인들처럼,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를 위한 먹고 마시는 것을 구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너무나 뻔한 기도이다. 이방인들과는 다른 기도를 원하신다. 그 기도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의 니즈needs가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신다. 그것도 모르면 어찌 전능자라고, 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과소평가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더 궁극적인 뜻과 계획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근심하지도 말라(29절)
예수님께서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이야기해도 우리는 늘 근심하면서 살아간다. 일평생 근심의 노예로 살아간다. 하나님은 그걸 원치 않으신다. 인생은 원래 근심덩어리이긴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자유하라는 말씀이다. 제 인생의 멘토 되시는 목사님께서는 '근심은 죄'라고 하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이 근심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다. 그 근심의 원인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가 되었을 때 더 상심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물론 이 근심은 영적인 근심과는 차원이 다른 육적인 근심을 이야기한다. 내 인생을 더 육적으로, 물리적으로 빛나게 할 먹는 것과 마시는 것,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 영예와 명예가 넘치는 것 등으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것에 우리는 목맨다. 더 가난한 부류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에 더 근심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부자와 빈자를 가르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하시는 메시지이다.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근심하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 언제나 우리는 통장의 바닥난 잔고로 인해 불안하고 초조해 한다. 저축을 하고 투자를 하고 적금을 붓고 보험을 들어놔도 이런 불안과 근심은 자주 찾아온다. 그게 인생이다. 요즘 사람들은 노후설계에 대해 관심이 많다. 나이들어 일을 할 수도 없는 지경인데 돈까지 없으면 더 고통스러운 것은 현실이다. 잔인하고 추악한 현실이 되고야 만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돈을 많이 벌려고 한다. 경제적인 자유를 외치면서 말이다. 돈을 덜 버는 것 때문에 근심하고, 돈을 더 벌고자 근심한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근심하지도 말라고 한다.
물론 이 본문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관심은 여러분도 잘 알다싶이 31절에 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은 '먹고 마시는 것'을 30절에서도, 31절에서도 '이런 것들'이라고 하셨다. 이런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들만을 위해' 기도할 때가 많다. 그게 문제인 것이다. 육적인 그리스도인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도인을 육적, 영적 그리스도인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기도하고 복을 비는 그런 기복신앙의 수준을 벗어나길 원하신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추구하는 인생이 되길 원하신다. 그것이 본질이다.
하수구가 막혔을 때 찬양을 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29절의 말씀에서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는 말씀은 성경을 보다가 깊이 마음에 와닿은 구절이다. 이 구절을 생각하면서 '구하지 말며'는 실천중인데, '근심하지도 말라'는 말씀이 이번에는 더 새롭게 다가왔다. 늘 알지만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지 않는가!
하수구가 막혔다. 물이 제대로 내려가지 않아 화장실이 배수 상황이 좋지 않다. 몇년 전에 하수구가 막혀서 쿠팡에서 검색을 해서 하수구 뚫는 기계인 스프링 청소기를 구매해 놨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리 해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 뚫어 뻥을 붓고 황산인가? 그것까지 부었지만 하수구가 막혀 혼이 났다. 때로는 하수구에다 스프링 청소기를 쑤셔 넣으면서 기도까지도 했다. 사람을 부르면 돈이 드니깐. 얼마 나올지도 알 수가 없기에. 절박하게 기도했지만, 기적적으로 뚫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돈도 없는데, 결국 사람을 불렀다. 적재적소에 또 하나님의 은혜로 돈이 생겨서 사람을 불렀다. 하수구 관을 통과하는 내시경과 지뢰탐지기처럼 배관을 탐색하는 탐지기까지 동원하여 결국 원인을 찾아냈다. 배관끼리 만나는 곳에 이전에 공사할 때 자갈들이 배관에 어떻게 흘러들어갔는지 그 자갈들, 돌들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그걸 한참 퍼내고 나니 맑은 물이 또르르 흘러내려갔다. 그러면서 그 직원이 한 달에 한번씩이라도 가끔씩 배관이 돌이 들어가는지 확인해 보고 치워주라고 했다. 비용은 30만원이 넘었다. 그래도 감사했다. 오랫동안 고생했던 배관이 뚫렸기 때문에 감사했다. 그 이후로 가끔씩 그 하수구 뚜껑을 열어 확인해보곤 했다. 때로는 자갈들을 소량으로 퍼내기도 했다. 특히 하수구는 겨울, 동절기에 잘 막힌다. 하수구에 흘러들어간 오물들, 기름때들이 추우니깐 얼어붙으면서 하수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 겨울에도 또 막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스프링 청소기를 첫날 바로 시도를 했지만, 뚫리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해 보았지만, 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시도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돈이 있으면 사람을 부르면 되지만, 개척교회에서 몇 십만원을 그렇게 융통하는 게 쉽지 않다. 이런 건 진짜 보면 좀 구질구질하고 찌질하다 싶다. 물론 개척교회마다 상황은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냥 나는 언젠가 되겠지 하고 기다렸다. 그러다가 저녁기도를 마치고 화장실에 갔을때 하수관을 보면서 스프링 청소기로 열심히 쑤셨지만 내려가지 않았다. 기도는 짤막하게 했다. 저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 정말 이거 안 뚫리면 너무 불편하다고 애들도 힘들어한다고. 하수구 심각하게 막혀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냄새까지, 음식물 오물까지 바닥위에 흥건한 기억을 알 것이다. 이번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냥 쑤셔보고 되면 감사하고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상황 다 아시고 형편 다 아시니깐 그냥 쑤셨다. 그러면서 그냥 찬양이 흘러 나왔다. 대학시절에 수련회가서 알게 된 주제찬양이었다. CCM가수 좋은씨앗의 이유정 목사님의 곡이었다.
나의 아버지 그 거룩한 사랑(원제: 우리 그날을 위해)
1절:
나의 아버지 그 거룩한 사랑
아들의 생명 보내주시어
그 피로 주 앞에 나아가오니
주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 안에 한 성령 부으사
우리 사랑할 때 하나님 보게 하소서
우리 앞에 선 저 푯대 향하여
주 복음 위해 힘써 싸우겠네
그 날에 예수 주 다시 오셔서
하늘과 땅 모든 권세 위엄 나타내리니
보좌 위 영광 빛 흘러 넘쳐서
우리 흘린 눈물 모두 새 찬양되겠네
그 날에
2절:
나의 아들아 내 사랑하는 자
내가 너희를 기뻐하노라
오 주여 당신께 예배하오니
주 여호와여 임하옵소서
우리 안에 한 소망 있으니
참 진리 되신 예수님 여기 계시니
우리 부르신 이 땅 위에 서서
주 이름 위해 크게 외치겠네
그 날에 예수 주 다시 오셔서
하늘과 땅 모든 권세 위엄 나타내리니
보좌 위 영광 빛 흘러 넘쳐서
우리 흘린 눈물 모두 새 찬양되겠네
그 날에
우리 안에 한 소망 있으니
참 진리 되신 예수님 여기 계시니
우리 부르신 이 땅 위에 서서
주 이름 위해 크게 외치겠네
그 날에 예수 주 다시 오셔서
하늘과 땅 모든 권세 위엄 나타내리니
보좌 위 영광 빛 흘러 넘쳐서
우리 흘린 눈물 모두 새 찬양되겠네
그 날에 주의 영광 주의 나라 임하겠네
갑자기 왜 이 찬양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 찬양을 불렀다.
"나의 아버지 그 거룩한 사랑 아들의 생명 보내주시어 그 피로 주 앞에 나아가오니 주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 안에 한 성령 부으사 ..."
자주 부르지 않아 1절 가사와 2절 가사가 섟였는지도 모르겠다. 한 절을 다 부르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하수구가 '쿠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내려가는, 하수구가 뚫어지는 순간이었다. 아...참! 하나님도 진짜 이렇게 웃게 하시는구나 싶었다. 하수구 막혔다가 뚫릴 때의 그 기분은 안 경험해 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너무 감사했다. 내가 F라 자주 눈물이 나오기는 하는데, 이날도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긴 했다. 아이들에게 자랑을 하고 화장실 청소를 깔끔하게 하고서 향초까지 피워서 분위기를 내 보았다. 아이들에게 오늘 화장실 정리와 청소는 몇 점이냐며 80점이상이면 대만족이라고 했는데, 큰 애가 100점이라고 해줬다.
솔직히 돈이 없는데, 사람을 부를 생각조차 안 했다. 사람 불러 본 경험이 있으니(하수도 배관쪽에 일하시는 분들의 입장을 차치하고서 말씀드리는 것이다) 돈이 꽤 나오니깐 결국 다 내려놓고 스프링 청소기를 사용해 가면서 찬양한 것이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나를 살짝 이뻐하셨나 보다. 만약 내게 돈이 좀 있었다면 돈으로 해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 저것 다 없으니 그냥 내려놓게 되고 찬양 밖에 할 게 없었다. 그냥 지금은 그런 시기라고 생각한다. 밑바닥에서 울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인생의 마지막까지 계속 이런 저점에 계속 머물러 있으라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도 순종해야겠지. 그런데, 진짜 하나님께서 내 찬양을 받으시고 그 한 절도 안 되는 찬양을 통해 하수구를 뚫게 하신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이런 감격은 돈으로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내치는 불신자들도 있겠지만, 믿는 자는 이게 어떤 순간인지, 경험인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다만 그의 나라를 구하라)
-쉽지 않은 말씀이고 메시지이다. 그러나, 매일 매일 우리는 우리의 욕심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하는 인생이다. 이 말씀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 구하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았다(물론 살짝 짜증이 나긴 했다). 하지만, 하수구 막히는 불편해 하는 내 상황은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신다. 그분이 내 필요를 더 잘 아신다. 내가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할 것은 하나님의 필요에 민감해하는 것, 하나님의 기분을 풀어드리는 것이다. 내 찬양이 하나님의 기분을 조금 풀어드렸나 모르겠다. 하수구가 뚫려, 하수구 입구만 바라봐도 감사가 나온다. 평범한 것이 평범하지 않을 때 감사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것 조차도 비범한 것이 될 때 감사가 나올 수 있겠다 싶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의도가 무엇인지가 제일 중요하다. 다시 한번 이 말씀 기억하고 묵상한다.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누가복음 12장 29-31절의 본문을 통해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는 주제의 설교인데, 특별히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니즈를 제일 잘 알고 계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관심사에 먼저 우리가 우선순위를 두면 하수구조차도 뚫어졌던 경험을 공유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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