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사사기 6장 강해 네번째인데요. 오늘은 <여룹바알과 라바쉬의 역사>라는 주제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기드온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상을 제거했는데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우상의 리얼리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6장 27절에서는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아버지와 성읍 사람들이 그토록 추앙하고 관심을 가졌던 우상,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상이었는데요. 기드온이 그걸 찍어 쳐부었고 그 우상의 재료였던 나무를 가지고 칠년 된 둘째 수소를 하나님의 번제에 쓸 재료로 다 사용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섬겼던 우상이었고 그들의 신a god이었다면 무언가 일이나 사태가 발발해야 하는데, 웬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현실이고 리얼리티입니다. 우상의 리얼리티란 말이죠.
네이버사전에서는 우상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 1특정한 믿음이나 의미를 부여하여 나무, 돌, 쇠붙이, 흙 따위로 만든 형상
- 2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
- 3(기독교) 하나님 이외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신의 형상
하나님은 우상을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면에서 굉장히 배타적이고 독단적입니다. 십계명의 가장 앞에 있는 두 계명이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우상숭배를 경멸하고 싫어하시고 금지하시고 계십니다.
십계명: 질투하시는 하나님
십계명의 첫번째, 두번째 계명을 살펴볼까요?
(출애굽기 20:1-6)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제일은, 너는 나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은 이처럼 우상숭배에 대해서, 그리고 우상을 위해서 어떤 형상form도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서는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지만, 가장 본질적인 핵심은 하나님의 사람들 안에,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 안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좌소에 중심이 하나님이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로버트 멍어의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집'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집인 우리의 마음에 모든 방, 거실, 화장실, 침실, 작업실, 옷방, 자녀들 방...모든 방에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시는 주되심Lordship을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그걸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기드온 집안에 있는, 아버지에게 있는 우상, 그 성읍 사람들이 추구하고 바라고 섬기는 우상을 찍어 불태우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우상, 우상성을 불태우기를 원하십니다. 강한 용사로 진화하고 거듭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우상을 제거하는, 우상을 불태우는 제거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우상이 없어도, 그 우상이 사라져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우상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과 좌소를 가져오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향한 마음이 절대적일 때 질투가 일어난다
하나님은 때론 참 어지간하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좌소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우리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자신이 들어서기를 그토록 바라십니다. 그게 '질투의 힘'이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거나 딴 짓을 하면 질투가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질투라는 것은 한 사람을 향한 절대적인 애정이 없다면 발생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향한 집요한 관심과 애정이 있기 때문에 질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런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결국 그 마음을 얻기 위해서, 죄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아버지와의 갈등, 성읍사람들과의 갈등을 예상할 수 있는 '바알과 아세라'를 척결하는 일을 먼저 명령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사람들의 눈이 두려워 밤에 자신의 종들과 이 일을 실행했습니다. 낮이든, 밤이든, 사람의 눈치를 보든 보든지 않던 간에 중요한 것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세 가지의 주문을 순종하여 실행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제거하라고 주문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 1. 바알의 제단
- 2. 아세라 상
- 3. 칠년된 둘째 수소(번제용)
기드온의 행위로 인한 성읍 사람들의 반응을 오히려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부친 요아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때 성읍사람들이 기드온의 부친, 요아스를 찾아와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예상했던 아버지의 반응이 사뭇 달랐습니다. 기드온의 행동을 옹호하기 보다는 오히려 '바알이 진정 신이라면'이란 가정을 들면서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사사기 6장 31절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바알이 신이라면 자기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고 또한 심판을 할 것이다 라고 아주 합리적인 대응을 합니다. 자신의 아들, 기드온의 행위가 못마땅했겠지만 오히려 요아스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대응으로 성읍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대처합니다. 정말 바알이 과연 신이라고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겁니다. 하물며 사람도 자신의 소유나 재산이나 사람을 해하거나 손해를 입히면 리액션이 나옵니다. 경찰이 찾아오든지 고소를 하든지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난리가 날 것입니다. 바알도 자신의 제단, 자신을 섬기는 제단이 파괴되었으니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것이죠. 바알과 아세라는 늘 세트로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주요한 대적자, 원수가 바로 이 아무것도 아닌 우상, 바알과 아세라였습니다. 그렇게 고대 근동에서 우상숭배의 핵심이었던 이 바알과 아세라를 부셨으니 뭔가 일이 나야 하는데, 아무런 일도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우상숭배, 우상성의 핵심은 자기, 욕심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자주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선호하고 좋아하고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에 우리는 돈과 시간을 소모하고 사용합니다. 리차드 포스터가 이야기했던 '돈.섹스.권력'은 인류문명사에 있어 철저하게 우상시되어져 온 요소입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그토록 오래토록 고대근동에서 인기가 있었고 자주 유혹에 빠졌던 것은 이 바알과 아세라가 있는 곳에는 항상 성적인 문란함, 성적 타락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우상은 '나'를 중심으로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주체가 '나', '내'가 될 때 우상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시키는 것이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창세기 3:5에 나타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물론 이건 사탄이 들어간 뱀이 한 말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 먼저 하와를 현혹시킨 것은 바로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세상의 정복자와 관리자로 세워진 최초의 인간이었지만, 이들은 하나님 다음이 싫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선악과를 따 먹게 됩니다. 어느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과 권위에 도전하게 될 여지를 남겨둡니까? 하나님이 선악과를 버젖이 놔두시면서 아담과 하와가 그걸 따 먹고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여지를 남겨두셨다고요? 그게 말이 안 되는 논리인데도 하와가 뱀의 꾀임에 넘어갑니다.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논리인데도 하와가 유혹당한 것은 하와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죄의 출발은 욕심에서 시작됩니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나에게로 향한 시선이 당신(하나님)에게로 향하게 하라
내가 중심이 되면 우상숭배가 됩니다. 그러나 당신, 하나님이 중심이 되면 그건 예배가 됩니다. 우리는 일평생동안 이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 것입니다. 나에게로 향한 시선은 결국 헛헛함을 낳고야 말지만 하나님에게로 향한 시선은 문제가 해결되고 영광스러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의 욕심에 이끌려 우상숭배에 빠졌을때, 그들은 7년 동안 미디안으로 인해 크나큰 고통과 불행을 경험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비천한 지경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헛헛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선을 '내'가 아니라 '당신'에게로 맞춰야 합니다.
로마서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CCM중에 <시선>이란 곡이 있지 않은가? 그 가사중 후렴을 보면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낄 때 세상은 주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기드온, 여룹바알과 라바쉬의 역사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자신들의 쾌락과 욕망에 눈이 어두었을 때 그들은 처절한 패배와 수치와 치욕과 굶주림 속에서 허덕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그들이 자신의 얼굴을 구하기를 7년 동안 기다렸고 그들이 부르짖을 때 그들의 우상숭배의 문제, 영적 불순종의 문제, 십계명의 1,2계명의 불순종을 해결하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문제는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으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가실 것입니다. 바알 제단과 아세라 목상을 쳐부수고 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던 기드온이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가 얻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여룹바알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32절).
둘째,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 임했습니다(라바쉬)(34절).
사사기 6: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기드온이 부름을 받고 아비에셀이 부름을 또 받았는데, 기드온과 같은 므낫세 지파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에서 '임하다'는 히브리어로 '라바쉬'입니다. 마치 옷처럼 '감쌌다'는 의미인데요. 소심하고 겁이 많은 기드온이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군사적인 리더십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드온이 오늘 본문의 우상 제거사건을 통해 얻게 된 것은 여룹바알과 라바쉬의 역사입니다.
Epilogue
내가 최애하는 Hillsong곡이다. <Never Have I Ever 이런 사랑은 없어>란 곡이다.
"난 언제나 변함없이 당신의 곁에..."
정말 그렇게 살기를 기도할 뿐이다.
사사기 6장 27-32절의 본문을 <여룹바울과 라바쉬의 역사>란 주제로 묵상하고 해석해봤는데요.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싫어하는 이유, 우상숭배의 본질이 인간 자신임을, 그러기에 우리의 시선을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로 돌리기를 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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