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25-26절의 본문을 가지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제목으로 장례예배설교를 한 것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모든 이의 인생의 끝은 죽음, 그 죽음이후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 장례설교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 그리스 신화: 스핑크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정오에는 두 발로, 또 저녁때는 세 발로 걷는 동물?
- 오이디푸스: 아기일 때는 네 발로 기고, 어른이 되어서는 두 발로 걷고, 노인이 되어서는 지팡이를 짚으니 발이 셋인 셈이므로 답은 사람이다.
인생은 굉장히 긴 것 같지만 마치 어린 시절을 아침으로, 정오를 성인시절로, 저녁을 노년시절로 비유할 정도로 짧은 것 같다. ‘장사의 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 일생’이다. 마라톤 경주와 같은 여정이다.
여기서 우리가 잡아야 할 소중한 진리는?
1.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은 죽는다.
고(故)인 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 all, 문상을 하고 발인예배를 드리는 우리도 죽는다. 이 평범한 진리가 자그마한 위안꺼리이기도 하다.
2. 이 세상의 모든 종교도, 교주도, 창시자도 다 죽었다.
수많은 종교, 운동, 이데올로기, 권력과 정치, 명예, 돈과 명성과 인기의 유명인들도 다 죽었다. 사람은 평생 불평등하게 사는 듯 보이지만 죽음 앞에서만큼은 다 평등한 것 같다. 그래도 죽음은 슬픈 현실! 왜냐하면 한번 뿐인 인생, 목숨이기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할머니를, 사랑하는 분을 보내는 이별의 아픔! 그러나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3. 수많은 종교들 가운데 기독교만이 다시 사는 것, 부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기독교는 내세의 종교이다.
4. 오늘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아무리 위대하고 명성있고 인기있고 건강하고 잘 나가고 부유했던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죽는다. 예수님도 죽으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33년의 인생에 우선순위를 두신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요셉의 가문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어떠한 세상의 화려함을 거절하시고 친히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나셨고 라이프스토리 자체가,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가난하셨다. 그가 무엇을 먹고, 입고, 마시고, 살아가는 것에 비중을 두시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과 소명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하셨다. 그것은 십자가였다. 그리고서 죽으셨다. 예수님의 목표는 십자가였다. 잘 죽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는 것이었다. 인간이 죽기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도 죽으셨다. 죽음은 인간이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죽음은 모든 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공평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인에게 하나의 희망이 있는 것은 바로 죽음 이후의 부활이다. 부활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바로 '나를 믿는 자',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셨다. 이건 예수님의 말씀이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죽음을 통과하신 후에 부활의 영역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말의 종교이다. 말씀의 종교이다. 메시지의 종교이다. 타 종교에도 말이 있고 메시지가 있다. 하지만 거기에 생명이 없다. 왜냐하면 거기엔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생명의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무엇이냐?
5. 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요 부활의 은혜를 누릴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성있게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는 자에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에겐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의 평안과 안식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했다.
6.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모든 열매나무에는 과일이 열리는데, 그 과일이 한 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열리지 않는다. 항상 처음 열매가 열리고 뒤따라서 열매가 하나 둘 씩 열린다. 예수님은 부활이란 나무의 첫 열매이시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부활의 열매를 맺는다. 이 세상에 수많은 이들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인생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성경에는 에녹과 엘리야만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의 영광을 쟁취하셨다.
7. 고(故)인도 예수님을 쫓아 부활의 열매도 다시 우리 눈앞에 나타나게 될 것을 믿는다.
우리 또한 부활의 열매를 맛볼 것이다. 이 사실을 믿으라!
미국의 작가, 애드가 앨런 포우는 “우리가 보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얼마나 인생무상을 느꼈다면 그런 발언을 하였는가? 그러나 믿는 신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우리를 지켜준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故인은 장차 부활하셔서 다시금 우리와 재회할 것이다. 이 헤어짐의 아픔 앞에 마음이 너무나 아프고 힘겹지만 영원한 부활이요 소망되신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면서 위로를 받기를 바란다. 유가족 모두 고인의 일평생동안의 가르침과 삶을 본받아 믿음생활에 진전이 있고, 평생토록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로 살아 고인의 이름, 고인의 이름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오늘은 요한복음 11:25-26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앞에 고통당하는 유족들에게 위로하는 장례설교문을 공유해 보았습니다. 기독교의 위대함은 부활이 있음을 더 강조하며 위로하는 장례식이어야겠습니다.
2023.03.11 - [설교/고린도전후서] - 고린도전서 15장 15-20절, 제자의 어머니를 보낸 슬픔을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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