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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한복음

요한복음 8장 31-32절, 제자가 되라!

by Message.K 2021.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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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의 제자, 박지성

 2002년 월드컵이 끝이 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과 이영표를 자신이 이끄는 네델란드 PSV 아이호벤트로 영입했다. 박지성과 이영표의 개인적인 자질이나 축구 실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그들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고 순종했기 때문이었다. 박지성이 골을 넣었을 때 기억하는가? 그는 제일 먼저 히딩크 감독에게 가서 포옹을 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박지성에게 있어 거스 히딩크 감독은 스승이었고 선생이었고 아버지같은 사람이었다. 올해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군림한 박지성은 지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활약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히딩크라는 거장의 스승이 있었던 것이다. 박지성의 그의 애제자였다.

 

 

분데스리가에선 차범근이, 그리고 EPL에선 손흥민 앞에 박지성이 있었다!

 

 

 

 여러분은 누구의 제자가 되고 싶은가?

   여러분도 히딩크처럼 멋진 스승을 만나 축구선수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열망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님의 제자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말하고 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이 말씀은 올해 우리 중고등부 SFC의 주제성구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자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박지성처럼, 손흥민처럼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하거나 연예인들처럼 얼짱, 몸짱이 되거나 아니면 저처럼 성격이 아주 좋으면(?) 제자가 될 수 있겠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원하는 고등학교, 원하는 대학교에 철썩 그것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다고 해서, 인터넷 게임을 아주 잘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만약 이러한 조건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조건이라면 우리는 축구를 위한 지옥훈련을 해야 하겠고, K1을 열심히 배우거나 열심히 성형수술을 하고 피부관리와 몸매관리를 위해 다이어트와 헬쓰, 요가, 수영 등을 닥치는 대로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머리를 싸매고 ‘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머리에 쥐가 나도록 할거야’라던가 아니면 프로게이머들이 합숙훈련을 하고 밤샘을 하면서 게임연습을 하는 것처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방식,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된다’, 쉬운 성경에 보면 더 명백하게 번역을 하고 있다.

 

‘너희가 나의 가르침을 꼭 붙들고 있으면 진정 나의 제자이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가르침인 성경의 진리를 꼭 붙들고 사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다. 교회를 아무리 열심히 다니긴 하지만,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성경이 그 사람에게 별 의미가 없고 그냥 교회 올 때 가져와야 할 거추장스런 짐으로 성경책을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47절에 보면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라고 말한다. 소속이 하나님 소속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것을 기억하자. 설교시간에 건성으로 말씀을 듣고 딴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 이를테면 게임생각이나 친구 만날 생각이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문자나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들릴 거리가 없다. 그런 사람에겐 예수님의 제자가 될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아있게 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KJV 성경에선 continue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계속 읽고 생각하고 붙들고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성경의 원리, 진리의 말씀’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의 거짓 제자, 가룟 유다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가룟유다를 기억할 것이다. 가룟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무수한 진리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저처럼 이렇게 재미없게 말씀을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입을 벌리니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신들린 사람이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한 능력의 말씀의 현장에 가룟유다는 늘 동행하였고 그 무리의 회계의 직분까지 맡았다. 어떤 기관에 돈을 맡는 사람은 상당히 비중 있는 인물이다. 돈 떼어먹고 달아날만한 사람에게 회계를 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로서 회계의 일을 감당했던, 참 좋은 직분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순간에 예수님의 제자에서 예수님의 원수가 되어버렸다. 예수님을 은 30에, 돈에 팔아버린 자였다.

 

 

 

왜 그가 그랬는가?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늘 옆에서 들으면서도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유대인들에게 부러움을 샀던 예수님의 12제자의 무리에 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장 부끄럽고 저주스런 인류의 원수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그를 통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터놓게 되었던 것이다. 가룟 유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더 한 죄를 지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도 가룟 유다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없으면 가룟 유다보다 덜 할 것이 뭐가 있는가?

 

 

37절에도 예수님 옆에 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왜?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지 않으면 사탄이 그 자릴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우리가 매일 말씀을 읽어야 하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매일, 날마다 채워야 한다. 올 한 해 성경일독을 하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씀으로 채우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말씀에 늘 거하지 않은, 수제자 베드로

  가룟 유다 뿐만 아니라 수제자 베드로도 말씀이 그 마음에 굳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3번씩이나 부인하지 않았는가? 아무리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늘 그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쉽게 쉽게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것이 머릴 가득 채우게 되면...

 

 

  제가 대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당구를 배운 적이 있다. 친구들이랑 당구장에 가서 당구를 쳤는데 당구가 너무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자주 치러 갔다. 당구를 치고 교회 오는 날이면 교회 천장이 당구대로 보였다. 테트리스 게임을 하고 교회에 오면 교회 천장이 테트리스 판을 보였다. 심각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삶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스마트폰게임, 이성 친구, 성적, 공부, 열등감, 아픔과 상처, 부모님에 대한 미움, 대학, 불우한 가정환경, 맘에 들지 않는 교회...무엇이 여러분을 채우고 있는가? 우리를 채우고 있는 것을 거두기 위해선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그렇다면, 말씀으로 우릴 채우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과연 어떤 효력이나 유익이 있는가? 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은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다.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말한다.

 

 

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

  여러분은 자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스티븐 킹 (Stephen King)의 중편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을 영화화한 ‘쇼생크탈출’이란 영화를 보면 주인공 남자 앤디 듀프레인은 아내와 그의 애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쇼생크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종신형을 선도 받게 된다. 그는 억울하기도 억울했지만 감옥 속에서의 부자유스러움과 짐승보다 못한 대접에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그는 리타 헤이워드라는 여배우 포스터 사진을 우연히 구해서는 그 종이 뒷벽을 매일 밤 조금씩 조금씩 긁어내어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나는 500야드(야드: 0.9144X 500=458m)를 기어간다’고 말하며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했다. 그가 탈출하는 밤 내리는 빗줄기에서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벌리며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쇼생크탈출 영화

 

 

영혼의 자유

  영화에서 보여준 이러한 자유, 우리의 영혼에도 자유가 있다. 예수님은 분명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다. 자유라는 말을 쓰는 것은 분명히 자유하지 못한 상태나 자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자유’라는 단어를 썼을 것이다. 34절을 보면,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예수님의 진리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자유를 주신다.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는가? 무엇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있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다. 죄를 많이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수 없는 ‘죄의 노예’의 신분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불우한 환경과 가난한 집안 사정과 맘에 들지 않는 부모님과 꼴보기 싫은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시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의 성격, 기질, 성적, 외모, 평판, 환경, 친구들...이 모든 것들에 대한 강한 분노와 미움으로 허덕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죄는 죄를 낳기 때문이다. ‘죄악 된 세상에 사는 이상 어떻게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 중에 ‘나는 의지와 결심이 강하기 때문에 한 번 마음먹으면 절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건 ‘미션 임파서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기 때문이다. ‘종의 근성, 노예 근성’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상처 받으면서 살아간다. 늘 실망하면서 살아간다. 집안과 부모와 가족과 형제와 자매와 교회 와서도, 성적과 비교의식과 열등감과 우월감과 자존심과 외모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채 말이다.

 

 

 

예수님은 진리이시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죄악 된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 그리고서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이 바로 진리이시다. 고로 32절은 ‘예수님을 알지니 예수님이 너희를 자유케 하실 것이다’로 재해석할 수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 때문에 그렇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안 좋고, 더럽고 추하고, 그릇되고, 힘들고 상처받고 아픈 모든 과거의 기억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왜? 우리를 자유케하시려고. 우리를 ‘쇼생크 탈출’에서 나오는 앤디처럼 자유의 해방감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그가 친히 십자가에서 죄인들이 받아야 할 저주란 저주는 모조리 덮어 쓰신 채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짐승처럼. 옛날에 저희 아버지께서 돼지를 잡는 광경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망치를 들더니 그 망치로 돼지 머리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대단했다. 짐승은 그렇게 죽어간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아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우리의 죄악된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십자가에서 짐승처럼 죽으셨다. 할렐루야! 이것이 우리가 찬양하는 이유이다. 이제 우리는 그 진리이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기만 하면 자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자유를 누리고 싶지 않은가? 그 자유를 계속적으로 누리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내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 이제부터 정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음 한다. 말씀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서 진리 안에서 진리로 인하여, 예수님으로 인해 자유하는

진리(예수님)를 알지니 진리(예수님)가 너희를 자유케 하는 우리가 모두가 되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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