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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여호수아

여호수아 5:1-12 강해설교, 영적 리더십을 견고히 세우라

by Message.K 2023. 5. 21.

구약성경 여호수아 5장 1-12절을 토대로 '영적 리더십을 견고히 세우라'는 주제로 강해설교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여호수아 5:1-12 강해설교, 영적 리더십을 견고히 세우라
여호수아 5:1-12 강해설교, 영적 리더십을 견고히 세우라

 

 

“영적 리더십의 파워는 하나님께 지휘권을 내어 드리는데서 나온다.”

 

 

여호수아 5장 1-12절 본문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2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 1 가나안 사람들의 좌절(5:1)
  • 2 이스라엘이 할례를 행함(5:2-9)
  • 3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지킴(5:10-12)

 

 

 

 

1 가나안 사람들의 좌절(5:1)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요단강 도하 사건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더라'고 나오는 장면입니다.

 

 

2 이스라엘이 할례를 행함(5:2-9)

  백전백승의 명장으로 유명했던 로마 황제 줄리어스 시저는 자신의 전쟁기를 자세하게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게르만 민족과의 대전쟁을 그린 ‘갈리아 전쟁기’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저도 한때 ‘로마인 이야기’에 빠져서 시저가 지은, ‘갈리아 전쟁기’와 또 다른 저서를 구입해서 읽다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책에 꽂아둔 기억이 있습니다. 근데 그 책에 대해 후세의 학자들은 말했습니다.

 

“다른 장군들과는 달리 시저에게 있어서 전쟁의 목적은 단순히 싸움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 지방을 통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저는 뜬금없는 그 지방의 풍속, 지형의 특색, 사람들의 모습을 ‘전쟁기’에 기록한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도 뜬금없이 하나님께서 엉뚱한 명령을 내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적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제 전쟁에 출두하기만 하면 전쟁의 승리는 따놓은 당상입니다. 12개의 기념돌을 가져와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자손들을 위해, 다음세대를 위해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또다시 엉뚱한 일을 명하십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영혼을 가다듬는 준비

  당장 코앞에 벌어지는 시험을 패스하고, 사업에 성공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과 생각과 마음이 진정한 승리자의 그것으로 다듬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영혼을 가다듬는 소비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은 ‘할례를 받으라’입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성인 의식이나 위생상의 이유로 초점이 맞추어진 반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할례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징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영적 숨고르기-할례를 받으라!

2절을 다같이 한번 읽습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어쩌면 여호수아에게 ‘사자의 심장을 가져라’고 이야기할 때부터 이미 모든 판도를 자기의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것으로 만들어 놓으신지도 모릅니다. 가나안 군은 이미 이스라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조성되어 있었고, 간담이 녹았습니다. 하나님의 가나안 정복사역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성경은 ‘여호와이레’(cf, 창 22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가나안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대목이었습니다. 출애굽 할 당시에도 홍해를 마른땅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조금도 쇠하지 않았음을 요단강 도하 사건을 통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사람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은 전쟁을 잘 하는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칭기즈칸이 몽골대륙을 호령할 때 칭기즈칸의 장수들은 말을 잘 탔다고 합니다. 기병이라고 할까요? 말은 곧 기동력을 말하고, 식사도 말을 타고 가면서 할 수 있도록 휴대용으로 쇠고기 육포로 간편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 광대한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칭기즈칸의 후예들!

그런데 이스라엘은? 기동력이 있습니까? 무기가 있습니까? 농사를 짓는다고 곡괭이나 호미, 낫이라고 있습니까? No~ 전혀 그런 것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유목민이니깐 아무래도 지팡이나 막대기 정도 가 있지 않았을까요? 전쟁의 ‘전’자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간담이 녹는다’는 표현은 좀 어불성설이지 않는가? 하지만 하나님께서 1절에 보면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다시(lit, 두 번째) 할례를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 한 세대들은 할례를 받았지만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 이후에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는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을 창조 사역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은 땅을 소유한 민족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신분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하니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예식, 할례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새롭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들이 요단강을 건넌 때가 첫째 달 10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4:19), 이들은 4일 후면 유월절(레 23:5)을 지켜야 했습니다.

 

레 23:5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유월절은 할례를 받은 자만이 참석할 수 있는 절기였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에 입성하여 처음 지내는 유월절에 참여하려면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할례를 행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하는 데 의식적으로 문제가 없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성전(holy war)입니다. 이스라엘은 의식적으로 깨끗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적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여리고성을 앞에 두고 이제 전쟁을 하기 위해 모인 이스라엘 2백만 명이 할례를 한다고? 그것도 적군 앞에서? 장정 60만 명의 남자가 할례를 하게 되면 일주일정도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60만 명이면 의사도 60만 명이 필요하고, 간호사, 보조도... 대단한 행사입니다. 무슨 이벤트도 아니고? 군사력을 대변하는 남자들이 할례를 하게 되면 군사력상실, 군사력 마비에 해당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명령하셨다.

 

 

 

“다시 할례를 하라!”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명령하실 때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불합리해 보이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EX) 찰스 스탠리에게 믿음을 심어준 할아버지의 이야기

 

  이스라엘은 할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을텐데, 비록 광야생활이었지만 할례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전혀 가능하지 않았나 봅니다. 아마도 그들은 ‘돌칼’로 할례 즉 포경수술을 한 듯합니다. 오염이나 병균에서 염려하지 않아도 될 상태와 쉽게 구할 수 있는 돌 칼로 수술을 했던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쟁을 앞두고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그것은 바로 1절에서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이레!

 

 

 

 한 선교사님의 헤프닝 사건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좌절된 꿈의 치유>라는 데이비드 a. 씨맨즈의 책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한 선교사님이 한 동네에서 또 다른 동네로 주일날 설교를 하고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배를 타야 다음 예배의 장소로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스케줄이 너무 타이트해서인지 뱃시간에 겨우 도착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타야 할 배가 지금 선착장에서 떠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배를 놓치면 주일 예배와 설교 사역을 놓치는 것이니깐 선교사님은 마음이 급했습니다. 배가 선착장을 떠날 때 그는 높이 뛰기 선수처럼 도움닫기를 하고 힘껏 달렸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행히 배에 겨우 다치지 않고 무사히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 있어 선장과 선원들이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선교사님을 쳐다봅니다. 그 배는 실은 들어오는 배인데, 떠나는 배인 줄 알고 선교사님이 그런 해프닝을 벌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과 환경이 이 선교사님처럼 '떠나는 배'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실은 지금 현실은 '들어오고 있는 배'의 상황인데도 말이죠.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면,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할례가 필요한가?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할례 너머에 있는 순종이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40일이면 통과하고 가나안 땅에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40일 동안 뺑뺑이 돌리고선 이제 그들은 다 죽여버리고,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다음세대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서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는 불순종한 사람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는 동안 할례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종하지도 않는 백성을 언약의 백성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순종의 사람이 되라

  백성들이 할례를 받고 아물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 할례 예식을 통해 드디어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9절). 그래서 이때부터 그곳 이름을 이날까지 “길갈”(‘굴린 곳’ 혹은 ‘돌들로 만든 원’, Halot)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유래도 첨부되었습니다.

 

 

 

 이집트의 수치는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일부 주석가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며 겪었던 수모로 해석하기도 하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광야를 배회하다 죽은 출애굽 1세대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다른 학자들은 이집트를 떠나 곧장 약속의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한 것에 대한 이집트 사람들의 비아냥과 놀림이라고 풀이합니다. 다 일리 있는 해석입니다. ‘애굽일보’가 있었다면, 이스라엘은 40일 만에 들어가는 가나안 땅을 40년이 돼서야 겨우 들어가게 되었다고 대서특필하지 않을까? 이것은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수칫거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이런 수치를 벗어던질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할례를 받아서가 아니라 할례를 상징하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해 여호와께서 오래전에 애굽에서 약속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이 백성이 차지할 날이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이집트의 수치’가 어떤 의미로 해석되든 간에 이집트와 관련된 모든 아픔과 수모가 이 순간부터 이스라엘에게서 완전히 제거되었음을 역설합니다. 우리도 사탄이 통치하는 죄의 나라를 떠나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했을 때, 우리의 과거와 연관된 모든 수치가 없는 것과 같이 되지 않았는가?

 

 

 

3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지킴(5:10-12)

  다시 할례를 행하라 이후에 또 하나, 바로 유월절을 준수하는 일이었습니다. 광야생활하면서 지키지 못했던 유월절, 율법을 정확히 준수하고 있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할례를 행한 이스라엘 남자들은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에서 드린 첫 유월절 예배는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가의 언약관계를 확인하는 예식이었습니다. 유월절 성격과는 조금 다릅니다. 첫 번째 유월절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차별화하셨던 사실을 감안하면, 유월절은 이스라엘을 주변 백성들로부터 차별화하는 절기였습니다. 처음 유월절이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람들을 구분했던 것처럼, 이 유월절은 이스라엘과 가나안 사람들을 구분 짓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6개의 유월절 이야기

  • 1.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이 끝났음을 의미
  • 2. 이스라엘의 방랑생활이 끝났음을 상징
  • 3.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것을 계기로 삼음
  • 4, 5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유월절은 그들이 추진하던 종교개혁의 절정(대하 30장; 왕하 23:21-23)
  • 6. 에스라의 유월절은 성전 재건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유월절 음식을 나눈 일(스 6:19-22). 이처럼 유월절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기념함으로써 주의 백성이라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절기였습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병, 즉 누룩 yeast이 들어가지 않는 빵을 먹었습니다. 누룩은 부풀리는 발효 기능이 있어 음식의 본래 모습을 변질시킵니다. 또 잘 상하므로 음식물을 부패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룩은 영적으로 인간을 상하게 하고 부패하게 하는 것, 곧 죄로 오염시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빵을 먹으라고 하신 명령에는 진실하고 거룩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이라도 해도 하나님 앞에 정지하지 못하고 반듯하지 못한 영혼은 언제 어떻게 넘어질지 모릅니다.

  또한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은 맛이 없습니다. 이것은 애굽 생활의 고난을 잊지 않고, 늘 오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할례와 유월절 의식을 거행함과 동시에 하나님은 만나를 그치게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철이 아닌 때에 가나안에 들어왔다면 만나도 없고 양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정확하게 추수철에 들어오게 하심으로 양식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 그리고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간에 전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시는 방법이 이제 바뀌었음을!

우리는 상황과 환경과 여건의 변화에 따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의 모습도 바뀔 수 있음을 의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보살피지 않습니다.

 

설교 후 찬양: 아버지여 구하오니 G(인터콥)

 

오늘은 구약성경 여호수아 5장 1-12절의 본문을 가지고 '영적 리더십을 견고히 세우라'는 제목으로 강해설교한 내용을 공유해 보았습니다. 요단강 도하 후에 가장 먼저 행한 이스라엘의 일은 바로 '할례'였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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