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사사기의 서론격인 사사기 1장 1-10절의 본문을 토대로 <하나님을 의지해야>라는 주제로 과거에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해 봅니다. 혼돈의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역사하셨는데요, 인간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사 시대를 한번 볼까요?
- 설교목표/ 사사기 시대의 삶의 정황과 오늘 현대의 삶의 정황의 유사성을 조망하면서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의 영향력에 대해 살펴본다.
서론...월드컵의 살인적인 마력
요즘 아주 우리 삶의 활력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98‘ 프랑스 월드컵 본선진출을 놓고 일주일을 간격으로 예선전을 관람하는, 시청하는 것이다. 물론 어제도 우즈베키스탄과 경기를 벌였다. 이처럼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는, 아니 요근래의 우리들의 근황은 스포츠의 열기에 거의 전국이 떠들썩하다.
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전 5차전을 가지는 그 날, 한 버스에서는 한 취객이 라디오방송을 틀어주지 않는다고 운전사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근데 그 버스는 라디오가 고장이 나서 틀어주고 싶어도 틀어주지 못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그 사람은 술김에 아랑곳없이 그렇게 남들에게 피해를 줬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장안은 지금 스포츠의 열기로 뜨겁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지난 82년 스페인 월드컵 준준결승전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브라질이 이탈리아에 2-3으로 경기에 져 탈락하자 브라질에선 난리가 났다. 당시 외신은 2명이 자살하고 5명이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전한다. 일본인 마트모트는 <세계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라는 책에서 “32명의 축구팬이 패전의 충격으로 자살했다”고 자살자 수를 더 높게 잡기도 했다. 또한 30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제 1회 월드컵은 나라와 나라 사이마저 갈라놓았다. 결승전서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에 2-4로 패해 우승을 놓치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심판의 판정이 불공정했다”며 우루과이 영사관 앞에 벌떼처럼 몰려갔다. 이들은 영사관에 돌과 빈병을 던지며 폭동을 일으켰고 결국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국교를 끊고 말았다. 69년 7월에 치러진 멕시코 월드컵 북중미.카르브해 지구예선 준결승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두 나라에 전쟁을 알리는 대포소리로 번져갔다. 또한 인도네시아 카리만탄의 폰테아나 마을은 적도가 지나는 곳이라 적도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한데 그 표지판을 처음 본 사람은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지게 마련이다. “이 표지는 적도의 북쪽 40피트(12m)에 세워져 있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표지판이 적도 바로 위에 세워져 있었으나 축구장을 지을 때 방해가 되자 북쪽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적도까지 움직이는 위력을 지닌 스포츠가 바로 축구인 것이다. 이런 세계사를 굳이 들추어보지 않을지라도 축구의 마력은 대단하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 아나키Anarchy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금은 특수하다. 남북한의 분단의 현실 가운데 지금의 정치적 상황이 거의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도 텔레비젼을 보았을 것이다. 대선을 앞 둔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문제로 서로 똑같은 사람들이 헐뜯고 난리법석인 것이 우리의 정치의 현실이다. 국민들은 정치뉴스보다는 스포츠뉴스에 더 많은 관심과 환호를 보내고 있다. 그것은 김영삼 정부로부터 받은 실망과 기대치 상실, 여당의 이회창후보의 아들 병역회피의 문제, 야당의 후보로서 여론선거로 1위를 달리고 있던 김대중 후보에게 받은 국민들의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전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런 표현을 하고 싶다. “무정부상태”“무권력상태”-영어단어에 그런 단어가 있지 않는가? anarchy-정치적,사회적 혼란.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국민들의 이러한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생각할 때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진지해야 할 현실에 대해 사람들이 스포츠를 빌미로 도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제가 왜 이런 얘기를 이토록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있느냐?
본론...사사기의 현실,아나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 사사기 라는 성경도 바로 이런 anarchy같은 시대였기 때문이다. 모세오경을 지나 여호수아가 있고 그 다음에 사사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사후에 이스라엘사람들이 마지막 사사 사무엘에게까지 어떻게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사사기>라는 성경이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은 강력한 중앙 집권이 없었으며 민족공동체로서 열두 지파가 아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이야기들은 본문을 살펴보면서 하기로 하자. V.1-여호수아가 죽은 후에...이스라엘 백성들을 강력하게 비젼과 믿음으로 이끌어가던 여호수아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신앙의 모델이었고 삶의 본을 보여주었던 영적 지도자,리더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물어보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어느 땅으로 갔었는가? 바로 가나안이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서서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는 광경이 나온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그들은 먼저 예전 많은 선조들이 했던 것처럼 먼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전쟁을 준비한다.“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구약은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다. 하지만 20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한국사람들에게는 그런 피 터지고 울부짖는 전쟁은 없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그토록 많은 전쟁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매일 매일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삶을 죄어오는 수 많은 학업과 진로와 대인관계와 가정에서 신앙생활하기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 등이 바로 우리가 싸워야 할 전쟁인 것이다. 매일 매일 쳇바퀴 도는 듯한 이런 생활 가운데서도 영적 전쟁은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본거지가 번 듯이 버티고 있는 이 고장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인 전쟁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바로 하나님을 바로 믿고 의뢰하며 기도로 그 분께 매일 매일 나아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나아갔다. 그들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어떤 견고한 진지나 날카로운 창과 검이나 두꺼운 방패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 늘 함께 동행하는 것이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여러분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비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의 가정의 불신적인 환경을 바꾸는 것일 수도 있고, 믿지 않는 단짝을 구원케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여러분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그 때마다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바로 하나님께 끊임없이 묻고 그 분을 바라는 것이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저에게서 나는도다...”
이 찬양의 가사처럼 말이다.
그러한 자세로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나아갔고 전쟁을 준비했다. 그 때 하나님은 유다지파에게 전쟁을 하라고 말씀하신다(V.2) 그들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뢰하며 자신의 구원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을 때에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응답하셨다.
함께 협력할 때...
유다는 이때에 홀로 전투에 임하기보다 다른 형제 시므온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의 제비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V.3) 다급할 때 도움을 청하는 유다와 이에 응하는 시므온을 본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전쟁에서 반드시 이길수 있다는 확신으로 자신만의 교만함을 내세우며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자세는 결코 신령한 것이 못 된다. 시므온이 유다와 합세한 결과 시므온 지파 사람들은 유다의 영역 안에 거하게 되었고 유대 백성들과 아주 가까운 관계를 누리게 되었다. 함께 고생을 나누면 함께 영광도 누리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자세이다.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중보기도의 도움을 구하며, 일을 할 때에 자기의 독단과 독선을 내세우지 않고 서로 협력하여 연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할 때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V.4-6,V.8-10/V.10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는 거인들이었다.)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사람들의 연합함이 이루어낸 결과이다.
여러분 가운데 서로가 위기에 처해 있거나 곤궁한 자리에 있는 지체가 도움을 청할 때 여러분은 어떠한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책임을 같이 감당할려고 하는가? 아니면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며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방관하는가? 하나님은 절대 자기만의 구원과 자신만의 평안과 자신만의 유익만을 구하는 자를 좋아하시지 않는다. 갈6:2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함께 짐을 질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어느덧 물들어진 이방인의 관습
근데 여기서 우리가 주시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행한 행위를 볼 필요가 있다. V.6이다. 베섹의 왕인 아도니 베섹이 전쟁에서 패전하여 도망자로 가다가 결국엔 붙잡혔는데 그를 어떻게 하였는가를 보라!
....쫓아가서...잡아...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으매/
그들은 엄지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을 잘랐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이상 그가 군사적인 위협을 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절단 행위는 당시 이방의 관습이었다. 전쟁 포로의 손발을 자르는 일은 그 당시 근동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습으로, 잡힌 포로들이 더 이상 무기를 휘두를 수 없도록 한 형벌이었다. 어느새 이방인의 관습이 이스라엘 가운데 들어왔던 것이다.
여러분 카톨릭에서는 ‘성수(Holy Water)'라는 것이 있다. 근데 그 물에 파리가 빠졌다고 치자,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파리가 성수에 빠졌으니 파리가 거룩해지겠는가? 아니면 성수가 더러워지겠는가? 후자다.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서서 정복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그들은 어느새 세속화되어지고 신앙이 탈색되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 조짐은 사사기의 긴 역사를 살펴볼 때 의미심장하다. 앞으로 그들의 신앙과 삶에 대해 계속 살펴보면 더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위대한 믿음의 용사이며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한 사람의 믿음의 영향력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영적인 지도자의 부재가 이스라엘에게 어떠한 악영향이 나타났는지 잘 알 수 있다.
결론...
우리는 오늘 사사기의 도입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추진하는 가나안 정복 가운데 그들의 믿음의 위대함과 동시에 그들의 탈색된 삶의 단면을 보았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난관에 부딪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매달리어야 한다. 다른 방도는 없다. 그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이요,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이다.
여러분에게 무슨 문제가 터지면 그 때마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귀를 기울어야 한다. 그 때 우리가 정작 펼쳐야 할 것이 바로 성경인 것이다. 여러분 큐티하고 있지 않는가? 얼마나 좋은가? 학창시절부터 그러한 영적 성장의 훈련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큐티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면 귀를 기울이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네...”
정말 하나님은 여러분의 고민과 관심과 아픔과 상처와 열등감과 환경과 문제들에 대해 ‘나 몰라라’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은 여러분의 힘듬과 어려움을 친히 귀를 기울이시고 들으시며 해결책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바로 해결책인 것이다.
또한 여러분에게 빛 바래진 신앙과 삶의 모양새는 없는가? 어느덧 하나님의 영향력보다는 세속적인 영향력을 더 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의 현실이 아닌가?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인정치 않는 행위가 있다면 뒤돌아보길 바란다. 그것은 텔레비젼이나 비디오, 영화, 대중가요, 스포츠, 컴퓨터, 컴퓨터 게임, 친구관계, 이성교제 등이 될 수 도 있다. 저는 여기서 이러한 것들이 마냥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지나치게 되는 경우를 말하고 있다.
유다가 물리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가 있다. 이들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거인, 자이언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런 것은 아무 장애가 되지 않는다. 여러분의 문제가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거대한 거인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골리앗의 크고 육중한 거구의 체력적인 면을 본 것 아니라 바로 그 골리앗도 출생케하셨던 배후의 더 크고 위대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라! 그것만이 살 길이다.
오늘은 사사기 1장 1-10절의 본문을 가지고 '사사기를 열며: 하나님을 의지해야'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같이 나눠보았습니다. 무정부시대Anarchy시대의 사사 시대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우리의 해결책은 하나님임을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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