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전과 왕궁을 다 만들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목이다. 우리는 너무나 명백하게 알고 있는 진리이지만 이 구절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상고해보았음 한다. 대하 7장 14절의 본문을 토대로 '하나님께서 그 땅을 고치십니다'라는 주제의 설교이다.
(대하 7:14)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께서 그 땅을 고치십니다.
여기서 ‘그 땅을 고칠지라’라는 말은 ‘기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그 땅에 단비를 내려 만물이 소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을 가지고 있다. 자연의 풍토와 환경을 하나님께서 새롭게 풍성함으로 채우시겠다는 말이다. 고대에는 수력발전소나 댐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양수기, 펌프 같은 것이 있지 않았다. 기근과 가뭄이 일어나도 현대는 과학의 힘을 빌어 조금이라도 손을 쓸 순 있지만, 고대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느냐 내리지 않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도권을 쥐고 계신다. 13절에서도 분명히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않는 주인공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염병으로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는 배후의 주인공도 바로 하나님이심을 하나님 자신의 입을 통해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이 모든 재앙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모든 불행의 원인을 제공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선 아니 될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는 심각한 고통과 재난과 불행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제일 먼저 우리가 14절에 나오는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다는 것이다. 욥의 고난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의 이유를 제공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야고보는 말하기를,
(약 1: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런데, 야고보는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라고 사람들이 시험을 받을 때면 그 말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시험의 원인을 하나님께서 제공하시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시험을 받을 때면, 고통 중에 신음할 때면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시험이나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나 환란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것을 우리는 믿는다. 그 땅을 고치실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는다. 그런데, 오늘 솔로몬의 성전에 임재하신 하나님은 13절의 인생의 절망스런 환경이나 상황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께서 그 인생이라는 땅을 고치실 방법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그 방법은?
첫 번째, 그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인생의 앞길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막막하기만 환경이 몰아쳐 올 때(13절), 먼저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영적인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대하 기자는 ‘그 악한 길에서 떠나’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고통의 이유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생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명백한 원인 제공자는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 우리는 단순히 믿는 사람과 믿는 않는 사람을 총체적으로 포함하는 우리가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 악한 길에 있을 때 고통이 엄습한다는 사실을 함의하고 있다. 이 대목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한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소돔과 고모라 성 전체가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았음 더할 나위 없겠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 열 사람의 의인, 소수의 의인의 하나님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삶을 원하셨던 것이다. 나라의 위기, 민족의 고난, 가정의 고통, 교회의 어려움의 원인은 바로 ‘의인의 부재’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많이 들어왔다.
‘그 악한 길’...우리에게는 이러한 모양새는 없는가? 여러분이 바로 그 하나님이 찾는 한 사람의 의인이 되시지 않겠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세상이 번영하고 번성하고 축복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축복의 복선이 되어야지, 우리가 저주의 도화선이 되어선 아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그 악한 길에서 떠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자.
그러할 때, 하나님께 그 땅을 고치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영어성경에서는 ‘그 악한 길에서 떠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기도는 우리가 도저히 할 수 없음을 시인하는 행위이다. 우리가 우리의 무기력함과 우리의 무력함과 우리의 무능함을 고백하는 행위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게끔 하는 행위이다. 기도하고 구하는 행위는 말 그대로 ‘겸손하고 겸비한 행위’이다. 기도는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렇게 낮추어져야 진정한 인간됨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을 때 14절에서 ‘내가 하늘에서 듣고’라고 말한다. 우리는 땅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고침받음이 필요한 땅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주기도문에서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다. 땅에 있는 자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연결되는 통로는 바로 기도뿐이다. 그리고 구해야 한다.
때때로 우리는 ‘기도해도 안 되더라’라는 기도의 패배주의가 우리를 유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죽은 물고기는 물이 필요하지 않지만, 아직 살아 숨이 붙어 있는 물고기에는 물이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기도가 생명줄이다. 여러분에게 ‘기도의 패배주의’가 있다면 다 같이 내려놓자. 오늘 본문은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 악한 길에서 떠나 기도하면 들으시고, 땅에서 구하면 하늘에서 고치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형상(육신)을 가지고 있어서 얼굴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과 영이 통하는 통로는 바로 영의 언어이다. 기도는 영의 언어이고 하늘의 언어이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얼굴을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보기를 원한다. 스승은 제자들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고, 형사들은 범죄자의 얼굴을 보기를 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얼굴을 보기를 원한다. 그것은 영의 언어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였음 한다. 우리의 모든 제약과 약함과 결점과 실수가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덮으시고 싸매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얼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아들을 처절하게 찢겨 죽이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얼굴!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의 문제해결에만 집중할 때가 많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얼굴이다. 문제해결 보다 더 절실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이것은 히브리적 표현으로 하나님을 대면한 것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역대하 16:9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결국 인생의 모든 결론은 하나님을 만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흥의 요체입니다.
Epilogue... 하나님께서 그 땅을 고치십니다.
대하 7:14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자!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기도에 하나님은 더 적극적으로 임재하시고 더 긴급하게 응답하신다!
첫째, 우리에게 있는 그 악한 길에서 떠나라! 우리의 비성경적이고 세속적이고 부패한 모든 삶의 방식에서, 인간적인 모든 지혜로 인생을 감당하려는 모든 아집과 교만에서 떠나라! 구하기 전에 먼저 떠나는 삶의 모습이 필요하다.
둘째,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무엇보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하라. 사람들의 눈과 시선과 이목에 신경을 끄고 하나님의 신경에 초점을 두며 하나님을 얼굴을 구하는 우리교회의 모든 성도들 되시길 바란다.
오늘은 구약성경 역대하 7:14의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 땅을 고치십니다'라는 주제의 설교의 내용을 공유한다. 위기 가운데, 절망 가운데 그 이유와 원인을 찾고 악한 길을 떠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땅을 고치시고 회복시킨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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