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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시편

시편 131편 설교, 젖뗀 아이의 평안

by Message.K 2023. 9. 1.

시편 131편의 본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영혼, 심령의 상태를 노출한 대목이 굉장히 고무적인데요. '젖뗀 아기'의 마음을 생각해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상태, 그리고 목적까지도 한번 이야기해 본 설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시편 131편 설교, 젖뗀 아이의 평안
시편 131편 설교, 젖뗀 아이의 평안

 

 

시편 131편 본문

  •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편 131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이 시편에서 다윗의 상태는 2절에 말씀처럼 '고요하고 평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에서 이러한 고요함Calmness에 대해서 '정원garden'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정원처럼 평온하십니까?

여러분은 평안하십니까? 편안이 아니고 평안입니다. 편안한 것은 퇴근 후에 집에서 아무런 방해 없이 혼자서 넷플릭스를 정주행할 때도 올 수 있습니다. 제가 부교역자 시절에 월요일날 테니스를 치기 않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미국 야구방송 메이저리그경기를 혼자서 볼 때 엄청 행복해했습니다. 그때는 아마 추신수가 활약했던 때였던가? 그 경기를 보면서 저는 피곤해서 졸면서도 그 경기를 보고 편안해 했습니다. 그때의 저의 로망은 '미국에 가서 추신수가 나오는 MLB경기를 직관하는 것'이었는데요. 지금 돌아보니 정말 너무 조약한 로망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로망이나 꿈이나 버킷리스트가 너무나 의미없다는 생각을 하는 1인 입니다.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평안'입니다. 나이가 드니깐 힘이 빠져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힘이 없는 노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제 인생에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건강하다고 자부합니다. 근력도, 체력도 그만큼 운동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매일 짧지만 근육운동을 하고 매주 조기축구에서 한번씩 골도 터트리면서 체력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20대에는 미치지 못할 수준이겠지만, 제 멘탈과 함께 제 몸이 어느 때보다도 건강합니다. 

 

힘이 빠진다는 것은 20대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실패와 패배, 인생의 시행착오를 겪어 본  사람만이 가지는 그 무엇이 있거든요. 그런 깊은 절망을 경험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내려놓음이 제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힘이 빠지는 것, 힘을 빼는 것이 왜 중요한가?

제가 30대에 테니스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테니스는 스윙을 할 때, 스매시를 할 때 힘을 뺄 때 더 잘 나갑니다. 야구도, 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축구의 킥 연습을 자주 하는데, 힘으로 찰려고 하면 오히려 공이 잘 안 나가더군요. 오히려 뒤에서 오는 반동을 이용해, 팔로잉한 반동을 이용해 그대로 공에다 갖다맞힌다 생각하면 원하는 방향을 잘 가는 것이 공이더군요. 볼링도 마찬가지입니다. 뒤에서 엄청난 반동과 함께 스윙을 하고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공을 바닥에 놔두고 온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인데요. 자꾸 힘이 들어가면 공이 엉뚱한 데로 갑니다. 전문가가 아닌 취미로 하는 스포츠인의 하나의 견해일 뿐입니다만.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힘이 들어가면 사달이 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직장생활도, 가정생활도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힘이 들어간다는 것은 욕심이 붙었다는 뜻입니다

제가 스포츠를 좋아해서 스포츠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도 우리는 힘이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 근래에 대두되었던 학부모 갑질 사건 같은 경우도 결국은 자녀교육에 힘이 너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힘이 너무 들어가니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선한 영향력 대신 악한 영향력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젊을 때는 힘이 빠지지 않습니다. 힘을 주체할 수가 없기도 합니다. 젊음의 열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방황하기도 하고 표류하기도 합니다. 인생에 그런 시간도 필요합니다. 흔히 '사춘기'라고 하는데. 학창시절의 사춘기가 있을 수 있고, 20대 이상, 아니 결혼하고서도 누구나 사춘기가 올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무언가를 표출하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데 드러낼 수가 없을 때 사람이 곪게 됩니다. 너무 참으면 곪아 터지게 됩니다. 적당한 힘을 빼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너무 젊을 때는 힘이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힘이 저절로 빠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저절로 빠지지는 않습니다. 사람마다, 성향마다, 기질마다 다르겠지만, 육체적인 힘이 빠지는 차원이 아니라 욕심의 강도가 어떻게 되느냐가 관건이겠습니다. 

 

 

 

다윗은 1절에서 '힘을 쓰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다윗이 이 시를 언제 적었는지 살펴보야 할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다윗이 이 시를 지을 때의 상황을 1절에 이렇게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다윗은 여기서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합니다. 힘을 뺐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교만, 눈의 오만함이 존재하지 않고,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하지 않다는, 노력하지 않는다, 힘쓰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것을 볼때 아마 다윗의 노년기에 이 시를 적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적어도 다윗의 인생에 큰 위기를 지나고 난 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힘을 빼는 것은 스스로 잘 안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 본 사람만이 힘을 뺄 수 있습니다. 실패를 많이 경험해 본 사람만이 힘을 뺄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들도 수많은 경기와 수많은 연습량을 통해 실패를 많이 경험해 본 사람만이 힘을 빼고 탄력적인 운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다윗의 상태가 바로 힘을 뺀, 힘쓰지 아니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하다는 것은 교만한 당사자는 모릅니다. 힘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교만한 것이고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눈이 오만한 줄 안다면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의 욕심, 힘이 너무 들어간 밧세바와의 간통사건

다윗의 밧세바와의 간통사건이 바로 다윗의 눈의 오만함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세상에 수많은 처녀들이 있고 왕의 권위와 힘을 이용해 충분히 아름답고 섹시하고 자기 구미에 맞는 여자들(한 여자만 아니라 일부다처제의 제도에서 더 많은 여자들과 결혼을 할 수 있는데 말이죠)과 결혼할 수 있는 다윗의 위치인데 왜 하필이면 충성스러운 부하 장수 우리야의 아내의 알몸을 보고선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점입니다. 지붕에서 목욕하는 여인의 알몸을 보고서 그 사람이 자신의 부하의 아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냥 잊어야 하는 것인데, 오히려 다윗은 집요하게 그녀에게 집착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육체를 탐합니다. 그것도 유부녀의 육체를 말입니다. 다윗의 '선을 넘은 욕심'이었습니다. 물론 잘 나가는 왕국의 군주로서 선을 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을 기름부어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질서, 하나님이 정해주신 선을 넘은 욕망이었다는 것 입니다. 이게 욕심이고, 이게 교만이고, 이게 오만입니다. 욕심이 들어가니깐 자신의 간통사건을 덮고 싶어합니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부패한 이력을 덮기 위해 안달하는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에게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싫으니깐 결국 그토록 충성스런 부하 우리야의 목숨까지도 살인하게 됩니다. 이게 인간의 욕심의 현주소입니다. 권력자의 위치에 가니 자신의 힘이 더 비대해지니깐 그걸 함부로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욕망의 힘, 다윗의 탐욕의 힘이 너무 들어간 탓입니다. 

 

  •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결국 다윗의 힘이 너무 과한 나머지 간통하게 되고, 부하장수를 죽이게 되고, 그것을 은폐하고자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습니다. 결국 힘이 너무 들어간 탓입니다. 힘이 너무 들어가면 사달이 납니다. 욕심이 과하면 죄가 되고 죄가 과하면 사망이 됩니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을 뼛 속 깊게 느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자신은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힘쓰지 아니할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저마다 경제적인 자유를 위해 힘쓰고 애씁니다. 유튜브에선 '돈 버는 것'에 대해 혈안이 되어 수많은 이야기들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화두는 '돈'입니다. 돈 되는 것에 사람들이 몰립니다. 물론 돈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돈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작년 말이었던가요? 제자가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이 신년에는 자신에게 아주 비싼 가방을 하나 선물하고 싶었다면서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배드리고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과연 그 가방이 필요한가? 명품가방이 필요한가? 질문하면서 회개하고 그 돈 백만원을 그냥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다고 하면서 제가 그 헌금을 보냈습니다. 이 친구가 원래 자신의 월급을 저축하면서 삼성전자에 투자를 하고 있었는데, 한참 삼성전자 주가가 떨어질 때 그는 과감하게 주식계좌에 있는 돈을 다 인출했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의 생각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물질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는 정말 리스펙합니다. 그 친구는 돈에 대해 애쓰지 않습니다. 아직 젊기도 하고 아직 대학졸업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돈에 대해 자유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요즘 사람들의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듯 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경제적 자유나 경제적 독립도 중요하지만 확실히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적당한 저축, 적당한 투자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거기에 올인하는 것도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이 너무 가난한 것도 저는 원치 않습니다. 너무 가난하면 너무 찌질해 집니다. 중요한 것은 '적당한 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00억 자산을 만져본 적도, 소유해 본 적도 없어서 모르는데, 너무 부자가 되면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세금'이라고 유튜버 주언규의 방송에서 보았는데요. 세금폭탄을 맞기 때문에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도 했는데요. 또한 어떤 이는 사람이 월급 700만원 까지는 어떻게든 돈을 더 벌려고 노력을 하는데, 700만원이라는 마지노선을 넘으면 생활수준이나 모든게 비슷비슷하다고 합니다. 상대적 만족감이 그만큼 덜하는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는데요. 경험해 보지 못해서 저도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가난하든 부요하든 '마음의 평안이 있는가'를 늘 물어봐야 하고 대답을 들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100억을 가지고서도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답답해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매일의 평안입니다

다윗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져본 군주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한 가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자신의 내면세계의 고요와 평안이고 그걸 대변해주는 것이 바로 '젓 뗀 아이와 같도다'입니다. 아이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돈도, 자가용도, 주택도, 주식도, 자산도, 관계도, 배우자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한 사람 '엄마'만 있으면 됩니다. 어머니 품에 있기만 하면 제일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도 젖을 먹고 난 후, 배가 부른 상태에서 엄마 품에 안겨서 잠든 아이의 모양새입니다. 이게 다윗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대변해줍니다. 그만큼 다윗의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젖을 떼다는 것은 이 아이가 엄마의 젖을 끊고 이유식을 시작했다는 말이 아니라 엄마의 젖을 항상 필요로 하는 갓난아기인데, 배고플 때 어머니의 젖을 충분히 공급받고 그 포만감에 젖을 떼고 안겨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어떤 불안이나 두려움이나 고통의 빛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염려, 대출에 대한 걱정,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냥 엄마 품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행복이고 만족이고 전부입니다. 그게 다윗의 영적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젖 뗀 아이의 평안입니다.

 

젖뗀 아이의 평안의 주체인 엄마, 즉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라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지금 이런 상태입니까? 

 

  •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그런 다윗이 자신의 백성이자, 자신의 나라이자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외치는 마지막 3절의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필수적이고 필요한 존재를 바라는 것인데, 바로 그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이에게 어머니같은 존재이니깐. 아이는 엄마만 바라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엄마만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신의 자녀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젖뗀 아이'의 평안을 경험하고서 자신의 백성들을 향해,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향해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라고 힘주어 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말 그대로,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리스도가 빠진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그냥 인간, 자연인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만을 바라고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와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산형성에 있나요? 노후대책, 연금계획에 있습니까? 아니면 자녀의 성공과 화려한 출세, 번듯한 결혼에 있나요? 아니면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아파트나 부동산 보유에 있습니까?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위로의 목적지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젖뗀 아이'의 평안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문 

1.질문입니다.

  •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입니다

  • -살아서나 죽어서나
  • 1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 2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 3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
  • 4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셨습니다.
  • 5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 6 나를 보호하시며,
  • 7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 8 그러하므로 그분은 그의 성신으로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 9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를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 10 1롬 14:8; 살전 5:9-10 2 고전 6:19-20 3 고전 3:23; 딛 2:14 4 벧전 1:18-19; 요일 1:7; 2:2,12 5 요 8:34-36; 히 2:14-15; 요일 3:8 6 마 10:29-30; 눅 21:18 7 요 6:39; 10:27-30; 살후 3:3; 벧전 1:5 8 롬 8:28 9 롬 8:16; 고후 1:22; 5:5; 엡 1:13-14 10 겔 36:26-27; 롬 8:14; 고후 3:6,18; 요일 3:3

2. 질문입니다.

  • -이러한 위로 가운데 복된 인생으로 살고 죽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답입니다.

-다음의 세 부분을 알아야 합니다.

  • 1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
  • 2 둘째,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 3 셋째, 그러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 4 1 마 11:28-30; 엡 5:8 2 마 9:12; 요 9:41; 롬 3:9-10; 요일 1:9-10 3 눅 24:46-47; 요 17:3; 행 4:12; 10:43; 고전 6:11; 딛 3:3-7 4 시 50:14-15; 116:12-13; 마 5:16; 롬 6:12-13; 엡 5:10; 딤후 2:15; 벧전 2:9,12

 

오늘은 시편 131편 1-3절의 본문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에게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오는 진정한 만족과 위로와 평안을 누리는 '젖뗀 아이의 평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론으로는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제1주일의 내용을 가져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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