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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한복음

요한복음 12:1-8 설교, 거룩한 낭비

by Message.K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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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장 1-8절의 본문을 가지고 '거룩한 낭비'라는 주제로 설교했는데요. 이 본문은 마리아의 향유옥합 사건인데, 이에 대해 가룟 유다와 예수님의 평가가 엇갈립니다. 예수님의 평가를 토대로 '거룩한 낭비'라는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8절, 거룩한 낭비
요한복음 12장 1-8절, 거룩한 낭비

 

향수이야기

파트린느 쥐스킨트가 쓴 ‘향수’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후에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보통 문학작품이 영화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이 작가가 소설이 영화화되는 것을 꺼려서 무려 15년동안 기다린 후에야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후각이 대단히 발달한 천재적인 냄새의 식별자, 장 밥티스타의 일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쟝 밥티스타는 후각의 천재였기 때문에 늘 그의 고민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수, 냄새를 만들 순 없을까? 냄새, 인간이 가진 오감(五感) 중에 후각이 주는 최고의 쾌락을 장 밥티스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냄새에 대해선 최고(utmost)였기 때문입니다.

 

 

 

  냄새에 대한, 향수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 장 밥티스타를 살인자로 만들게 됩니다. 살인에 대한 죄책이나 죄에 대한 감정guilty feeling보다는 자신의 목적,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냄새, 가장 최고의 후각적 쾌락을 보존하고 싶은 그 목적에 더 매료된 나머지 그런 것조차 생각지도 못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세상의 젊은 여인에게서 자신이 맡아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향수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연스럽게 그 여인을 죽이게 됩니다. 하지만 장 밥티스타에게서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보다 냄새에 대한 집요한 사랑과 욕망이었지, 살인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13명의 여인들을 죽이고서 남겨지는 여인의 향기를 고스란히 채취하여 보관하는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영화는 장 밥티스타의 냄새에 대한 지독한 사랑의 측면에서만 미화시켜 살인이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비극적인 측면을 부각시키지 않습니다. 그 보다는 그 살인이 오히려 더 아름답게 보이는 듯한 이미지, 장 밥티스타는 한 사람의 예술가Artist로 그려줍니다.

  더군다나 장 밥티스타가 살인죄에 대한 처형을 당할 시점에서, 오히려 장 밥티스타는 자기가 제조한 그 향수, 그 냄새로 인해 사형수, 장 밥티스타에 대한 증오와 살기와 적대감이 오히려 사랑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대단한 압권입니다. 세상을 냄새 하나로, 향수 하나로 정복해버리는 장 밥티스타, 세상을 후각, 냄새, 향수 하나만으로 정복할 수 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향수의 장 밥티스타는 향수 하나, 냄새 하나로 세상을 정복하다(출처: 다음영화)
영화 향수의 장 밥티스타는 향수 하나, 냄새 하나로 세상을 정복하다(출처: 다음영화)

 

  하지만 인간의 죄에 대한 원칙은 언제나 자기가 행한 것만큼 죄에 대한 심판과 보응이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하게 보면 권선징악? 장 밥티스타는 자기가 태어났던 그 시장, 비릿한 냄새와 시큼한 냄새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스런 냄새의 소굴이었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껏 따뜻한 향수조차 누리지 못했던 고향 사람들은 장 밥티스타의 냄새, 향수에 매료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 매료됨은 오히려 장 밥티스타의 생명을 가져가게 되는 형국이 되고 맙니다. 제가 볼 때는 그것은 완전한 탐욕이었습니다. 향수에 대한 지독한 탐욕은 오히려 그 사람들의 후각을 넘어 지독한 탐식의 미각(味覺)으로 넘어갑니다. 미에 대한 지나친 추구와 탐욕은 또 다른 탐욕을 자극시키게 된 꼴인데, 바로 고향사람들의 이러한 후각을 뒤흔든 것이었습니다.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배태하고 그 욕망의 결과는 언제나 비극적이라는 것을 시사해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예수님의 향수 이야기

 향수! 쟝 밥티스타의 ‘향수’와는 또 다른 향수!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헌신적인 행위로 향수를 붓는 행위를 보여줍니다.

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이 여자는 왜 이러한 행동을 하였을까요? 1절에 보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리아는 마르다와 함께 동생 나사로의 죽음을 목격한 가족이었습니다.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 있습니다. 죽고싶다, 자살하고 싶다! 그런 아픔과 상처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동생이 죽었습니다.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죽었습니다. 죽은지 나흘이 지나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선선한 돌무덤에 나사로가 안치되었지만 시체가 썩어간다는 것은 굉장한 냄새를 동반합니다. 그게 우리 육체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시면서 부활의 영광을 보게 하셨습니다. 절망이 슬픔으로 변하고 내 슬픔이 변해 기쁨의 춤이 되게 하신 하나님! 마리아의 삶의 증거가 바로 그 동생의 살아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전부터 예수님의 말씀에 더 경청했던 특별한 자매였습니다. 그 마리아가 지금 나사로와 함께 있는 그 잔치집에서 감동을 받아 드리는 열정적인 행위가 여기에 드러납니다.

 

 

 

“가져다가...붓고...닦으니”

 그냥 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걸레나 수건으로 닦아 드린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그게 도대체 뭡니까? 바로 '향유 옥합'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설명하는 문구가 “지극히 비싼”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얼마나 비싼가? 5절에 보면 “삼백 데나리온”이라고 나옵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말 그대로 한 사람의 노동자의 일년 연봉으로 계산해보면 됩니다. 365일 중에서 52주를 뺀다치고 거의 300일 곱하기 일당? 요즘 알바하면 보통 일당이 얼마정도입니까? 직업군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충 5만원만 잡아도 15,000만원입니다. 명품백, 명품가방-아 똑같은 말이죠?-, 명품구두, 명품옷...등 이 수천만원하는 것도 있겠지만, 300데나리온은 분명히 1년치의 봉급에 해당하는 큰 돈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기자는 ‘지극히 비싼’이란 말을 붙였습니다. ex) ‘매우 귀한’(마태복음 26:7)

 

  가난한 집안에는 300데나리온이 자신의 전재산일 수 있습니다. 돈많은 이들의 용돈이나 쌈지돈에 불과한 비자금과는 다른 전재산, 연봉, 향유 옥합을 마리아는 깨드립니다. 그것도 한방에, 한숨에 부어드림으로 향기는 좋겠지만 말 말 그래도 한 순간을 위해서 향수를 부어드리는 것입니다. ‘한 순간’입니다.

 

 

*. '소중한 시간'에 대한 좋은 격언

·1년의 가치를 알고 싶으시다면, 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에게 물어보세요.

·한 달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미숙아를 낳은 어머니를 찾아가세요.

·한 주의 가치는 신문 편집자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한 시간의 가치가 궁금하면,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일 분의 가치는 열차를 놓친 사람에게,

·일 초의 가치는 아찔한 사고를 순간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천 분의 일 초의 소중함은, 아깝게 은메달에 머문 그 육상 선수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이 가지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 향기는 그 집에 얼마동안 감돌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말 그대로 한 순간을 위해 일년을, 전재산을, 연봉을...지극히 비싼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가룟 유다의 평가입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왜 쓸데없는 낭비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순간을 위해, 그 돈을 낭비하느냐? 그 연봉을, 그 재산을 낭비하느냐? 싼 것도 아니고 굉장히 비싼 그걸 팔면 더 좋은 일에 사용할 일이 많을텐데, 왜 낭비하느냐? 고 평가합니다.

  순간을 위해서 1년을 버리느냐? 순간을 위해 왜 시간을 소모하느냐? 순간을 위해서 왜 물질을 낭비하느냐?

 

 

오늘 제가 나누고자하는 핵심은 바로 이 ‘낭비’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아니면 일주일에 간헐적으로, 아니면 주일만이라도 이 낭비에 대한 평가와 부딪히곤 합니다.쉽게 말하자면, 주일 예배때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쓸데없이 시간과 물질과(기름값, 각종 헌금, 세탁비 등등) 기타 모든 것들을 소모해가면서, 낭비해가면서 이 일들을 하는가? 입니다. 예배는 시간을 드려야하고, 물질을 드려야합니다. 에너지를 드려야합니다. 마르바 던은 이 낭비를 ‘거룩한 낭비’라고 불렀습니다. A Royal Wasting입니다. 마리아의 이 향유 옥합을 부어드리는 것은 어떤 낭비입니까?

 

그에 대한 결정은 이 사건에 대한 두 번째 평가, 바로 예수님의 평가에 나타납니다.

7-8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에게 이 마리아의 낭비는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각인되었습니다.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의 아들로 죽으신 이후에도, 이전에도 없었던 단회적이면서도 영원한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죽음을 기념했던 것입니다. 죽음을 예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겐 얼마나 큰 위로와 감동이 있었겠습니까? 물론 마리아가 나사로를 통해 가족과 개인이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에 그러한 헌신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이 죽으시기 전, 유월절 엿새 전에 그 장례를 위해 미리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겐 탁월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을 위해 마리아는 시간과 물질과 열정과 정성을 드린 것입니다.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머리카락은 가장 잘 보이는 곳인데, 그것으로 가장 잘 보이지 않지만, 가장 더러운 발을 닦았다는 것은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온 경외와 예배의 자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예배는 가치를 드리는 것입니다. worth를 드리는 것이 worship입니다. 그러기에 이 낭비는 거룩한 가치를 위한 거룩한 낭비인 것입니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가치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낭비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의 거룩한 낭비를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헷시바, 대학부 여러분!

  우리는 과연 어떤 낭비를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젊음과 청춘! 키에르케고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젊음이란 무엇이냐?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이냐? 꿈의 내용이다."

 

 여러분의 젊음, 꿈, 사랑은 어디에 낭비되고, 소모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여러분의 소중한 1년, 여러분의 소중한 한 달, 여러분의 소중한 한 주, 여러분의 소중한 하루, 여러분의 지극히 비싼 한 시간, 일분, 일초를 드리시지 않겠습니까? 대학부의 이 예배의 자리가 차고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모르는 얼굴이 많아 얼굴이 발개지기도 하고, 서로 어색할 정도로 새친구가 많았음 좋겠습니다. 새친구가 많아야 이전에 온 새친구도 잘 적응할 것이 아닙니까?

 

 

 

향수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될 것인가? 향수를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이 될 것인가?

  ‘향수’의 쟝 밥티스타는 지독히 아름다운 향수를 탐색하고 찾는 것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자신의 향수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오늘날의 수많은 쟝 밥티스타들은 지금도 자기만의 향수를 찾고 있습니다. 자기가 빠져들 수 있는 향수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젊음은 여러분의 특권입니다. 여러분은 향수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마리아처럼 향수를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마리아처럼 지극히 비싼 향수, 향유 옥합이 아니더라도 여러분이 가진 은사와 시간과 물질과 열정과 젊음을 그리스도께 낭비하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그러할 때 여러분의 헌신, 여러분의 거룩한 낭비를 통해 헵시다, 대학부의 부흥의 꽃은 더 활짝 필 줄 믿습니다. 가정 먼저 여러분이 이 주일예배의 자리에서 거룩한 낭비가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거룩한 낭비의 주인공입니다!

 

    

 

  • 참고자료:
  • 선교한국자료, 거룩한 낭비(마르바 던)

 

요한복음 12장 1-8절의 본문을 가지고 '거룩한 낭비'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인데요. 가룟유다는 마리아의 향유 옥합에 대해 '낭비'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반대로 '기념비적인 행동' 즉 '거룩한 낭비'라고 평가하셨다는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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