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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시편

시편 121편 강해설교,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by Message.K 2023. 5. 2.

구약성경 시편 121편의 내용을 가지고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란 주제로 유아부를 맡고 있는 교사기도회 때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그분은 졸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고, 그분은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21편 강해,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편 121편 강해,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편 121편 1-8절은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에 대한 시편

 

 

 

졸지 않으시는 하나님(1-4절)

시인은 자신의 곤궁과 환난을 어디서 해결책을 모색할까 고민하지 않는다. 시적으로 "어디서 올꼬"라고 표현하지만 그는 이미 해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산’이고 산이라는 심상은 자연을 의미하지만 그 자연의 배후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2절에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의 빠져나갈 구멍과 비상구가 하나님께만 있음을. 

‘산’은 시적인 이미지 언어이다. 하나님을 대변하는 이미지이다. 거대한 산, 월터 스토프 박사는 자신의 아들을 절명케 한 그 산, 알프스 산맥에서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보았지만 자신의 여가를 그 산에서 보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고 하였다(‘아버지의 통곡’을 읽어 보라!!!)그것은 바로 산이 주는 거대한 임재감, 장엄함, 그 깊이와 폭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시인은 알고 있다. 자신의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지…그것은 바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이시다.

 

 우리에게 직면한 문제들과 어려움들이 있는가?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는 현실 앞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시인의 자세가 아닐까? 다른 길이나 다른 방법을 모색중이라면 그렇게 해 보라. 다른 도피처가 있다면 찾아보라. 그러나 결국 우리들은 시인처럼 그 앞에 굴복하여야 한다. 그게 우리가 살 길이기 때문이고 그것을 주님은 원하신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주님, 제가 시인처럼 주를 향하여 눈을 들겠습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요.

 

하나님의 장엄한 속성 뿐만 아니라 아주 애틋한 속성과 신실한 속성을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다. 원래 권위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이며 웅장한 이미지를 가진 사물이나 사람은 인간적이고도 자비로운 경향이 별로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신실한 하나님은 그렇지 않음을 여기서 보여준다.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졸지 아니하시리로다’ 그는 나의 마음의 아픔으로 인하여 실족케 하시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 분은 ‘나를 지키시는 자’이시다. 누구도 나를 지켜줄 순 없다. 이 세상에 유일한 분, 그 한 분만이 나를 지켜주신다. 그 분은 항상 깨어 계시고 피곤치 아니하시고 지치지 않는 맘으로 나를 지키신다. 그는 졸지도 않으신다. 깜빡 졸지도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왜 제 기도 들어주시지 않았나요? 금식을 40일 넘게 하면서 철야까지 했는데 왜 응답하시지 않나요?” 이렇게 물었다고 치자. 주님 왈 “아, 내가 그땐 출장중이었단다. 그래서 자릴 비웠지.” 아니면 “아 그때 네 기도할 때 내가 깜빡 졸았구나. 너무나 많은 업무와 기도제목들과 욕심으로 가득한 세상 사람들의 기도 때문에 내가 일중독증Workholic과 비슷한 기도응답중독증으로 말미암아 쓰러졌단다. 미안하구나. 나도 내 체력에 한계를 느끼는구나. 밀레니엄 2000년이 되기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말야. 1999년만 해도 생생했는데 세월은 못 속이는가봐” 뭐 이렇게 이야기했다 치자. 그러면 우리는 참 슬플 것이다.

 

 

 ‘Bruce Almighty’라는 영화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지극히 잘 보여주는 대목이 좀 있다. 세상의 모든 기도들과 사람들의 마음과 만사를 질서정연하게 절대로 무질서하고 혼돈스럽고 혼탁하게 내버려두시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때론 대단히 규칙적으로 운행해 가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속성을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 브루스는 자신이 신이 되고자 했고 정작 그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제목이 자기에게 청구되었다. 이메일로도, 포스트 잇으로도...수많은 기도제목들이 올라오니 그는 신이 된 것이 너무 귀찮고 성가셨다. 결국 그는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보낸 이메일 기도제목을 전체선택해서 "YES"라는 답장을 해준다. 하지만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의 기도는 때로는 욕망이고 야망이 배여 있다. 그 야망과 욕망이 기도제목으로 표출되었는데, 그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제목을 다 응답해주는 브루스 때문에 지구는 혼돈의 사태를 벌이게 된다.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된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지니 당첨금도 고작 몇 달러에 불과하다. 1등 당첨인데 말이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자연재해가 우후죽순 터지게 된다. 모두가 인간의 욕망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이렇게 기술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4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 그의 백성을 지키시는 하나님. 피조물을, 전(全) 피조물 가운데 개입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그 하나님에겐 쉼이 없다. 그 하나님에겐 건망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는 위대하신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인생이 주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 아름다움의 주인공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듭니다. 나의 눈을 듦을 굽어 살펴 주소서. 내가 맡은 어린애들을 주께 의탁합니다. 나의 가정과 자식과 남편과 시부모님과 부모님과 친척들과 모든 이들과의 관계와 교회와 직장과 그 외의 모든 것을 주께 맡깁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듭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신실하신 하나님’, 늘 신선하고 늘 강력한 강장제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 그 주님을 바라봅니다.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5-8절)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3,4,5절 계속적으로 반복하고 7,8절에서도 그의 지키심을 유독 시인은 강조하고 있다. 세상의 그 어떤 왕이나 정권이나 권세나 사람이 우릴 지킬 수 있는가? 

오직 주님만이 우릴 지키시며 우릴 도우시며 우릴 채워주신다. 

여호와께서 네 우편의 그늘이 되신다. 작열하는 태양과 무더위의 여름에 그늘은 정말 한 숨 돌릴만한 피난처이며 귀한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주님은 나의 우편의 그늘이 되신다.

또한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나를 ‘상치 아니하며 해치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창조주의 그늘에 있는 사람은 결코 창조주의 피조물들이 그를 해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하나님의 지배와 정복과 그의 권세 아래 있지 아니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모든 것이 그의 손아귀에 있음으로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그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환난의 경중을 따지고 환난의 종류를 따지지 않고 주님은 우리의 모든 환난, 하나도 빠지지 않은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고 또한 나의 영혼까지 지키신다. 영혼은 마음이며 이것은 생명의 근원이다-잠언. 

 

나의 모든 환난-돈, 이성, 사역, 학교, 장래, 결혼, 자손, 자녀, 남편, 직업, 사람들과의 관계… 이 모든 것들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망각치 말자. 주께서 나의 환난을, 나의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내 영혼을 지키심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그 종국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의 사건들을 주께 맡깁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하나님 아버지, 나의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 한 인간이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삶, 그리고 모든 일의 일상들을 지키심을 믿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지키고 계시느라 잠들지 않는 눈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프란시스 베이컨

 

 

구약성경 시편 121편을 강해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했습니다. 졸지 않고 우리를 지키시는 그분의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를 지금도 지켜보시기에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는 시인의 시적인 질문에 우리도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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