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셋에서 자신의 동포인 이스라엘 군대에게 칼을 겨눌 뻔했던 다윗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고 자기의 보금자리인 시글락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초토화된 자신의 보금자리, 잡혀간 가족과 백성들을 보면서 위기에 처한 삼상 30장이지만, 위기를 기회로 잡는 다윗에 대한 설교문이다.
아벡에서 시글락까지는 100km에 달하는 먼 거리였다. 그 길을 사흘길을 걸어서 시글락에 겨우 도착했다. 그런데, 또 다른 위기가 다윗과 무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멜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쳐들어와 사람들은 다행히 죽이지는 않고 모두 끌고 갔다. 그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다윗이 볼 때, 사람이 하나도 다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자 은총이었다. 1,000여명이 사는 시글락에 성읍을 방어할 만한 군대, 방어군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이 너무 쉽게 무너졌기에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알다싶이 아말렉은 고대 사회를 떠돌며 약자들을 공격하는 산적들과 같은 존재였다. 역사적으로 성경에서 가장 야비하고 비열한 족속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처음 보이는 곳은 출애굽기 17:8-16이다. 지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를 행진할 때 아녀자들과 노약자들로 구성된 행렬의 뒤를 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비열함에 분노하셨다. 하늘 아래서 아말렉 족속을 완전히 없애버리겠다고 선언하셨다. 그후로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진멸한 족속이 되었다.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도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5:10-31). 그런 아말렉이 다윗과 군인들이 없는 틈을 타서 시글락을 습격하고 성을 불태우고 사람들은 모두 잡아간 것이다.
이 때 다윗과 백성들은 어떠했는가?
4절: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들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오늘 이 본문에 나타난 다윗과 28장에 나오는 사울의 모습은 굉장히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첫째, 두 사람은 다 큰 위기에 처했다(28:15; 30:6)
이들이 맞이한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였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사울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법으로 금하시는 일을 했다. 그것은 바로 점쟁이를 찾아간 것이다. 다윗은 시글락에 거하던 식솔들이 모두 잡혀간 상황에서 자신의 군인들까지 자신을 죽이려하는 위기를 맞이했다(6절). 다윗은 자신의 힘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이 위기의 순간에 사울은 다른 곳, 엉뚱한 곳에서 자신의 안식처와 능력을 구하려고 했으나, 다윗은 달랐다. 다윗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뢰하시길 바란다. 시편 2:10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사울과 다윗, 둘 모두 리더십의 위기이다. 오래전에 발생한 세월호의 침몰과 참사는 정말 리더십의 위기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재난관리 시스템, 선장의 리더십 붕괴, 자기자신만 살고자 하는 그런 처사가 더 큰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한국사회의 위기이자, 한국교회의 위기이고, 더 나아가 이것은 한국의 총체적 리더십의 위기이다. 성도 여러분, 위기의 때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자.
삼상 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얼마나 다급하였을까?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고자 했다. 다윗도 다급했고 조바심이 났고 위태로웠고 불안했고 초조했으며 두려워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과 달랐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고 했다. 그 짧은 순간이지만, 다윗의 믿음이 위기의 순간에 발동되었던 것이다.
둘째, 사울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어떠한 형태, 방법으로도 그에게 응답하지 않았다.
반면에 다윗이 물었을 때는 응답하셨을뿐만 아니라 아말렉 사람들을 그의 손에 붙이셨다는 구체적인 응답까지 주셨다. 사도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은 사울에 대한 주님의 불편한 심기로, 반면에 다윗의 물음에 대한 적극적인 응답은 다윗에 대한 주님의 총애로 간주될 수 있다.
사울은 싸워야할 존재와 싸우지 않고 싸우지 말아야할 존재와 싸운 것이다. 사울은 원수와 싸우지 않고 친구요, 동료요, 부하요, 차세대 주자인 다윗과 싸운 것이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이 세상의 권세요, 사탄 마귀임을 기억하자. 정말 우리가 싸워야 할 사람, 싸워야할 대상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줄 믿는다.
다윗이 시글락에 도착했을때 초토화된 보금자리와 아울러 자신의 아내와 가족을 데려가버린 그 황무지같은 현장에서 어쩌면 다윗은 다윗의 백성들과 싸울 수도 있었다. 다윗의 리더십의 최고의 위기를 맞이한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윗은 이 순간에 싸워야 할 대상은 백성들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임을 인지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끊임없이 불신하게 만들고 자괴감이 들게 하고 다운되게 만드는 마음의 절망과 싸워야 한다. 쓸데없는 적을 만들어 싸웠던 사울과는 달리 다윗은 자기 자신의 불신과 불신앙과 싸웠던 것이다. 그의 결론 30:6이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다잡고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보는 다윗의 믿음, 다윗의 용기, 다윗의 리더십이었다.
셋째, 엔돌의 점쟁이를 찾아간 사울은 왕의 위상과 위엄을 지닌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왕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행동한다. 사울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며 미래를 알려달라고 하면서 귀신을 찾았다. 귀신의 말에 충격을 받은 사울은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한 상황에서 점쟁이의 말을 들어야 했다. 반면에 이 이야기에 반영된 다윗은 아직 왕이 아니면서도 왕에 버금가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단호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아말렉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그의 모습은 당당한 개선장군과 같은 모습이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그에게 피하는 자에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있을 줄 믿는다. 다윗은 늘 하던 대로 아비아달을 불러 에봇을 가져와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점쟁이를 찾아간 사울과는 너무나 판이한 모습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셨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삼상 30:8)
다윗처럼 위기의 순간에도, 아니 평상시에도,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으시길 바란다. 다급하고 위급한 순간에도 빛을 발했던 다윗처럼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길 삼상 30:1-10의 본문을 빌어 간곡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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