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교역사에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애정, 열정이 묻어 있는 양화진에 존 헤론이 있습니다. 존 헤론은 영국 미국 북장로회 소속의 의료선교사였습니다. 그에 대한 업적, 무엇보다 한국인을 향한 사랑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존 헤론 John W.Heron 1856-1890, 영국 미국 북장로회
양화진 외국인 묘지를 있게 한 의료선교사, 존 헤론입니다. 1856년 6월 영국 덜비셔 출생, 1870년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테네시 주립대와 뉴욕 의대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1885년 조선(한국)의료선교사로 들어와 제2대 제중원 원장으로 취임과 함께 고종의 주치의가 되었습니다. 1890년 극심한 이질로 소천, 이로 인하여 양화진 외국인 묘지가 생겼습니다.
조선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헤론은 알렌, 언더우드와 함께 광혜원에서 의료사역을 시작하여 광혜원 2대 원장과 고종의 시의로 일하며, 왕족과 양반계급을 위한 '광혜원'을 '제중원'으로 바꾸어 모든 백성들이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조선에서의 사역 환경은 매우 거칠고 힘겨웠다. 백성들은 각종 전염병의 창궐로 수없이 죽어나갔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환자를 돌보기에 일손은 부족한데, 외국인들이 아이들을 유괴해서 잡아먹고 심장과 눈으로는 약을 만든다는 괴소문이 퍼져나갔다. 이에 폭동이 일어나 병원이 습격을 받고, 사역이 몇달 간 중지되기도 했다. 몇몇 선교사들은 질병과 전염병으로 귀국하고, 어떤 이는 전도여행 중에 사망하기도 했다. 헤론은 이런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조선에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결코 뒤돌어서지 않았다.
그러던 1890년 여름, 환자들을 돌보다 세균성 전염병인 이질에 걸렸다. 그럼에도 아픈 몸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던 그는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더 뜨겁게, 더....사랑하고 싶소."
병상에서 마지막 유언 같은 한 마디를 남기고, 예수를 뜨겁게 사랑했던 서른네 살의 젊은 선교사는 5년간의 생애를 조선을 위해 남김없이 바치고 주님의 품에 안겼다.
미개한 나라, 선교사들이 파송받기를 꺼려했던 나라이기도 했던 조선(한국)에 의료선교사로 와서 모든 백성이 의료혜택을 누리도록 했던 존 헤론에 대해서 살펴 보았는데, 그의 삶은 이질에 걸려 순교하였던 순간까지 더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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