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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사기.룻기

사사기 6장 1-6절,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by Message.K 202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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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사사기 6장 1-6절의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라는 주제로 포스팅합니다. 이스라엘이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본질, 우리의 기도의 중요성을  알아보겠습니다.

 


사사기 6:1-6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3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4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5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6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의 변심에 또 다시 미디안 족속이 침략을 하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땅에는 평화가 있었습니다. 사십 년 동안 영적 지도자, 드보라와 바락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영적 가르침, 이를테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드보라와 바락이 죽자 다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은 변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우상숭배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쉽게 변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우상을 섬기는 것에 더 도취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회초리를 들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도구로 사납고 거칠며 다른 민족들의 땅에 살기를 좋아하는 미디안 사람들이었습니다.

 

 

 

 

 

미디안의 7년 동안의 압제 속에서 남은 것은 폐허뿐인 이스라엘

미디안 사람들은 칠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땅을 짓밟고 휘젓고 다녔습니다. 칠 년은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끔찍한 시간이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강도 떼처럼 행동했습니다. 옥수수와 밀이 밭에서 익으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걸 곳간에 잘라 추수를 했는데요, 추수 때가 되면 미디안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와서 약탈을 감행합니다. 심지어 가축까지도 다 빼앗아 갑니다. 가져갈 수 없는 것은 다 불태워 버립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남은 건 황무지, 폐허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미디안 원수들은 메뚜기 떼와 같았습니다.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폐허가 됩니다. 남아 있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7년 동안 계속 이런 멘붕 상태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숨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집을 떠나 '웅덩이와 굴과 산성'과 같은 은밀한 장소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먹을 것은 늘 부족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굶주리기 일쑤였습니다. 칠 년이란 끔찍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사사기 6:6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의 궁핍함의 원인은 결국 이스라엘 자신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걸어온 삶의 행적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40년의 평안의 이유는 드보라와 바락이 건재했고 그들의 영적 가르침과 지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이스라엘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또다시 7년의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거기에는 "이스라엘의 영적 불순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이 자신에게로 관심을 주지 않고 방황하면 여지없이 벼랑 끝으로 내모십니다.

 

 

 

 

기도의 날개짓을 가르치시는 하나님

독수리가 자기의 새끼를 훈련시키기 위해 창공을 향해 날아갔다가 여지없이 떨어뜨려 버립니다. 독수리 새끼는 생전 처음 맛보는 아찔함과 죽을 경험을 하게 됩니다. 땅바닥에 떨어져 죽기 직전에 겨우 독수리 어미는 새끼를 건져 올립니다. 그새 독수리 새끼는 어쩔 수 없이 하늘을 나는 법의 기초인 날갯짓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날갯짓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하듯이 우리 인생을 경험을 통해 가르치게 하십니다. 기도하는 법을 그렇게 가르치실 때가 있습니다. 

 

 

 

결국 미디안으로 인해 부르짖게 되는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디안 압제 7년으로 인해 그들이 소유하게 된 것은 '궁핍함이 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라고 합니다. 

 

7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부르짖음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부르짖음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밤낮 부르짖는' 유형입니다.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부르짖는 유형입니다. 사연이 있으면 더 심각하게 부르짖겠죠. 하지만 사연이 없더라도 기도하고 문제가 없더라도 기도하는 유형입니다. 

 

두번째는, 어떤 원인이 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부르짖는 유형입니다.

조건과 이유가 제공되면 기도하는 스타일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그러했습니다.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부르짖는 것은 중요합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어떤 대상에서 호소하고 어필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들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배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막다른 골목에서 궁핍함이 심각해서, 배가 고파서 미칠 것 같으니깐 죽을 것 같으니깐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금식해 보신 분들은 알 것입니다. 배가 고파서 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배가 고파서 기도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때로는 배가 고파서 기도가 안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거나 위기가 있거나 위험이 있으면 부르짖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관심이 많으신 하나님

가장 중요한 사안은, 하나님은 이런 부르짖음에 관심이 많습니다. 

 

눅 18장 7절: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문제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문제가 많았고 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자격이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냥 부르짖는 것 하나 만으로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8:7에선 분명히 '택하신 자들'이 '부르짖'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택하신 자만이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택하신 자만이 부르짖습니다. 택하신 자도 망할 수 있습니다. 택하신 자도 실패하고 절망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택하지 않은 사람들 보다 택한 자들이 더 못 살 수도 있고 더 어려울 수도 있고 더 많은 불행이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택하신 자만이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였습니다. 그들이 어중이떠중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택하신 자였고 그들은 부르짖었습니다.

 

 

 

 

인생이 괴로운 이유는 인생, 인간  그 자체가 가시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참 편안해졌음 좋겠습니다. 골치 아픈 일도 없고 복잡한 일도 없고 돈도 좀 많았으면 좋겠고 빚도 좀 없어졌으면 좋겠고 몸도 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이들 때문에 더 이상 머리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상황도 좀 좋아졌으면 좋겠고 정치도 좀 속 시원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고 옆에 있는 가까운 가족들도 내 마음에 들게 살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니 다른 사람도 나 자신에게 송곳 같이 찌르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하덕규 시인의 말했던 노랫말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아'라는 고백은 인간의 심연을 제대로 보여주는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두움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이 가사에서 보면 내 안에 있는 가시나무 숲도 있지만, 네 안에 있는 가시나무 숲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찌르게 됩니다. 모든 인간 안에는 가시나무 숲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쉴 곳 없네'라고 할 때 첫째, '당신'은 절대자 하나님 당신이기도 하고, 둘째는 이웃인 다른 사람인 당신이기도 하며, 셋째, 최종적으로 당신은 '나 자신'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7:24에 이야기했던 구절이 기억납니다.

 

로마서 7장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곤고한 사람이라고 했는데요. 여기서 곤고한은 '형편이나 처지 따가 딱하고 어렵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바울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이가 다 '곤고한 사람'입니다. 저마다 가시나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 찌르고 아파하면서도 또 찌르고 또 찌르는 것이죠. 자기가 알게 모르게 찌르고 다닙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찌른 것을 아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가 찌르고 다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에서 임지연이 주연한 박연진과 그 패거리들은 자신들이 상처주고 다니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게 일진들의 특징이죠. 그걸 문동은(송혜교 분)은 복수합니다. 

 

 

 

기도는 내가 가시나무인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하게 합니다. 기도는 내 형편과 처지가 어렵고 딱하다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기도의 부르짖음을 통해 내가 '가시나무'인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의 절망과 낙망을 해결할 수 있는 요소가 내 안에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부르짖는'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발견한 자들이 바로 택하신 자들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불행과 고통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이 태어나면서 모두가 다 가시나무로 태어납니다. 그걸 성경에서는 원죄라고 표현합니다. original sin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다 저마다 가시나무 숲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동안의 평안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드보라와 바락이 죽자 자신의 욕망에 관심이 가기 시작합니다. 당시 가나안 종교들은 인간의 욕심을 부추깁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경고사인을 보냅니다. 이번에는 미디안 족속을 통해 하드타임을 선사합니다. 하덕규가 '가시나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나를 찌르고, 너를 찌르고, 더 나아가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가고'에서처럼 우리의 다음세대, 자녀들도 우리, 나 때문에 찔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궁극적인 것은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아버지를 찌르고 삽니다. 우리의 죄의 가시가 하나님을 상처 내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죗값을 치르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죗값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게 하신 것은 온 인류의 죄인들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을 위한 처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만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힘드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위로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 마음에 닿으면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택하신 자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택하신 자들만이 기도할 수 있고 부르짖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오해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신약시대에 수많은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의 기도생활과 종교생활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기도는, 그 경건은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위해한 가시나무인 지를 모르고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기도 없이도 움직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인류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미디안의 괴로운 압제하에 이스라엘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무언가 준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의 부르짖을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사사기 6장 1-6절의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라는 주제로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본질이 가시나무라는 사실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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