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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무엘상.하

사무엘상 17:1-16, 무기력한 왕, 사울

by Message.K 202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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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장에서는 블레셋과 전쟁중인 이스라엘의 상황, 그리고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이 와중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위하여 사울 대신 다윗을 준비시키는 빅 피쳐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설교로 표현해 보았다.

 

 

사무엘상 17:1-16, 무기력한 왕, 사울 설교 썸네일
사무엘상 17:1-16, 무기력한 왕, 사울

 

 

 

다윗의 이야기는 첫 번째,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다.

두 번째, 사울의 악사로 임명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바로 오늘 다윗의 가장 용감무쌍한 장면이자, 구약 역사서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꼽을 수 있는 장면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씬이 벌어진다.

 

 

골리앗 앞에서 한 없이 무기력한 왕, 사울

오늘 보고자 하는 본문(17:1-16)에는 말 그대로 블레셋 대표 전사인 골리앗이 이스라엘 앞에서 모욕을 주면서, 싸움을 걸고 있다. 그것도 40일 동안 말이다. 골리앗의 키는 3미터를 능가하는 키였고, 갑옷이나 창이나 방패나 모든 것이, 보여지는 모든 것이 이스라엘의 사기를 단숨에 꺾어 놓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이스라엘의 사기는 땅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11절이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이렇게 40일 동안 이스라엘은 골리앗이란 장수 앞에서 꼼짝없이 농락당하고 있었다. 그 지겹고 지긋지긋한 모욕과 경멸감, 땅에 떨어지는 사기는 구제불능이었고, 회복불가능이었다.

  

  이 이야기는 사무엘서를 시작했던 사무엘 탄생이야기와 비슷한 점을 지녔다. 사무엘이 태어날 무렵, 이스라엘은 잉태하고 싶어도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과 같았다.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제도는 리더십을 상실했다. 더 이상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가 없었다.

  사울이 지배하는 이스라엘의 상황이 그렇다.

  블레셋 사람과 골리앗이 아무리 수모를 주어도 이스라엘은 그들을 대항할 능력이 없었다. 누구 하나 나서서 감당하겠다고? 목숨을 바쳐 한번 싸워보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또한, 골리앗과 맞서 싸워야할 왕인, 무능한 지도자 사울은 무능했던 엘리 제사장을 연상케했다.

 

  16장에서 사울은 영적, 심리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왕이었다. 악령이 들었는데, 그 악령은 하나님의 부리시는 악령(16:16)이었다고 한다. 사울은 이제 잊혀져야 하는 인물로 점점 비쳐지고 있다. 사울은 인제 영적, 정신적 위기에서 더 나아가, 이제 17장에서는 군사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내준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반면에 다윗은 16장에서 주어진 임무를 잘 감당했을 뿐만 아니라(16장), 골리앗을 쳐죽임으로써 왕이 해야 할 몫을 성공적으로 해낼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무늬만 왕’이지 도대체 능력이 없다. 16장에서 악령까지 들어가며 고생했다.

 

 

이전에는 엘리 대신 사무엘을, 현재는 사울 대신 다윗을 준비시키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절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을 때 하나님은 엘리 대신에 사무엘을 세우심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져왔다. 오늘도 하나님은 기울어져가는 사울의 이스라엘을 이제 또 한 사람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위기는 말 그대로 ‘위험한 기회’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준비시키심을 통해서 ‘위기를 위험한 기회’로 만들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항상 실패와 절망과 낙담과 좌절로 인해 암담한 현실 가운데서도 희망과 소망을 노래하게끔 하신다. 그것은 기독교인의 정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장렬하게 최후의 맞이하셨지만, 다시 3일 만에 찬란하게 부활하신 것이다. 고난은 기회였고, 위기는 회복의 기기회였다. 하나님 안에서 위기는 또 다른 소망을 낳는 순간임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 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17장에 아주 기막하게 밀어넣고 계신 것이다.

 누군가는 16:18의 해설서가 바로 17장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사울은 정신적, 영적, 군사적으로 황폐해져가고 무기력한데, 반대로 다윗은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리고 17장에 와서는 군사적으로 탁월한 인물이란 마침표를 찍는 듯하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일꾼, 다윗은 남달랐다. 하나님은 언제나 시대와 세대를 위해 준비하고 계신다. 또한 그렇게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은 절망 대신 희망, 낙담 대신 소망이다

언젠가 교회 성도들과 함께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을 같이 보았다. 김일성 공산주체사상과 공산주의에 압제하에서 허덕이는 지하 14만교인들의 애환 가운데서도 영화 말미에서는 한 여인이 고통 가운데 애기를 낳았다는 것을 애기울음소릴 들려준다. 그 피비린내 나는 북한 지하교인들의 고통 가운데서도 생명을 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영화는 희망적으로 그리고 있다.

 

성도 여러분, 어떠한 고난과 고통이 우리 앞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이 시대와 세대를 위해 사람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으라! 타락하고 자식농사를 망쳐버린 엘리시대에는 사무엘을 준비시키셨고, 무기력하고 초심을 한없이 잃어버린 사울시대에는 다윗을 준비시키고 계신 것이다.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은 절망이 아니라 소망임을, 낙망이 아니라 희망임을 기억하라!

 

  사울과 다윗,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하고, 또 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영적 황무지를 방황하고 있다. 사무엘에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은 여호와께서 위임하신 이스라엘의 통치권을 상징하기 때문에, 다윗과 사울이 동시에 하나님의 영을 가질 수는 없다. 오직 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을 받을 수 있는데, 그 사람은 다윗이다. 이미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대하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자만이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을 줄 믿는다.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으로 주의 일을 감당할 줄 믿는다.

 

사무엘상 17장 1-16절의 본문에서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왕 사울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위해 또 다른 인물, 다윗을 준비시키는 장면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것이라고 해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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