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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역대상하

역대하 34:26-28, 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by Message.K 2024.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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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역대하 34장-35장은 요시야 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대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왕들중에 처음과 끝이 동일하였던 보기 드문 왕이었다. 히스기야-므낫세-아몬-요시야, 이렇게 이어지는 계보 가운데 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설교한 포스팅이다.

 

역대하 34:26-28, 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설교 썸네일
역대하 34:26-28, 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증조할아버지였던 히스기야도 참으로 많은 대목에서 우리들에게 기억되는 인물이다.

그는 죽을 병에 걸렸을때 하나님께 벽을 향하여 기도하여서 15년이라는 기간의 생명을 연장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병이 나은 이후의 삶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고 바른 삶이 아니었다. 그는 교만하였다. 처음은 개혁과 말씀과 정직으로 시작하였지만 나중은 심히 교만한 결과의 인물이 히스기야였다. 하지만 역대기의 인물 중, 다윗을 제외하고는 요시야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것은 정말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요시야의 업적중에 가장 특이할만한 사건은 바로 “율법책의 발견”(34:14)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전에서 발견하였고 그로 인해 유다민족과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의 삶을 살았는가를 되짚어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그는 더욱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살펴볼 본문은 <그 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내용>이다.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평가받은 인물은 드물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요시야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오늘 저는 요시야가 하나님께 어떻게 평가받았는지를 세 가지로 압축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첫째, 요시아의 영적 감수성이다....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V.27)

요시야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그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는 그 말씀으로 인해 자신의 중심이 흔들림을 느꼈다. 이것은 요시야의 영적인 감각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였다는 것이다. 그 크신 하나님, 우주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피조물인 인간이 듣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엄청난 특권이고 명예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고 여기고, 또한 경홀히 여기며 귀챦게 여기는가?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대단히 완고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중심이 흔들림이 없고, 말씀은 말씀대로, 내 인생은 내 인생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그러나, 요시야는 그렇지 않았다. 요시야는 말씀을 들을때 마음이 ‘주의 종이 말씀을 듣겠나이다’라는 연한 마음이 있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연한가? 아니면 굳어져있는가? 돌아보라!!!

 

 

둘째, 요시야의 겸비함이다...내 앞에서 겸비하여(V.27)

  요시야는 겸손하였다. 하나님앞에서 그는 겸비하고 겸손하였다. 일국의 왕인 요시야에겐 두려워할만한 것도, 더 바랄 것도 없었다. 충분히 교만할 수 있는 자리에 있고, 자신을 더 낮추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전 국민이 자신을 떠받들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그 왕좌를 잘 관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요시야는 하나님 앞에 무릎꿇을줄 아는 겸비함이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일국의 최고의 자리에 앉은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선 마땅히 범죄한 인생에 불과하며, 발견된 모세의 율법책을 보면서 충분히 죄많은 인생임을 자각하였던 자였다. 그래서 그는 만물의 주인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위대한 조물주 앞에 어찌 겸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소위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한지‘여러분들도 알 것이다. 은혜를 받은 것은 어떤 왕관이나 특권이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은혜이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받은 직분도 그러하다. 우리가 주께 직분을 받은 것은 교만하라고, 자랑하라고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권위적이 되어 목이 뻣뻣해지고 고개를 숙이지 못할 때가 많다.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어‘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닮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왕이 되고자 하는‘그런 몸짓이 더 많지 않은가? 우리는 평상시에도 겸손하여야겠지만 “잘 나갈 때 더 겸손해야한다.”요시야는 일국의 국왕이지만 충분히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주목하자.

 

 

 

셋째, 요시야의 거룩한 분노이다...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V.27)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V.19-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옷을 찢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의 말씀과는 너무나 멀리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며 죄인임을 인정하는 행동이었다. 이것은 요시야의 회개의 장면이다. 히스기야 시대부터 므낫세와 요담시대를 거치면서 백성들은 왕의 교만을 물려받아 우상숭배와 죄악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V.24-25에 나온 것처럼 유다는 곧 저주를, 하나님의 분노를 쏟아부음을 받게 된다. 여러분들도 알겠지만 요시야 왕 이후로 얼마있지 않아 유다는 멸망당하고, 바벨론의 포로신세가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너무나 멀어진 자신의 상태를 보면서 그는 절망하였고,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를 느낀 나머지 옷을 찢었다. 유다민족의 죄와 그 유다민족의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책임을 느끼며 그는 하나님 앞에 ‘거룩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

 

 

오늘날의 시대는 ‘거룩한 분노’를 참으로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의 시대는 다원주의 시대이고 상대주의 시대이다. 참진리,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외치는 시대이기에 좋은 게 좋다는 식이고, 좀 희한하고 특출나면 개성이 강하다는 식으로 덮어버리기 일쑤다. 죄인지, 욕망인지, 아니면 자기표현인지 별 표도 안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시대에 ‘요시야의 거룩한 분노’같은 행동은 가뭄에 콩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시대에도 ‘거룩한 분노’에 사로잡혀 주 앞에서 무릎꿇고 눈물흘리며 회개하고 자복하는 영혼을 오늘도 찾으신다. 거룩을 상실한 시대에 참된 거룩을 회복하고자 애쓰는 자들을 지금도 찾고 계심을 기억하자.

 

 

 

결어...

요시야가 가진 세 가지의 아름다운 점, 하나님이 높이 보신 점이다. 한 가지로 결론지으면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한 인물>이다. 그러한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요시야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그를 일찍 데려가신다. 인간적으로 볼땐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이라 하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선 그 일국의 왕이 유다나라가 망하는 꼴을 보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V.28). 요시야는 하나님 앞에서

 

  • 1.영적으로 민감했다.
  • 2.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였다.
  • 3. 거룩한 분노에 사로잡힐 줄 알았다.

오늘 새벽에 기도할 때 ‘하나님, 나도 요시야처럼 하나님앞에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자.

 

구약성경 역대하 34:26-28의 본문을 가지고 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설교한 포스팅이다. 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첫째, 영적으로 민감했고, 둘째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으며, 셋째, 거룩한 분노에 사로잡힐 줄 아는 영적 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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