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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및 문서/문서

어두운 감옥이 예배처가 되다, 벙커

by Message.K 2022. 11. 30.

한국의 선교사에서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민족 지도자들을 옥중에서 전도한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벙커이다. 오늘은 미국 북장로회.감리회 소속의 벙커에 대해서 살짝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족 지도자들을 옥중 전도한 선구자, 벙커이다.

1853년 8월 오하이오 주 메쉬타볼라에서 출행했다. 1886년 7월 유니온신학교 추천으로 벙커와 길모어(길보), 헐버트(할보) 등 세 명이 함께 육영공원 교사 격으로 내한했다. 1896년 윤치호와 함께 최초의 애국가를 만들었다. 1902-1904년 옥중에 있던 이상재, 이상민, 신흥우 등을 전도했다. 1932년 11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소천했으며,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벙커 Dalzell A. Bunker 방거 1853-1932, 미국 북장로회.감리회소속이다.

 

 

어두운 감독이 예배처가 되게 한, 벙커
어두운 감독이 예배처가 되게 한, 벙커

 

 

 

어두운 감옥이 예배처가 되다

 

"벙커와 그의 부인이 정기적으로 방문한 감옥은 처음에는 탐구의 방이었다가 기도의 집이 되었고, 나중에는 예배를 드리는 곳, 그리고 신학홀이 되기까지 했다. 이것이 마무리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감옥 밖으로 내보내셨고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도록 하셨다."

 

 

독립협회가 해산당하고 민족지도자들이 대거 한성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벙커는 게일, 언더우드와 협력해 수감자들의 석방운동을 돕고 예배를 드리며 이들을 위로했다. 또, 성경책을 비롯한 기독교 관련 서적과 역사책을 넣어주고, 죄수들의 처우개선과 고문제도의 폐지, 독서의 자유, 죄수들의 인권 향상을 한국 정부에 건의했다.

벙커와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이승만은 한성감옥의 첫 개종자가 되었고, 그의 개종은 다른 수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40여 명의 죄수가 개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지속적인 선교사들의 지원으로 한성감옥은 성경을 연구하고, 예배를 드리며 책을 읽는 기독교 학교로 변화했고, 이를 통해 이상재, 유성준, 신흥우 등 고관 출신의 양반들이 기독교인이 되어 훗날 대한민국의 건국을 주도하게 된다. 

 

 

 

오늘은 사방으로 막히고 갇힌 감옥을 오히려 예배의 처소로 만들었던 벙커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벙커'라는 그의 이름처럼 그 벙커에서도 예배하는 자로 살았던 삶이 모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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