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선교역사에 있어서 한국 선교의 토착화에 눈을 뜨고 그에 걸맞는 선교와 전도선략으로 선교한 선교사, 말콤 펜윅에 대해서 살짝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최초의 비전문 자비량 선교사로 볼 수 있습니다.
말콤 펜윅 Malcolm C Fenwick 편위익, 1863-1935, 캐나다 독립선교사
철저한 조선인으로 살아간 최초의 침례교 선교사, 말콤 펜윅
1863년 캐나다 토론토 출생하였다. 최초의 비전문 자비량 선교사이다. 1893년 잠시 귀국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신학교육과 훈련을 받고 침례교 목사 안수 받았다. 전성기에 250개 교회 개척, 두만강과 시베리아까지 교회를 세우는 열정을 보였다. 황해도 소래교회 담임 목회하며 철저한 조선인으로 살아갔다. 1935년 12월 함경도 원산에서 소천하였다.
시대를 앞서간 선교사, 말콤 펜윅
"사막에서 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화려한 유리잔에 물을 따라 담아주면 감사하게 마실 것입니다. 그러나 더럽고 쭈그러진 양철통에 물을 담아주더라도 역시 감사하게 받아먹고 생명을 보존할 것입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물입니다. 비록 녹슬고 찌그러진 깡통 같다고 할지라도 생명을 구하는 물을 담을 수 있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하기를 꿈꿨지만, 신학교육을 받지 못해 주저하고 있던 펜윅은 로버트 월더 선교사의 간증을 듣고 용기를 얻어 선교사로 조선 땅을 밟게 된다.
조선인들을 몇 달이 걸리든지 주일마다 찾아다니면서 설득하고, 눈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던 펜윅은 자신의 말에는 꿈쩍도 않던 사람들이 어느 조선인 형제의 증거를 듣고 큰 감동을 받는 것을 보고 조선인에 대한 복음 전파는 조선인 신자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교회를 세워 목회하는 것보다, 한국인들이 복음을 가르치고 전할 수 있도록 세워주는 일에 더욱 힘썼다. 또, 그는 서구의 농작법을 도입하여 원산농장을 운영하며 자력으로 선교재정을 충당하려 노력했으며, "남의 터 위에는 씨를 뿌리지 않겠다"는 신념은 민주, 몽골, 시베리아까지 나아가 복음화를 위한 초석을 마련하게 했다.
그가 비록 동료 선교사들과 비교하여 교육적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한국교회를 토착화하는, 시대를 앞서 간 선교정책을 성공시킨 의미있는 선교사였다.
오늘은 시대를 앞서 간 선교사, 말콤 펜윅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선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토착인에 의해 토착인 선교가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발견하여 그 정책에 최선을 다했던 시대를 앞서 간 말콤 펜윅 선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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