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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출애굽기

출 33장 7절, "장막,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

by Message.K 202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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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3:7]

(7)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즉석 시대!

 현대 사회는 즉석에서의 만족과 눈에 금방 띄는 결과를 요구한다. 더 많이, 더 좋게, 더 빨리, 더 풍부하게-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통념들과 가치관은 우리의 제자도까지 개념을 변질시키려 으르렁대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도, 교회나 모임에 나오자마자 즉석에서 경건하기를 요구받고, 하룻밤을 기도로 지낼 때 “성숙”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형편없게 살아도 별로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아도 되는 세대에 살고 있다. 리차드 포스터는 우리 시대의 고민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피상적인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암적 존재다. 뭔가 조금 해놓고 즉석에서 만족을 얻고자 하는 이 시대정신은 영적을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람은 더 많은 지성인들이나 은사 받은 이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깊은 열망을 소유한 사람인 것이다.”(영적 훈련과 성장 중에서)

 

 

  그런 차원에서 “훈련”은 오늘날 별로 인기 있는 단어가 아니다. 우리는 “훈련”하면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칙이나 체벌 또는 율법주의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쉽게 연상한다. 따라서 성경이 강조하는 성령 안에서의 자유와 기쁨으로 이끄는 훈련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는 거의 망각되고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훈련받는 삶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환기시키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의의가 깊다 하겠다.

 

 

[딤전 4:7-딤전 4:8]

(7)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8)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혼란한 세상의 와중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진리 안에 굳게 세워, 예수께서 두아디라 교회를 칭찬하신 것과 같이 당신을 칭찬하시게 되기를 기도한다.

 

 

(계 2: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주께서 우리를 자아도취에서 깨어나게 하셔서 주님을 좀 더 깊이 알게 되고 더 온전히 순종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목적: 모세와 하나님의 사귐을 통해 우리의 경건의 시간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원리들을 찾아냄

 

  

우리가 누군가를 깊이 알고 싶을 때,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복음서의 기록들을 보면 예수님도 아버지와 홀로 교제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셨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주님께 부과된 엄청난 일들 가운데서도,

 

 

“예수는 물러 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눅 5:16)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서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대 따로 시간을 내는 훈련은 하나님을 사랑했던 구약 시대의 사람들의 삶 속에서 동일하게 찾아 볼 수 있는데 모세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시내산에서 돌아온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에 경배 드리는 광경을 목도하고 경악했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을 향한 모세의 열망과 주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경건의 시간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규칙적인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분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들의 급한 일 때문에 중요한 일을 간과하고 있다. ‘늘 급한 일로 쫓기는 삶’이라는 책 제목도 있듯이 우리에게는 ‘바쁘고 급한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착각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스티븐 코비는 우리의 삶의 영역을,

 

 

바쁘면서도 중요한 일

바쁘지 않지만 중요한 일

바쁘면서도 중요하지 않은 일

바쁘지 않으면서 중요하지도 않은 일

 

 

이렇게 4가지로 구분했다. 우리는 늘 시간이 없다는 핑계와 변명으로 일관한다. 경건의 시간,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바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임을 알면서도 모든 것의 우선순위에 밀려 늘 내일로 미루는 고질적인 습관이 있다. 이러한 습관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회막을 통해 발견해 보도록 하자.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33:7-23)

  7-11절에서 회막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회막의 위치를 먼저 살펴보자.

 

 

 

 1-항상 장막을 쳤다

  (막을 쳤다는 것은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회막의 어떤 성격을 띠는지를 보여주는데 말 그대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이 여호와를 대면하는 곳, 하나님을 따로 만나는 장소가 바로 회막인 것이다. 장막을 쳤는데 항상 쳤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만남은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고 은밀한 것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공동체적인 만남과 예배로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적으로 항상 만나야 한다. 우리의 사적인 장막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 장막은 신약시대의 성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예수님이 이야기하셨던 ‘골방’이기도 하다.

in the secret place

 

우리는 날마다, 항상 하나님과의 은밀한 장소인 장막을 쳐야 한다.

 

 

 

 

 2-진 밖에 쳤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만남, 경건의 시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는 진 밖에서 이뤄져야 한다. 우리의 세상살이와 살림살이와 활동과 사역들 밖에서 장막이 쳐져야 한다. 그것은 진 밖에서 이뤄지는 것이지만 진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을 장악하고 지배한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은밀한 만남은 우리의 세상 가운데서의 모든 행동과 내용들을 지배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의 밖에 하나님을 만나는 연습과 훈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벽기도, 금요철야기도시간 같은 공적인 기도시간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대하는 진 밖에서의 대면함, 하나님과의 부딪힘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생명력이다. 우리를 새롭게 하고 신선하게 하고 충전시키는 것은 ‘세상 안에서’ 결코 만족할 수가 없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세상 밖에서’ 바로 ‘하나님 안에서’ 삶과 사역과 일들을 수행할 수 있는 에너지와 동력을 소유해야 할 줄 믿는다. 세상 안에서 구하려다가는, 진 안에서 구하려다가는 상처받고 깨지고 마음만 무너지고 상할 것이다.

 

 

 

 

 

3-진과 멀리 떠나게 했다

  2번째 내용과 엇비슷하다. ‘진 밖에’ 쳐졌다는 말은 바로 진과 멀리 떨어진 거리를 표시한다. 우리의 우리가 해야 할 일들과 맡은 일들과 처리해야 할 수많은 일들로부터 우리는 때로는 떨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일을 다 하지 못할 때가 있고 일을 다 한다 하더라도 그 일들 속에 파묻히거나 성과나 능률도 떨어진다. 게다가 일중독 환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일상으로부터 머리를 식혀야 한다. 우리의 가슴도 식혀야 한다. 그러한 것은 바로 ‘진과 멀리 떠나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년 중에 휴가가 있고 몇 달마다 휴일이 있고 일주일에는 주일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일하는 존재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라 쉬면서 일하도록 부름 받았다.

 

-야사 하이페츠의 ‘쉼’에 대한, ‘안식’, ‘재충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음악을 들으면서 모든 것을 날려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관점을 얻게 해 주는 자기 충전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에는 사람들을 동력화 하기 위해 전략을 세우는 일도 포함되지만, 나 자신의 정신적 역량을 회복하고 새롭게 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것도 포함된다.”1)

 

 

  우리의 재충전의 전략은 바로 ‘진으로부터 먼저 멀리 떨어져야하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직후 대부분 무신론자였던 혁명의 지도자들은 기독교에 대한 강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 안식일이라 해서 쉬는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라며 폐지하고 일주일을 7일 단위가 아닌 10일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산력과 효율성을 갑절로 늘리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과연 그 생각대로 되었을까?

  몇 달도 못 돼서 생산성이 오히려 뚝뚝 떨어지고 전 국민들이 탈진하여 폭동 일보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대경실색한 지도자들은 부랴부랴 다시 이전의 7일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태초에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6일 동안 일하고 하루 쉬는, 시간의 바이오리듬을 우리 안에 심어 놓으셨다. 이것을 인간이 함부로 깨버리면 탈이 나는 것이다.2)

 

 

 

19세 중반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청년들에게 세 가지 조언을 남겼다.

 

‘일하라’, ‘좀 더 일하라’, ‘끝까지 일하라’.

  

산업혁명 초기 유럽에서는 하루 16시간 씩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당시 영국의 방직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공장에 시계를 가지고 오지 못하게 했다. 시간을 속이고 일을 시키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요즘이라고 특별히 나아진 것 같지 않다. 특히 우리 한국인들의 일 중독증은 대단하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로퍼 스타치 월드와이드(Roper Starch Worldwide)’가 세계 32개국 근로자 1천 명씩을 대상으로 실제 노동시간을 조사해 봤더니 한국이 주당 55.1시간으로 1위였다. 주말을 빼고 평균 노동시간은 주당 44.6시간으로 우리보다 10.5시간이 적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보고서도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인을 세계 최고의 일벌레로 꼽았다.3)

  

 

 

이야기가 빗나간 것 같지만 맥락은 같다고 본다. 우리는 쉼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하도록 지음 받은 존재들이지만, 그냥 무작정 일을 통한 성취와 업적과 명성과 성공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재충전과 회복과 갱신과 도전의 시간, 쉼과 안식의 시간을 따로 떼어놓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휴일’과 ‘휴가’를 두 배로 늘려야 한다는 말일까? 주5일제 근무를 주4일제 근무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자하는 논지,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장막을 진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는데서부터 오는 것이다. 여기서의 장막은 바로 하나님과의 나와의 은밀한 공간이다.

  또한 이 말은 나의 시간을 하나님으로 채운다는 말이다. 나의 시간을 하나님으로 채운다는 말은 또한 말씀을 묵상함을 말한다.

 

 

 

  히브리어로 말씀을 묵상한다는 동사는 ‘짐승의 울부짖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점잖게 철학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상처받고 아파하는 모습 그대로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다는 것이다. 허공을 치는 언어가 아니라 한 마디 한 마디를 오늘의 내 삶 곳곳에 약처럼 바르는 것이 말씀묵상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지극히 실제적이다. 내가 말씀을 읽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 삶이 말씀에 의해 읽혀지게 하는 것이다. 내가 말씀을 뚫는 게 아니라 말씀을 나를 뚫고 지나가게 하는 것이다.

 

 

  또한 묵상이라는 말을 영어로는 ‘메디테이션(meditation)’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약(medicine)’이라는 영어 단어와 라틴어 어근이 같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먹어야 내 안에서 화학 작용을 일으켜 병을 치료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약을 병에 넣어만 두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냥 훑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한 마디 한 마디를 내 영혼 깊숙이 천천히 넣고 녹여야 한다. 말씀 묵상은 급하게 의무감에 젖어 대충 해치워서는 안 되는 법이다. 보약은 오래 달여야 진국이 우러나듯이 말씀은 깊고 천천히 음미할 때 그 액기즈가 우러나서 내 영혼을 회복시킨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산다. 사람의 소리를 너무 듣다 보니 영혼이 지쳤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지친 영혼이 회복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리더일수록 홀로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가앉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교역자들을 위해 필히 이러한 매일 장막을 치는 훈련, 말씀묵상의 울부짖는 훈련이 되도록 기도해야 할 줄 믿는다.

 

  

 

 

 여러분,

 

  첫째, 우리는 항상 장막을 쳐야 한다.

  둘째, 우리는 장막을 진 밖에 쳐야 한다.

  셋째, 우리는 장막을 진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해야 한다.

 

 


                주:

1) 한 홍, 시간의 마스터(서울: 비전과 리더십, 2005), 141.

2) 한 홍, 69.

3) 한 홍, 14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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