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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시편

시편 139편 1-6절 설교,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by Message.K 202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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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시편 139편 1-6절의 본문을 토대로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과거에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인생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묵상과 해석입니다.

 

 

시편 139편 1-6절,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시편 139편 1-6절,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시편 139편 1-6절 본문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갖가지 수없이 많은 다양한 상황들과 환경들에 직면한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의 내용들은 마치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같다는 소릴 흔히 한다. 사실인즉,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 인생의 이야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나갔던 일을 과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을 현재,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앞으로 진행될 일을 미래라고 나누어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소설가, 작가가 하나의 소설 작품을 쓴다고 가정할 때 그 작가는 앞으로 자기의 작품세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고 줄거리가 어떻게 펼쳐질 지 훤히 꿰뚫고 있다. 관통하고 있다. 왜냐하면 작가의 머릿속에는 모든 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 현재의 일, 미래의 일 이 모든 것들을 염두에 둔 채 작가는 글을 쓰기 때문이다.

  

 

 

인생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시는 하나님

오늘 시편 139:1-12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기에 인생은 결코 하나님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내용들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지, 다른 어떤 종교나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나 가르침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시편 139편에서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1-6절: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시편 139편에서는 철저하게 시인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 1-6절 에서만 ‘나’라는 말이 10번이나 나온다. 주(님)이란 단어와 함께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많은 관계,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사람들과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배우자조차도 우리의 마음 속, 속내를 다 알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고 말씀하신다. 구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님, 주께서 나를 샅샅히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샅샅히 알고 계신다. 영어성경에서는 search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검색하다, 찾다, 살펴보다, 조사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상상을 해 보자. 천국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모든 데이터와 자료와 정보가 저장된 개인용 컴퓨터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동원하시든지 아니면 자신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신상명세서, 죄의 경력, 이력, 활동지역 등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정보를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지구의 시간으로 주후 2006년 7월 12일 현재시각에 대한민국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출석교인들의 신상명세서’를 한 번 프린트해 보아라. 그리고 그들의 죄의 경력도 한 번 뽑아 보아라. 이렇게 명령하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다. 그래서 누구누구의 죄의 경력을 치면 자료가 수없이 좌아악 나올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저의 상상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 샅샅히 아신다. 인터넷 야후나 네이버에서 우리가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단어를 치고 검색을 누르면 그에 해당하는 자료가 수없이 나오듯이 하나님의 그 전지전능하신 무한한 신의 컴퓨터에서는 방대한 우리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홍길동의 유전자는 할아버지의 피에서 23%정도 물려받았고 아버지에게서 40%, 어머니에게서 20%, 조부에게서 몇 %...이러한 우리의 가계의 혈통과 얽히고 설킨 관계, 한 사람의 삶의 구석구석을 하나님은 환히 들여다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과사전

  하나님의 치밀한 우리에 대한, 나에 대한 관심은 마치 형사 콜롬보나 탐정처럼 2-3절에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신다. 우리에게 만약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우리를 관찰하고 감시하고 보고하는 형사가 있다면, 수색조의 경찰이 있다면 얼마나 우리는 얼마나 불안할까? 우리는 이 구절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수색조와 같은 시선에 늘 노출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바라다보면 우리가 지금 이 성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다 알고 있다. 2절에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아주 먼 곳, 먼 장소에서 우리를 바라보신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옛날부터 나의 생각을 바라보셨고 알고 계셨다는 시간적인 의미이다.

 시인은 여기서 ‘주님’, ‘나(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함과 동시에 ‘알고 계십니다’라는 1-4절까지 4번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3절-You are familiar with all my ways(NIV).

 

  또한 3절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우리의 모든 행실과 행동을 꿰뚫어 아신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친숙한 버릇들과 습관들이 있을 것이다. A라는 사람은 시계가 있어도 시계는 잘 차지 않거나, B라는 사람은 왼손잡이도 아닌데 시계를 오른손에 찬다던가?-오른손에 시계를 차면 기타 칠 때 손이 무거워 기타치기가 힘들다-잠을 잘 때는 코를 곤다던가, 아는 길이라도 꼭 물어서 간다던가, 집에 들어오면 먼저 텔레비전을 일단 틀어놓고 생활한다든가, 예배시간에는 꼭 늑장을 부리다가 지각한다든가...이러한 습관들에 하나님께서 익숙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습관이나 버릇을 넘어 우리의 모든 삶의 방식이나 고난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만날 때 무엇을 보는지, 어떤 성향과 기질이 어떤 때는 A로, 어떤 때는 B로 나타난다든지, 언제 가장 우울하며 언제 가장 열정이 솟구치며, 어디에 가면 죄를 많이 짓고,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 가장 하나님을 잘 찾게 되는지...시험 칠 때는 어떤 징크스가 있으며, 자신에게 있는 약점을 누군가 이야기할 때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 자식이 잘못을 하면 말이 먼저 나가는지 아니면 회초리가 먼저 나가는지, 회사에 가면 누구의 눈치를 제일 많이 보고 누구의 말을 제일 무게 있게 두는지, 대형 할인 마트에 가면 무엇에 제일 먼저 관심을 갖고 누구를 염두해 두고 물건을 구입하는지...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예 모르시고 우리의 종교적인, 소위 신앙적인 구석에만 대가이신 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백과사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백과사전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과사전이십니다”

 

라고 한 번 고백해 보자.

 

 

 

 

이러한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4절에서 더 강화된다. 개역성경보다는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더 표현이 정확하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께서는 내가 그 혀로 무슨 말을 할지를 미리 알고 계십니다’
Before a word is on my tongue you know it completely, O Lord.

 

우리가 어떤 말을 할 때 우리의 뇌에서 이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말이 나올 때, 아니면 뇌에서 반사신경, 반사적인 충동에 의해 말이 튀어나오다가 갑자기 혀에서 머물러 있거나 멈춰있을 때가 있다. 시인 다윗은 시인답게 아주 절묘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닭 울기 전 세 번 부인하는 사건을 예견하는데서도 나타난다. 사람들은 말을 하여야 알고 덜하게는 눈빛을 보고 표정과 그 날의 분위기를 파악하여야 그 사람의 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검색하시고 생각과 말과 행동의 저변과 심리의 배후까지도 꿰차고 계신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러한 전지하심을 노래하고 있다.

  다윗은 1-4절까지 노래한 하나님의 전지하심,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5절에서 자신의 앞뒤, 전후를 둘러싸 막아 주시고...

  

  제가 고1 때였다. 당시 시골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나는 교회 형과 친구들 6명이서 롤라스케이트장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유행이었고 문화였다. 그런데 잘 놀다 오는 길에서 깡패에게 걸렸다. 시골에서 착하고 순하디 순한 6명의 교회 형들과 친구들은 구석진 골목으로 오라는 신호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끌려가서 차비만 남기고 돈을 빼앗겼다. 그 때 제가 빼앗긴 돈은 5천원...우리는 그 때 교회 형님들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데 그 형님들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근육질의 바디빌더의 몸을 소유한 그 당시 고등학교의 대장이었고 통이었다. 우리는 그 두 형님만을 믿고 씩씩거리며 도적질 당한 돈을, 6대 6이었는데 자신감 없이 하면서 순순히 지갑을 털어준 그 사건에 분개해 하며 시내를 돌아다녔다. 결국 그 6명의 깡패들은 찾지 못했다. 나중에 경찰에 신고해서 알고 보니 고등학생이긴 고등학생인데 전과자들이었다....제가 무슨 이야길 하고 싶으냐 그 때 우리에게 온 교회의 덩지 크고 우람한 체격의 형님들은 정말 든든한 백이었다. 우리는 6대6이었지만 힘도 못 썼다. 하지만 그 형님들이 우리의 앞뒤, 전후를 둘러싸 막아 주니깐 자존심 회복 쟁탈전을 벌인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그가 가지신 우리에 대한 소중하고 방대하고 생생한 정보와 자료를 동원하여 우리를 도와 주신다. 우리의 앞뒤를, 전후좌우를 둘러싸 막아주심을 믿으라!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심을 기억하라!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는 것, 우리를 아는 것의 힘으로 우리를 도와주신다. 여러분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절실하고 무엇이 궁핍한지 다 아신다. 그 아는 것의 힘으로 하나님은 도와주신다. 빵이 필요한데 그것도 모르고 돌을 주며, 고기를 달라는데 전갈을 준다면 그것은 모르는 것이 약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 다 아시기 때문에 그분의 아는 것의 힘으로 우리를 친절하게 도우시고 응답하신다.

  

  독일월드컵이 끝이 났다. 한국축구가 2002년의 4강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 부푼 꿈을 안고 응원을 열광적으로 보냈지만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래서 많은 한국팬들은 축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개인기가 부족하다느니, 경기운용이 잘 못되었다느니, 선수교체가 잘 못되었다느니, 세대교체를 해야한다느니, 심판판정이 잘못되었다느니...한국의 많은 남성들은 축구에 대해서, 한국축구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안다. 차범근이나 신문선 해설위원보다 현역 축구선수들보다 더 많이 아는 듯하다. 축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축구이야기가 나오면 입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때의 아는 것은 힘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한국축구의 부족한 점을 알고, 결점을 안다고 해서 그라운드에 우리가 유니폼을 입고 뛰라면 죽을 쑬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는 것은 많지만 그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우리의 축구지식이 우리 한국축구를 살리지 못한다. 반면에 하나님의 아는 것은 힘이다. 하나님은 7-12절에서도 살펴보겠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분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분은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시자 치료자이시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후좌우를 둘러싸고 도우시고 채우심을 믿으라!

 

 

 

 

주의 손으로 안수하셨다

'주의 손으로 안수하셨다'고 말한다.

우리는 목사님에게 간혹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축복이나 치유나 회복을 위해 안수기도를 받는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안수하셨다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다. 그 전지하신 손이 우리의 머리에 안수하신다고 상상해보라. 장엄한 광경이다. 위대한 순간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손, 주의 손의 안수를 받은 그리스도인이다. 다윗은 안수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자신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그 안수의 순간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사울에게서 힘겨운 도피행각을 벌이면서 주의 손이 자신의 삶의 구석구석을 안수하셨다는 것을 뇌리에 새길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왕정 정치의 시대 가운데서도 주의 손이 깊게, 넓게, 높게, 길게 안수하셨음을 되새길 것이다.

(삼하 5:10)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David Became Stronger and Stronger, Because the LORD God All-Powerful was with him. 
-더 큰 걸음과 더 넓은 포용

다윗은 6절에서 전지하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고백하고 있다.

(6)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누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한다. 다윗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단순히 앎,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움직이고 굽이치는 물줄기와 거친 파도 같은 자신의 삶에 살아있는 하나님으로 늘 역사하셨다. 우리에게도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생활 가운데 넘치는 역사와 동력으로 꿈틀거리길 소망한다.

 

 

구약성경 시편 139편 1-6절(전반부)의 본문을 가지고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시적인 기술이 감동적인 시편 139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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