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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및 문서/문서

보내는 선교사, 윌리스 크레이그

by Message.K 2022. 11. 28.

한국선교의 비전을 심어주었던, 강력한 선교의 동원가, 동기부여가 윌리스 크레이그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겠다. 맥코믹신학교 학장이었던 그가 '보내는 선교사'로 어떻게 활약하였는지 간단하게 포스팅해 보고자 한다.

 

 

 

윌리스 크레이그(Dr. Willis G.Craig, 1834-1911)는 미국의 신학자, 목사이다.

1834년 9월 켄터기주 덴빌에서 출생한 윌리스 크레이그는 맥코믹신학교 교수 및 학장을 역임했다. 선교적 사명을 가진 미래의 선교사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끼침으로 1939년까지 맥코믹신학교 출신 한국선교사를 60여 명 배출했다. 1893년 장로교 총회장을 역임하고 1911년에 소천하였다.

 

 

맥코믹신학교장, 보내는 선교사 윌리스 크레이그
맥코믹신학교장, 보내는 선교사  윌리스 크레이그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으로 가겠습니다! 복음의 황무지 조선 땅으로 보내주십시오!"

 

 

당시 어디에 있는지 이름조차 들어볼 수 없는 조선 땅에 선교사로 가겠다며 맥코믹 신학생들은 열정적으로 지원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초석을 놓았던 1885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에 파송된 미국장로교 선교사 70명 중 47겸이 맥코믹신학교 출신이다. 이 배경에는 맥코믹신학교 학장이자 교수였던 크레이그 박사가 있다.

 

 

 

그는 20년간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섬기며, 평생을 맥코믹신학교의 교수로, 학장으로, 이사로 사역하며 기독교 지도자들을 키워내고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무엇보다 한때 조선 선교사로 지원하기를 깊이 고민했던 그는 학생들에게 조선 선교의 비전을 심어주었다. 

 

 

 

크레이그 박사의 영향으로 조선 땅을 찾게 된 이길함, 마포삼열, 블레어, 소안론, 곽안련 등 일련의 맥코믹신학교 출신 선교사들은 평양을 중심으로 기독교 교육과 선교활동을 펼치며 조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평양신학교는 '한국의 맥코믹신학교'라 불리며 한국신학교의 기초를 확립하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며,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배출해냈다. 이처럼 조선의 복음화는 직접 발로 찾은 선교사뿐 아니라 뒤에서 지원하고 길을 열어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은 맥코믹신학교 학장이 윌리스 크레이그가 당시 동방의 작은 나라, 미개한 나라에 불과했던 조선 선교의 비전의 동원가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수많은 선교사들이 조선 땅을 밟았으며 또한 그들이 세운 평양신학교는 '한국의 맥코믹신학교'로 불렸다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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