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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여호수아

여호수아 6장 강해, 믿음으로 전진하라

by Message.K 202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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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리고성 함락사건은 가나안 정복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건입니다. 여호수아 6장에 나타난 '여리고성 정복 사건'을 가지고 해석하면서 '믿음으로 전진하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해 봅니다.

 

 

여호수아 6장 강해, 믿음으로 전진하라
여호수아 6장 강해, 믿음으로 전진하라

 

1 여리고 성 정복 지시6:1-7
2 여리고 성 공격 6:8-21
3 여리고 성 정복 뒷이야기 6:22-27

 

또한 기록에 의하면 B.C 2세기에 시리아의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 4세에게 저항하던 마카비 집안의 맏형 유다에게 이 여리고 성 사건은 엄청난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노예가 되어 미국으로 팔려 온 흑인들에게도 무너져 내리는 여리고 성벽은 큰 위로와 소망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제국주의적인 미국 백인들의 횡포는 견고한 여리고 성벽과 비견될만한 것이었을 거라고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에게는 여리고 성 사건은 성경에서 가장 최악의 사건이었습니다. 평안하게 살고 있던 여리고 성을 순식간에 멸망시킨 것은 그들에겐 안전과 평안을 깨는 행동이었습니다. 마치 미국으로 옮겨 온 유럽인이 북미 인디언들을 가나안 사람으로 치부하면서 몰살하다시피 한 사건에 견줄만 합니다. 유럽에서 남아공으로 이주한 아프리카너들은 여호수아의 정복이야기를 흑인을 박해하는 흑인차별정책의 신학적 근거로 삼았습니다.

  

  말씀도 잘 갖다 붙여야지-그래서 신학적인 용어로 ‘exegesis와 eigesis’가 있습니다- 잘못하면 큰 역사적인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드디어 역사적인 가나안 정복의 순간입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된 보이지 않는, 뜬구름같은 약속이 손으로 만져지는 순간입니다. 요셉도 이 날을 꿈꾸며 자신의 뼈를 꼭 약속의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는 인제 가다듬고 무기를 준비하여 여리고 성을 공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공불락의 가나안 출입구, 여리고

  여리고 성은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가장 오래된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여리고성은 가나안 성읍들의 중간 규모 도시입니다. 특히, 가나안의 출입구를 지키는 성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출입구이기에 얼마나 경비가 삼엄하고 방어가 견고했을까요? 보통의 정상적인 작전으로는 정복이 어려운 도시였습니다. 가파른 경사지의 정상 부분에 위치하여 성 밖으로 큰 바위와 갖가지 장애물들이 약 35도 각도로 놓여져 있어 자연적인 방어벽 구실을 했습니다. 특히 성벽은 이중벽, 내성은 외성보다 거의 2배 이상 두터웠습니다. 그 두께가 오늘날의 4차선 도로의 폭과 맞먹었습니다. 특별히 요새화된 중요 부분은 높이가 7.5m에 두께가 6m를 훨씬 넘어 웬만한 공격에도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최첨단 방어시설로 무장한 요새였습니다.

 

 

 

가나안 정복의 첫 전쟁터, 여리고의 전쟁은 굉장히 중요!

 여호수아가 앞으로 얼마나 성공적인 사역과 리더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냐? 아니면 힘겨운 여정이 될 것이냐? 하는 갈림길이 여기 전쟁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전에 추신수와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붙습니다. 코리안데이에, 시구는 아마도 박찬호가? 추신수는 신시내티의 1번타자, lead off이다. 추신수가 인정받는 이유가 1번타자의 역할을 200%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1번 타자는 무조건 살아나가야 한다. 몸에 맞던지, 안타를 치던지, 포볼을 당하던지...추신수는 그 역할이 맞다. 클리블랜드에선 3번 타자이니깐 홈런도 쳤는데, 여기선 자기 역할이 출루가 우선이기에, 홈런이 전부 솔로 홈런뿐인 것을 보더라도 그의 책임감과 멘탈은 대단하다. 그가 늘 원한 것도 1번 타자였기도 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출루율이 5위 안에 들기 때문에 그가 더 대단한 타자인 것이다.

 

  여호수아가 정복한 여리고성은 폭이 약 200미터, 길이가 약 100미터에 달했습니다. 거주 인구는 약 2,000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여리고성은 하나님의 구원의 실제적인 예이자 표본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1절은 여리고성이 어떤 성인지를 보여줍니다.

 

“굳게 닫혀 있었다”-bolted and barred(볼트로 죄고 빗장으로 걸었다)

 

  이런 성을 함락시키려면 기적이 필요했습니다.

  기적을 연출하기 위해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진짜 말 그대로 기적을 연출하라!

 

 

 

1 여리고 성 정복 지시 6:1-7

 승리의 확신

6: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네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네 손에 붙였다! 는 말은 히브리어 동사 시제로 미래에 있을 행동이 마치 완료된 것처럼 쓰였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받을 사람에게 이미 그것을 내어준 상태를 내포합니다.

 

 

2 여리고 성 공격 6:8-21

 기적을 연출하기 위한, 승리의 원칙- 순종해야 할 몇 가지 원리들

하루에 한 바퀴씩, 일곱째 날 일곱 바퀴-여리고성 행진 행렬-<하나님 중심>

 하나님은 준비된 이스라엘에게 또 다시 황당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 7일째는 7바퀴, 그러면 합이 13바퀴입니다. 성둘레가 600미터에 불과하니 느긋하게 돌아도 20분~최대 1시간이면 마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을 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을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7일인가?

 아마도 7일과 관련된 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절기들 중에 무교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성결함을 상징하기 위해 7일 동안 누룩이 들어간 빵을 먹지 않고 지내는 기간입니다(추 12:14-20). 이스라엘이 기념한 최초의 유월절 다음부터 시작된 이 절기 중에 이스라엘을 뒤쫓던 이집트군이 수장당했습니다. 바로 앞 장인 5장에서 이스라엘은 첫 유월절을 회상하며 약속의 땅에서 유월절을 지냈습니다. 여리고 성 공격은 유월절 바로 다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렇다면 두 사건의 연관성은 확실합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이집트 군대를 수장시켜 첫 유월절에 대한 기억의 일부로 만드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여리고 성을 함락시켜 이 사건을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이 처음 기념한 유월절 추억의 일부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생각하면 가슴 벅찬 감동과 은혜를 누릴 꺼리를 제공하시는 것입니다. 체험적인 신앙인으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매일 도는 바퀴나 바퀴수, 그리고 여리고성 행진 행렬이 있습니다.

 

선봉부대←--- 나팔 든 일곱 제사장 ←--- 언약궤 ←--- 후미 부대

 

  중요한 것은 행진하는 부대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바로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냥 여리고 성을 돈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최고의 지휘관으로 모시고 돌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리더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 자신이 이끌고 있는 공동체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1-14절 사이에 법궤, 언약궤, 여호와의 궤는 무려 10번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법궤의 진행을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여호와의 임재와 언약궤가 동일한 것으로 걸릴 듯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성 정복을 위해서 하는 일은 또 하나의 종교 예식이 됩니다.

 

“단 한 바퀴만 덜 돌았어도 여리고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믿음의 리더십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도는 와중에 돌다가 위에서 돌이라도 던지면? 행주산성입니까? 부녀들이 왜놈들과 싸울 때 뜨거운 물을 갖가 붓기도 하고 돌을 던지도 했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이스라엘도 피해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강심장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강심장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 그리고 침묵

  여리고 성 함락 이야기에 ‘7’이란 숫자가 자주 등장합니다. 통일적인 숫자입니다. 7이라는 숫자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여리고 성 정복이 하나님의 사역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일곱, 일곱 번째’란 단어가 6장에서 14차례, 이 단락에서만 무려 11회 사용됩니다. 총 7제사장이 7나팔을 불며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고, 7일째되는 날은 7바퀴를 돌았다는 사실입니다. 잘 알려진 것 같이 7은 포괄성, 완전성, 완성 등을 상징합니다. 본문에서 7이 이처럼 사용되는 것은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포괄적인 승리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6일 동안 완벽한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되던 날에 쉬신 것 같이 여리고 성의 함락 역시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7째날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것도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하루에 한 바퀴씩 돌기만 한다는 것은 참 무모하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리고성 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비웃을만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 6일 돌고, 7일째 되는 날 7번 돌아라!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전쟁을 빨리 치루어서 결과가 나왔음 좋겠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기다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내 없이는 이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리더십은 무엇보다 ‘인내’가 요구됨을 말씀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영적 리더십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때에 이루십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것은 인간의 창칼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내를 요구하십니다. 마지막 7일째, 일곱바퀴를 다 돌았는데도 아무런 인기척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조짐도, 증거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조용하기만 한 처지였습니다.

Ex) 성과 순결 VS 헐리우드 문화 ‘눈에 좋아 보이면 취하라’(사탄의 아담과 하와에게 보여줬던 전략)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침묵’을 요구하신 것을 기억합시다. ‘인내하면서 침묵하는 것’은 더없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내하면서 터져나오는 것이 불평과 불만과 원망의 부정적인 언어들입니다. 10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특기가 불평, 불망인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감사를 모르는 민족이기에 그 입을 막으셨습니다. 자주 리더를 판단하고 욕하며 감사하지도 않고 반항하기만 하는 백성들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침묵’입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말은 전염성이 굉장히 강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시고 미리 영적인 면과 심리전인 면을 고려한 뛰어난 전략, ‘인내와 침묵’작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근데 불평과 불만을 다 들어주면 일이 성사되기가 힘들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삼국지에 보면 ‘말을 너무 많이 하면 마음이 빈다’는 말이 있습니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끝까지 침묵하고 오히려 말을 줄이고 인내하니 적의 비웃음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두려움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번째 순종의 원리는 ‘인내와 침묵’이었습니다.

  불평과 불만의 오합지졸 군대였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이렇게 군소리도 없이 순종을 일삼고 있을까요? 아마도 신참 리더였지만, 하나님께 순종 잘했던 여호수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리더 여러분, 팔로워들이 여러분을 잘 따라 주기를 바랍니까? 여러분이 먼저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순종하면, 팔로워들도 여러분의 본을 따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당신이 먼저 철저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짐 엘리어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탄은 적어도 세 가지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 소음, 조급함, 그리고 군중이다.”

 

리더가 이런 장애물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잠잠하지 않으면 그 분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여리고 성을 도는 일곱 제사장들이 부는 양각나팔, 즉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나팔은 전투 때 쓰는 은나팔이 아니라, 예배를 위해 불던 양각나팔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인간의 전투력으로 하는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승리를 불가능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전쟁이기에 하나님께 집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병사는 침묵한 것입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인데, 인간의 소리가 너무 시끄러우면 하나님의 소리가 잘 안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가장 큰 전투 준비는 바로 예배입니다. 이스라엘은 예배의 마음으로 여리고성을 매일 돌았던 것입니다. 순종을 통한 예배,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살아 있을 때 예배가 살아 있습니다. 예배가 살아 있을 때 가장 강한, 난공불락 여리고성 도 무너뜨릴 수 있는 강력한 전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를 위해 쓰던 양각나팔은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는 축제의 나팔이었습니다.

 

시 24: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마지막 날 축제의 나팔을 길게 불면서 백성들은 큰 소리로 승리의 함성을 외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승리가 눈에 보이기도 전에 미리 승리를 선언해 버린 것입니다. 아직 이뤄지지 않은 축복을 믿고 축제를 벌이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성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성이 무너질 것을 확신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남녀노소, 모든 사람, 모든 짐승은 죽여야!

  그러자, 가나안에서 가장 견고하다는 여리고의 성벽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60만 대군은 성안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모든 사람, 모든 짐승을 다 죽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단 하나의 화려한 사치품이나 귀중품도 노획해선 아니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잔인한 명령을 하셨을까요?

 

  여기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여리고는 달의 여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도시였습니다. 여러 가지 미신뿐만 아니라 성적으로 음란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민족들이 되었습니다. 달의 여신도 무척이나 음탕했습니다. 동성연애나 짐승과의 관계, 문란한 성생활이 문화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성병이 만연하고, 그들의 자랑인 황금 도자기, 장식물들은 모두 음탕하고 자기과시적이었습니다. 여리고는 가나안의 출입구와 같았기에 막강한 군사력과 인간의 물질주의와 섹스 문화 그리고 문화와 권력과 교만으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의 물건들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 그대로 놔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염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멸을 명하셨습니다. 진멸이란 단어가 여호수아서에 2번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c,2:10; 신 20:16-18). 귀금속은 하나님의 집에 들여놓아야 했습니다(19,24절).

 

 

 

3 여리고 성 정복 뒷이야기 6:22-27

  왜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 재건을 저주했는가?

  • 첫째, 여리고 성은 가나안 정복의 첫 열매이고 성의 폐허는 여호와의 승리를 기념하는 하나의 트로피가 되어 남겨질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 둘째,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쟁에 대한 진리를 제시해 준 하나의 예로 간직될 필요가 있었습니다.-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 셋째, 여리고 성의 폐허는 주변 국가들에게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할 만한 가시적인 효과를 지냈습니다.
  • 넷째, 페허가 된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에게도 영원한 경고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여리고 성 정복이 어떤 효과를 발휘했는가는 27절에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일을 통해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졌다고 합니다.

 

  폴 톰스는 “여리고 정복에서 주는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 전쟁의 진짜 상대는 여리고 군사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그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하나님이 여리고를 파괴시키기 위하여 온 힘을 집중하셨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말씀만으로도 간단히 여리고를 없애버릴 수 있었다....진짜 여리고 전쟁은 인간의 마음으로 상대한 것이지, 여리고 성벽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를 정복하려 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정복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무너뜨려야 할 내면의 여리고 성은 없는가? 무엇인가?

믿음으로 전진하십시오! 하나님의 목적과 비전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합시다!

 

찬양: 문들아 머릴 들으라! G

 

 

오늘은 구약성경 여호수아 6장을 '믿음으로 전진하라'는 주제로 한 강해설교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장벽과도 같았던 여리고성 함락은 하나님께서 여리고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정복하고자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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