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여호수아 4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도하는 사건을 기념하는 사건이 나타납니다. 여호수아 4장 강해설교로 '하나님의 스토리를 전수하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4:1-9 이스라엘이 기념비를 세움 4:10-14 백성들이 도하를 마침 4:15-18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강에서 나옴 4:19-24 끝: 요단강 서쪽에 도착 |
미국의 9.11 테러 대참사의 현장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의 죽음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인천항에 가면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노르망디 해안에 가보면 연합군의 상륙 작전을 기념하는 위령비가 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길갈의 열두 돌도 엄청난 역사의 현장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건축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호수아는 2백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첫 번째 도전인 요단강 도하 작전으로 기적적으로 성공시킵니다. Mission Impossible의 요단강 도하의 그 작전을 온전히 성취시킨 것입니다. 홍수가 범람했던, 우기의 수심 깊고 물이 넘쳤던 그 요단강의 바닥을 마른땅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4:1-9 이스라엘이 기념비를 세움
하나님께선 2절에서 각 지파별로 대표자 한 사람씩 12지파에서 뽑으라고 하십니다. 왜 12명을 뽑으라고 하셨을까? 3절을 다 같이 읽습니다.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2백만 명이 반나절동안 걸어 나온 그 길로 다시 돌아가서 강 한복판에 있는 무거운 바위를 매고 오라는 지시입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돌아가 돌을 매고 오라는 말씀입니다. 제사장들이 중앙에 버티고 있었고, 바닥은 마른땅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좌우에 벽처럼 바닷물이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만, 그 길을 지날 때 마음이 불안한 것도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나 봅니다. 12명의 대표자가 다시 돌아가는 길에 바닷물이 언제 덮칠지 모를 운명입니다. 그들은 이런 생사를 가르는 복잡한 문제들 앞에서 지체하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어찌 그게 가능합니까?
그들이 지체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제일 먼저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권위적인 리더라기 보다는 함께 행동하는 유형의 지도자였습니다.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먼저 물길을 헤치고 들어갔습니다. 12명의 대표자들도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용장 밑에 약졸이 없듯이, 리더는 가장 먼저 용기를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다. 리더인 당신이 주저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왜 하나님께서 열 두 개의 돌을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까?
우리가 먼 외국에서부터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기념품을 사가지고 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요단강 한복판에서 가지고 온 바위 12개로 이 요단강을 도하한 사건을 기념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과 기술이 아닌(어린 시절, 시골에 다리가 없어서 불도저로 사람을 강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였던 일화가 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넌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강 중앙에서 가져온 돌은 강변에 있는 돌과는 모양새나 특징이 다를 것입니다. 이 특별한 돌 12개를 보고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요단강 도하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할 것입니다.
이 기념비는 신앙생활에서 과거의 일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상기시킵니다. 또한 두루두루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의 도리일 것입니다. 기념비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회상이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현재와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그렇게 기념하고 기억할 만한 곳이 있습니다. 요단강 바닥같이 불가능과 절망의 자리이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었던 곳, 그곳이 바로 우리들의 ‘요단 가운데’입니다. 거기서 들고 나온 돌로 우리는 감사와 경배의 단을 쌓아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는 삶이 풍족해지거나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은혜를 저버립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요단 가운데’의 돌을 보면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또한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명령하시지 않은 것도 행했습니다.
9절에 보면, 요단 가운데, 제사장이 언약궤를 매고 있었던 곳에도 돌 열두 개를 쌓아놓도록 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그에게 내리신 명령이 아니라 자신이 감격하여 드린 찬양과 감사와 예배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지도자는 꼭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만 감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더한 열정으로 자기에게 기대되는 것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넘실거리는 파도벽을 양쪽으로 하고 사람들이 거의 다 강둑으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제사장들과 언약궤만 건너오면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여호수아와 12명의 대표들이 강한 복판으로 들어갑니다. 나오면서 그들은 바위를 매고, 들고 옵니다. 파도벽이 기둥처럼 서 있는 그곳을 갈라서 나옵니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도 힘들겠지만, 12명의 지파대표들도 굉장히 힘들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은 그 12개의 돌만 들고 나오라고 했는데, 지도자 여호수아는 12개의 돌을 요단강 한가운데 쌓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전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 가운데 열 두돌이 1세트이다, 아니다 2세트이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강중앙에 설치한 열두 개 돌 기념비를 다시 가지고 와 강둑에 쌓았기에 1세트밖에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최근에는 강중앙에 기적을 체험했던 이들의 특별한 위치를 상기시키기 위해 1세트를, 그리고 강을 나와 강둑 즉 자신들의 진영에 1세트를 이렇게 이해한다.
이들이 돌 열 두 개를 쌓는 것은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을 중재하면서 시내산 밑에 12돌 기둥을 세운 일을 연상케 합니다(cf, 출 24:4).
일을 시키면 그 일만 하는 친구가 있고, 그 시킨 일 외에 다른 일을 같이 처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비전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힘든 일을 시키시면 그 일을 기쁘게 감당할 뿐만 아니라, 그그것 이상의 일을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4:10-14 백성들이 도하를 마침
강 한가운데서 버티고 있던 제사장들과 언약궤가 다시 돌아옵니다. 거의 온종일 그들은 거기서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없이 막노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의 길이란 그렇게 고통스럽고 외로운 길입니다. 책임과 인내가 따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때론 부당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오래 참음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요즈음은 참는다는 것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말 안하고 참고 있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습니다. 무엇이든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자기 P.R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래 참음이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하나라고 나오고, 많은 영적 거인들은 기다림의 훈련을 통해 영적 나약아에서 영적 거장으로 발돋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도자들을 쉽게 판단하고 욕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들이 미우나 고우나 그렇게 말씀을 붙잡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인해 우리가 위험한 요단강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리더들에게 비난과 조롱이 아닌 격려와 칭찬으로 세례를 한번 주자!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을 보라! 가장 먼저 진격하고, 가장 마지막에 퇴각한다.
예전에 광주에서 만난 빵집 사장커플의 이야기이다. 남자사장이 원래 중소기업 이사였는데, 이 아내 되는 사람이 처녀시절에 새벽에 출근했다고 한다. 서울이 워낙 교통이 복잡하니깐 아예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새벽시간에 출근을 일찍 해서 회사일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정말 가난한, 그 무일푼의 그 아가씨가 외제차 타고 다니는 이사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리더가 잘 해야 조원들도 삽니다. 리더가 게으르면 조원들은 주일마다 디아스포라가 됩니다. 리더들이 좀 챙기십시오! 리더가 지각을 잘하면, 조원들도 지각을 잘합니다. 리더가 예전 조원시절에 말을 잘 안 하거나 조장을 힘들게 하는 짖꿎은 질문을 자주 해댔다면, 그가 리더가 되었을 때 분명히 조원으로부터 태클이 들어올 것입니다. 하는 것만큼 보상이 돌아옵니다!
4:15-18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강에서 나옴
언약궤를 매고 나온 제사장들이 나오자, 육지에 발바닥이 닿자마자, 나뉘었던 강물은 성난 물결로 다시 합쳐져 범람하는 이전의 강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모든 것이 한순간의 꿈과도 같은 사건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안이 벙벙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른땅과 같은 길, 파도벽으로 걸어왔던 무리들, 하지만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파도가 넘실거리고, 강물은 원상 복구된 것입니다.
4:19-24 끝: 요단강 서쪽에 도착
그날 밤에 여리고 성에서 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길갈에 진을 쳤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의 첫 전초 기지가 되었으며, 정복 전쟁 기간 내에 여호수아가 모든 활동의 중심지로 삼은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이곳에 여호수아는 각 지파의 대표들이 들고 온 요단강 한 가운데서 들고 온 12개의 돌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왜 요단강을 건너는 긴박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기념비를 세우도록 시키신 것은 바로 다음 세대의 신앙 교육을 위해서였습니다.
21절: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하나님은 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을 생각하고 계셨다.
빌모어는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 시민 중 25세 미만인 사람들의 사고에 달려 있다”
고 했습니다.
다음세대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었다. 당장 덮칠 것 같은 요단강을 일초라도 빨리 건너는 것이 급하건만, 하나님은 그 위급한 상황 가운데 강 한복판으로 돌아가서 12개의 돌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념하고 자손대대로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당장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위기를 극복하는 것에만 급급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 교육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의 시간 가운데 우리의 시대와 세대를 돌아보고 계십니다.
참조, 신명기 8:12-20
다음세대를 위해 하나님의 스토리를 전수하라
모세오경의 마지막 책, 신명기는 ‘다시 반복하여 말하다’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광야생활을 지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꼭 지켜야할 영적 진리들을 정리한 책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아비들아, 네 자녀들이 묻거든... 이렇게 말해 주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하나님이 보시는 교육의 가장 기본은 아버지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간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재들은 대학원을 덜 다니고 유치원을 좀 더 다녀야 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전문적인, 엘리트중심 교육이 진정한 리더의 역량 개발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겐 유치원을 좀 더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적 삶의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들려줄 영적 스토리, 간증이 있습니까? 세상사람들도 똑같은 스타일과 옷, 의식주를 따라하지만 그대로 여러분의 가슴에 있는 내용물을 내어놓을 때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습니까? 아니면 겉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이 똑같습니까? 여러분, 결혼할 때 형제는 무얼 젤 많이 봅니까? ‘외모’입니다. 비주얼 한 것이죠. 집안? 재력? 좋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신앙’보다는 앞설 수 없습니다. 결혼 전에는 모릅니다. 결혼하면 더 많이 부딪힙니다.
자매들은 결혼할 때 뭘 봅니까? 능력을 봅니까? 능력, 좋습니다. 능력 있으면 편합니다. 시간되면 골프 치고, 메이컵, 피부마사지, 온천에 가고... 돈 좀 있는 아줌마는 오전에 잠깐 매장에 갔다가, 오후 내내 온천에 가 산답니다. 그렇게 사실 수 있습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돈을 물려주시겠습니까? 돈, 재산도 불확실합니다. 확실한 것은 신앙 밖에 없습니다. 부부관계도, 자녀들도, 가족도 마찬가지!
한번 뿐인 인생 곧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만 영원하리라
-존 파이퍼
배부른 시대, 영적 기아의 시대에 부모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녀에게 영적 지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스토리를 전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토록 갈망했던 물질적 풍요와 안정이 오히려 다음세대에겐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20세기 초는 나라가 일본으로 넘어가던 민족의 수난기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의 다음 세대는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 학교에서 성경을 배웠고, 기도를 배웠으며, 결코 꺾이지 않는 자유와 사랑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그 당시 이렇게 교육받은 코흘리개들이 바로 현대 한국의 핵심 리더십이 되었습니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풍요 속에 자란 한국의 다음 세대에게 우리는 길갈에 세운 열 두 돌의 메시지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의 각 분야에서 늘 톱클래스의 다수를 차지해 온 민족을 어느 민족?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의 우수함의 비결에 대해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자 젠슨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들의 기본적인 IQ는 백인과 동등하며, 오히려 일본계나 한국계보다 다소 낮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무슨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가? 그것은 바로 부모에게서 교육받은 신앙의 힘입니다. Ex) 영화 ‘뭰헨’- 자부심이 대단한 민족!
그들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특별한 자부심을 전수받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면 어디에서든지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서 무슨 분야에 뛰어들든지 머리가 되겠다는 비전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결정체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명문 아이비리그에 재학하고 있는 한국 대학생의 70%가 성적 하위권에 속한다고 합니다. 분명 입학할 때는 실력차가 나지 않았는데, 가면 갈수록 성적 수준이 낮아집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낙제를 하면 일년 정학을 시키는 제도가 있는데, 수년 전 10년의 아시아계 낙제생 중 9명이 한국인이었다고 합니다. 놀란 하버드 대학교 학자들이 연구해 본 결과, 이들 한국계 낙제생들은 하버드 대학교 입학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지 그 이상의 장기적인 인생의 목표와 꿈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다음 세대에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신앙의 힘을 체험케 하는 것입니다. 곧 영적 부흥입니다. 길갈의 열 두 돌 스토리 즉, 하나님의 스토리가 역사 가운데 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길갈(Gilgal)은 히브리어로 ‘굴러간다’ 혹은 ‘둥근 원’이란 뜻입니다. 길갈에 열 두돌을 세웠다는 것은, 홍해를 건넌 것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요단강을 건너 새로운 땅으로 왔다는 의미입니다. 노예근성과 비겁합과 수많은 열등감과 타인의존성과 부정적인 모든 것들, 이제 하나님은 요단강을 넘는 바로 그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길갈에 열 두 돌을 세우게 함으로써 이제 완전한 새 사람, 새 민족으로 태어났음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영적 지식, 하나님의 스토리를 전수하라!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당신이 겪은 성공과 실패를 잊지 말고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라.”
영적 스토리를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라! 하나님의 스토리를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라!
자녀들에게 신앙의 비전을 심어줄라! 하나님의 스토리로 가슴에 수놓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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