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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몽운동의 선구자, 조세핀 캠벨

by Message.K 2022. 12. 1.

한국의 선교역사 가운데 이름도 없이 빛도 선교하다가 인생을 마감한 이들이 더러 있다. 오늘은 여성계몽운동을 주도하며 '배화학당'을 설립한 개척자이자 선구자인 조세핀 캠벨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고자 한다.

 

 

 

조세핀 캠벨 Josephine Eaton Peel Campbell 강모인, 1853-1920 미국, 미국 남감리회

배화학당 설립의 주인공은 조세핀 캠벨이다. 1853년 4월 미국의 텍사스에서 출생하였다. 1974년 조셉 캠벨 목사와 결혼하였다. 1886년 미국 남감리회 해외선교사로 중국의 상해 소주 등지에서 10여년 간 봉직하였다. 1897년 10월 미국 남감리회 해외여선교부에서 조선(한국)에 파송하는 최초의 선교사로 서울에 도착하였다. 1898년 10월 여학교 '배화학당'을 설립하였다. 1912년까지 초대 교장으로 봉직하였다. 1900년 종교교회와 자교교회를 개척하였다. 1920년 11월 소천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여성계몽운동의 선구자, 조세핀 캠벨
여성계몽운동의 선구자, 조세핀 캠벨

 

 

여성계몽운동의 선구자, 조세핀 캠벨

캠벨은 서른 다섯나이에 선교에 헌신했다.

남편 캠벨 목사와 어린 두 자녀를 모두 잃고, "나의 빈손을 하나님의 일로 채우시길" 기도했던 그녀를 하나님께서 선교사로 부르신 것이다.

남존여비 사상과 봉건주의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 캠벨 선교사는 교육과 신앙을 통한 훈련된 여성 지도자 양성을 꿈꾸며 '자골학당(케롤라니아 학당)'을 시작했다. 

사택 수위로 고용했던 박씨의 딸과 순회전도 중에 만난 가난한 집 여자아이들 6명으로 시작한 학당은 학생 수가 점점 늘어나고 발전을 거듭해 1903년에는 학교명을 '여성을 아름답게 기르고, 꽃 피워내는 배움의 터전'을 의미하는 배화학당으로 개명하고 교과 과정도 성경과 고전, 수학, 영어, 논술 등으로 넓어졌다. 더불어 여성들과 함께 배화학당 기도실에서 시작한 자골교회 또한 성장을 거듭하며 훈련된 여성 사역자를 길러내고 한국여성들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감당하였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던 것은 무수한 선교사들과 순교자들의 피와 땀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여성계몽을 주도했던 조세핀 캠벨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미개한 나라가 아니라 이처럼 발전하고 진보된 선진국의 대열에 서게 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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