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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및 문서/문서

파란 눈을 가진 조선의 어머니, 쉐핑

by Message.K 2022.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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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교역사에 있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것을 다 주고 간 선교사들 중에 여성의 권익과 보호를 위해 자신의 것을 다 희생하고 섬겼던 한 여성이 있습니다. 바로 그녀는 쉐핑입니다. 한국 이름은 서서평입니다.

 

 

 

 

쉐핑 Elisabeth Johanna Shepping 서서평, 1880-1934, 미국, 미국 장로회

 

조선의 여성운동에 앞장 선, 쉐핑은 1880년 9월 독일 헤센주 미스바덴에서 출생했다. 1891년 11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고 1911년 10월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 한국선교사로 임명되었다. 1922년 한국 최초의 여성 신학교 이일학교를 설립, 부인조력회, 조성여성절제회, 조선간호부회, 여전도회연합회 등을 창설했다. 여성의 권리와 보호에 진력하였다. 1934년 6월에  소천했으며,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파란 눈을 가진 조선의 어머니, 성공이 아니라 섬김을 강조한 그녀의 삶, 쉐핑(서서평)선교사
파란 눈을 가진 조선의 어머니, 성공이 아니라 섬김을 강조한 그녀의 삶, 쉐핑(서서평)선교사

 

 

파란 눈을 가진 조선의 어머니

1934년 여름, 광주는 통곡 소리로 가득찼다.

 

"어머니! 어머니!"

 

 

양림천 거지들과 나환자들은 애타게 부르짖었다. 그녀는 이름도 없이 '돼지 할머니', '개똥엄마', '큰 년', '작은 년' 등으로 불리던 여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천대받던 나환자들을 치료하고,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과부들과 평생을 함께 살며 한센인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를 아들 삼고, 열세 명의 딸을 입양해 키워냈다. 생활비를 받으면 절반은 헌금하고, 일부는 학생들 장학금으로 내어놓고는 곧장 양림천으로 달려가 다리 밑에 헐벗은 거지들을 씻기고, 입히고, 식당으로 데려가 고기를 사주었다. 그리곤 빈털털리가 되어 이렇게 말했다.

 

 

"내일 나 먹기 위해 오늘 굶는 사람을 못 본 척할 수 없고, 옷장에 옷을 넣어놓고서 당장 추위에 떠는 사람을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고무신에 한복을 즐겨 입고 된장국을 좋아했던 그녀가 23년간 사역을 마치고 세상을 떠나며 남긴 전 재산은, 걸인에게 찢어주고 남은 담요 반장, 한 끼 식사 값도 안 되는 동전 7개, 강냉이가루 두 홉이 전부였다.

 

 

"Not success, but service.(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  항상 적혀있던 글귀처럼, 서서평 선교사는 마지막 자신의 몸까지 의학연구용으로 기증하며 모든 것을 주고 떠났다. 

 

 

 

쉐핑(서서평) 선교사는 평생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문구를 가슴에 새기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대한민국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 피 한 방울 안 섟인 영적인 자녀들을 위해 다 베풀어 주고 떠난 선교사님입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녀의 일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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