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향한 아주 감동할만한 생각을 하고 그것을 나단 선지자에게 표현한다. 2절에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기특한 생각을 한다. 이 본문은 단순히 다윗의 기특한 대목만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소와 다윗 왕정의 미래를 논하기에 핵심적인 본문으로 간주된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오늘 살펴볼 두 가지의 견고한 약속을 주셨다. 이 엄숙하고 신성한 약속은 다윗에게 주어진 ‘영원한 약속’에 해당했다.1)
이 두 가지와 관련된 하나님의 약속은 13절에서 묶여서 나온다.
(13)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즉 다윗의 아들은 성전을 ‘건축할 것’이고, 또한 그 왕조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이 약속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이 장은 또한 많은 부정적인 면을 포함한다.
- 첫째로,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다윗의 계획은 거부된다.
- 둘째로, 하나님은 성전에서 기쁨을 취하시지 않으신다(이 두 가지는 5-7절에서 암시된다).
- 셋째로, 14절은 다윗의 후손 중 몇 명이 합당치 않은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과 그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야만 하며 실제로 받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포함하는 이 다양한 면들은 다윗 시대(주전 10세기 초반)부터 주전 587년에 이를 때까지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묘사와 설명을 제공해 주었다. 그 시대에 다윗이 아닌 그의 아들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건축되었다. 그들의 계승자들 중 많은 자들이 약하거나 악하였지만, 그 왕조는 사 세기 동안 몰락하지 않고 계속되었다.
주전 587년에,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유다 왕국은 종말을 고했다. 다윗의 가문은 계속 존재했지만, 두 번 다시 왕권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이 장은 그와 같이 변화된 상황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첫째로, 하나님은 성전과 그분의 백성에 의해 의존하지 않으시며, 그러므로 성전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스데반은 이 교훈을 신약 시대에 다시 강조했다.
- [행 7:44-행 7:50]
- (44)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저가 본 그 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45)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46)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47)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48)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49)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50)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다윗의 기특한 생각은 정말 특별한 발상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공간에 제한받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그 공간의 화려함이나 탁월함에 의해 그 분의 무게감, 존재감이 좌지우지되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이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는 일정한 ‘공간’이었지만 이제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 믿는 신자 안에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하나님은 ‘자존자, 스스로 있는 자’라고 자신을 설명하셨다.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되신다. 인간이 그를 칭찬한다고 해서, 그를 위해 휘황찬란한 성전을 건축한다고 해서, 그를 위해 무언가 남길만한 족적을 보여준다고 해서 작은 하나님이 더 큰 하나님이 되고, 무력한 하나님께서 강인하고 강력한 하나님이 되시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도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신약시대의 성전은 ‘바로 우리들’이다. ‘성령이 거주하는 바로 우리들의 몸’인 것이다.
(고전 3:16)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은총과 은혜와 인도하심의 베푸시는 것에 오히려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가자.
둘째로, 다윗의 후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한 것이었다
그것은 ‘위대한 다윗의 더 위대한 아들’인 메시야에 대한 기대의 기초였다. 이 약속은 구약 시대 후반부에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의 여러 세대에게 확신을 주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성취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신약 전체와 기독교회가 증거한다.
이 모든 약속은, 하나님이 그것들을 성취하심에 따라 다윗의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줄 것이다(9절).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하나로 명성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그의 위대함은 그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통치할 민족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10절은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획과 약속들을 가리킨다. 이 약속들은 다윗의 치세 기간에 실현되었으며, 훗날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죄 때문에 종종 정치적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은 남아 있었다. 이 계획들은 다윗의 아들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달려 있었다. 그 메시야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들이 항상 필요로 한 안전과 평화를 마침내 가져다 줄 장본인이 될 것이다.
다윗을 향한 약속은 영원한 약속이었다.
다윗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처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그의 집과 그의 가문, 왕조를 축복해주셨다. 그로 인해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사울처럼 자신이 권세를 가진 왕이 되고자 절대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보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배가 불렀을 즈음한 데 다윗은 자신의 관심이 하나님의 성전건축으로 옮겨져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성공과 번창과 번영을 위해 기도하며 사는가? 더 나은 연봉과 더 나은 직업과 더 나은 배우자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도 달려가고 있는가?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살았던 인물! 이것이 다윗의 탁월한 점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은 다윗의 손을 들어 ‘다윗언약’을 베푸신 지도 모른다.
(대하 16:9)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우리 교회의 표어는 ‘교회여,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이다. 정말 우리 모든 성도들이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다윗, 21세기의 다윗이 되기를 소망한다.
1) 삼하 25:3을 보라, (5)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사무엘하 7:1-17의 본문을 가지고 '다윗 왕조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란 주제의 설교를 포스팅했다. 다윗의 성전건축에 대한 생각은 너무나 신박했지만, 하나님은 사람에 의해서도, 장소(성전)에 의해서도 좌지우지되지 않지만, 신박한 생각을 한 다윗의 후손을 향한 약속은 영원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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