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1-10의 본문을 가지고 "Catch the Vision"이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해 봅니다. 도망자 신세로 광야에서 지내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다가오셔서 대면케 하시고 또한 그에게 소명을 주시는 장면을 통해 비전에 대한 도전을 하는 내용입니다.
프롤로그...비전이 있는 사람 VS 비전이 없는 사람
비전 있는 사람 트러디와 비전 없는 사람 베스는 세계를 두루 구경하고 싶어서 스튜어디스를 지망한 입사 동기입니다. 베스는 스튜어디스 그 자체에 만족하였고, 트러디는 단순한 구경 이상으로 스튜어디스라는 특별한 직업을 통하여 호텔 체인이나 관광 같은 여행 관련 사업을 하고 싶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베스는 스튜어디스 업무에 충실하였으나 트러디는 스튜어디스 직무뿐만 아니라 그녀가 가게되는 나라나 도시들을 돌아보고 그 곳에 대한 지식을 쌓아갔습니다. 이를테면 그 도시를 찾는 여행객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 도시의 특성은 무엇인지, 그 도시의 문화와 축제 유래, 그 도시의 구경거리, 먹거리 등에 대한 살아있는 정보를 차곡차곡 노트에 모아두었습니다. 그리고 기내에서 승객들을 돌아보면서 그 도시를 찾아가는 여행객들에게 그 도시에 대한 여러 가지 유익한 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근무하는 항공회사의 고급 간부가 직원들의 서비스 상태를 평가하기 위하여 비밀리에 현장 조사를 나왔는데 그 간부는 트러디의 그런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간부는 사장에게 보고하였습니다.
"트러디는 스튜어디스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입니다. 그녀는 우리 노선이 닿는 모든 도시를 샅샅이 꿰뚫고 있고, 각 도시들의 특성이 무엇이며, 그 특성에 따라 무엇을 하여야 할지를 미리미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자세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과 같았습니다".
트러디는 승진하여 본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맡은 직책은 각 도시에 대한 안내 책자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트러디는 여행대리점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대리점은 여행업계에서 알아주는 성공적인 사업체가 되었습니다. 한편, 베스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스튜어디스란 직업에 점점 싫증을 느끼고 어서 이 지겨운 직업을 벗어나 결혼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푸념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트러디와 베스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 의 차이였습니다. 베스는 직장(직업)은 있었지만, 비전이 없었습니다. 트러디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비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곧 트러디와 베스의 차이입니다. 비전이 있습니까?
<강헌구,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당신에게 꿈이 있는가?” 잠결에 혼자서 웃고 중얼거리는 꿈이 아니라 영어로 비전이라고도 하는 약간은 고차원적인 꿈 말이다. 어느 시간관리 전문가가 강연할 때의 이야기인데, 그는 주둥이가 넓은 항아리에 주먹만한 돌멩이를 넣어 채웠다.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자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라고 물었고, 모두들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엔 작은 자갈들을 넣고 항아리를 흔들었다. 작은 자갈들은 큰 돌멩이들 사이사이로 들어갔다. 또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라고 물었고 이번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다음에는 모래를 쏟아부은 후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라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물을 부었다. 그리고 나서 '이 행동의 핵심이 뭘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느 젊은이는
"아무리 스케쥴이 빡빡해도 잘 궁리하면 얼마든지 더 끼워 넣을 수 있다"
고 말했다. 시간관리 전문가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약 큰 돌을 먼저 넣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을 다 넣을 수 없었을 것"
이라는 것이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큰 것은 뭘까? 각 개인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 각자의 인생 그릇에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담지 않으면 나중엔 중요한 것을 넣을 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번 수련회가 바로 가장 큰 돌을 여러분의 인생의 항아리에 채워넣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오늘 보고자 하는 본문도 한 인간, 모세에게 하나님이 비전을 주시는 장면이 나타난다.
본론...
V.1 양무리를 치던 모세였다. 그는 바로의 왕궁에서 왕자로 40년을 접고서 애굽인을 쳐죽인 사건으로 도피하여 광야에서의 40년을 아주 소박하고 비천한 삶을 살면서 겸손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바로의 왕궁의 호화스러운 생활과는 다른 정말 낮은 자의 생을 살고 있었을 그 때였다. 그런 삶 가운데 하나님의 비전이 임하고 있다.
V.2 그 때 나타나신 하나님. 비전의 발송자는 바로 하나님이었다. 이 떨기나무의 강렬한 체험은 바로 모세에게 있어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경우이다. 구약에서의 ‘불’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V.4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보라.
V.5 신을 벗으라-하나님께 대한 존경 더 나아가 목동의 그 필드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목동의 신을 벗고 하나님의 출애굽의 비전을 거머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를 목동의 필드가 아닌 구원의 필드로 부르시고 계신다.
V.6 모세의 반응.-두려워하여 가리우매(죄악에 대한 두려움....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때마다 두려워 떨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과 인간의 죄악됨이 교차되었기 때문이다.)그리고서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한다. 애굽 바로의 딸의 양자로 되게 하신 그 하나님,40년의 왕궁생활과 40년의 목동생활로 말미암아 낮아지게 하신 그 하나님, 역사의 긴 물줄기 속에 계신 하나님을 소개한다.
V. 7 하나님의 열망과 관심-동사를 주목해보라(V.7,8,9-하나님의 지극한 관심)애굽에서 종살이 한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애정이 여기 있다. 바로 이것은 요한 3:16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신이다. 비인격적인 신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찢어지는, 아파하시는 마음이 모세에게 비전을 발송하고 계신다.2절에서의 거룩한 대면 이후 비전을 발부하시는 모습이다.
10절...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하나님의 역사를 보라. 하나님의 역사는 <보냄의 역사>이다. 애굽에 모세를 보내시는 하나님. 그것은 바로 이 죄가 관영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장면과 오버 랩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애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인 것이다. 아파하시는 아비의 심정의 하나님이시다.
에필로그... 비전이 있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이 선행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망상이 아니라 비전 그 자체이다. 우린 수련회를 보면서 비전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비전을 보여주세요! 꿈을 보여주세요! 내게 주신 꿈, 나를 위해 계획하신 꿈을”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마치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모세에게 떨기나무를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번 수련회가 바로 여러분에겐 모세의 불타는 떨기나무가 되길 바란다. 큰 돌의 비전을 보는 이번 수련회가 되길 바란다. 꿈을 거머쥐어야 한다.
Catch The Vision!
이런 말이 있다. 오직 내가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높이까지만 나는 도달할 수 있다. 오직 내가 추구하는 거리까지만 나는 갈 수 있다. 오직 내가 살펴볼 수 있는 깊이까지만 나는 볼 수 있다. 오직 내가 꿈을 꾸는 정도까지만 나는 될 수 있다.
Catch The Vision!
Catch The Conference!
오늘은 출애굽기 3:1-10절의 본문을 가지고 "Catch the Vision"이란 주제의 설교, 비전이 있고 없고가 얼마나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살펴보았고, 인생이란 항아리에 꿈이란 Vision을 먼저 넣고 삶을 설계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모세와 같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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