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사무엘상.하

사무엘상 21장, 다윗 VS 도엑

by Message.K 2024. 1. 5.

사무엘상 21장의 본문에 등장한 두 사람, 대별되는 두 인물, 다윗 VS 도엑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한다. 위기의 순간에 성전을 찾아 새 힘을 얻었던 다윗과는 별개로 한 사람의 위기를 자신의 입신양명의 기회를 삼고자 했던 도엑의 이야기이다.

 

사무엘상 21장, 다윗 VS 도엑
사무엘상 21장, 다윗 VS 도엑 설교

 

 

 

오늘 우리는 두 인물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인물, 다윗과 도엑이라는 인물이 생각하는 바를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사건의 경위

다윗은 사울에게서 계속 쫓기는 '도망자'의 신세에 있다.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고 반역한 일도, 반역할 의도도 없었는데 사울의 미움을 받아 처량한 도망자 신세가 된다. 도망자 신세가 되었기에 그는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허겁지겁 도망길에 오른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은 도망오다 도망오다 결국 성전으로 오게 되었다. 그 성전의 제사장은 바로 누구인가?

 

 

 

아히멜렉의 율법정신-진설병

'아히멜렉'이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도망자 신세인지도 모르고 왜 혼자 있느냐고 묻자 다윗은 거짓말을 한다. 이것은 선의의 거짓말이다. 다윗은 '왕이 비밀을 지켜야한다고 나한테 부탁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다윗은 사울 왕의 정신병적인 질투와 시기를 아히멜렉에게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서 하소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왕권과 왕위에 대해 모독이나 비난을 일체 하지 않고 거짓말로 둘러댄다. 그러면서 배가 너무나 고프다고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한다. 아마도 다윗은 몰골은 형편없이 초췌하고 도망과 피난 생활로 인해 찌들려 있었을 것이다. 얼굴은 어쩌면 핏기도 없고 누렇게 떠 있을지도 모른다. 아히멜렉은 이런 부탁에 대해 '진설병the consecrated(make holy) bread'- hallowed bread 즉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떡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시의 진설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 그 제사 음식 같은 것인데 이것은 성전의 성직자인 제사장만 먹을 수 있도록 성경에 규정하고 있다(레 24:5-9). 일 주일 단위로 제사의 떡은 바뀐다. 그래서 다윗이 먹은 떡은 아마도 상당히 식어있는, 딱딱하게 굳은 빵이었을 것이다. 제사장 아히멜렉은 구약성경의 규율을 어기고 진설병을 다윗과 그와 함께 온 소년들에게 준다. 그렇다면 아히멜렉은 제사장로서의 중요한 원칙을 어긴 셈이다. 평민들은, 제사장이 아닌 사람은 이 빵을 먹어선 아니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진설병을 준 아히멜렉에게 아무런 죄도 없으며 그의 행위는 정당하고 이야기하셨다. 바리새인들과 안식일 논쟁을 하면서 그렇게 언급하셨다(막 2:25-27).

 

 

그렇다면 우리도 구약성경의 많은 규례들은 어겨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가 교회에 바치는 십일조나 헌금을 내지도 않고 그냥 배고프고 헐벗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냥 주어도 된다는 말인가?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된 헌금, 바친 헌물 등을 그 때 그 때의 상황을 봐서 다른 곳에다 유용하게 사용하여도 된다는 말인가?

 

물론 그런 의미는 아니다.

 

오늘 우리가 본 본문은 아히멜렉이 구약의 규례를 어기면서도 다윗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한 그 면을 생각하여야 한다. 자신의 율법 지키기에 급급한 나머지 다윗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히멜렉은 참으로 영적인 사람이었다. 영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율법을 표면적으로 지키는 것 보다 율법의 원리, 정신을 간파하였고 그에 따라 행동하였던 것이다. 아히멜렉은 후에 사울이 다윗을 왜 도와줬냐고, 왜 먹을 것을 줬냐고 문책할 때에 이렇게 대답한다.

 

[개역]삼상 22: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Kjv]삼상 22:14

Then Ahimelech answered the king , and said , And who is so faithful among all thy servants as David , which is the king's son in law , and goeth at thy bidding , and is honourable in thine house ?

 

[개역]삼상 22: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컨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의 대소간에 아는것이 없나이다

[Kjv]삼상 22:15

Did I then begin to enquire of God for him? be it far from me : let not the king impute any thing unto his servant , nor to all the house of my father : for thy servant knew nothing of all this, less or more .

하여튼 아히멜렉은 다윗을 도왔다. 먼저 먹을 것을 주었다. 그리고 또 도운 것이 있다.

 

[개역]삼상 21: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개역]삼상 21:9

제사장이 가로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 밖에 다른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가로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무기가 없던 다윗에게 무기를 주게 된 것이다. 바로 용감함과 용기와 기백의 상징인 골리앗 사건의 증거인 ‘골리앗의 칼’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기념품과도 같은 것이었다.

다윗은 ‘도망자’신세에서 성전에 들어왔지만 성전을 나갈때는 ‘빵과 칼’을 가지고 당당하게 나가게 된다.

 

다윗에게 성전은-쉽게 말하자면 예배당-언제나 도움을 주는 곳이었다.

 

단순히 영적인 생활, 기도나 찬양, 예배, 교회봉사 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생활에 도움을 주는 곳이 성전이었다. 다윗에게 있어 성전이라는 것은 마치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성배’가 있는 그런 신비스럽고 적막감이 감도는 그러한 곳도 아니었고 카톨릭성당에서 엄숙하게 드리는 미사의 장엄함도 아니었다. 다윗의 성전은 말 그래도 삶, 그 자체였다. 거기서 먹고 마시고 힘을 얻고 세상 속으로 돌진하는 것이었다. 다윗의 성전은 막연하고 고요하고 불가사의한 장엄한 종교적인 예배나 의식만이 가득한 그런 곳이 아니었다. 다윗은 도망자 신세에서 거룩한 장소인 ‘성전’을 찾았고 무언가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은 다윗을 도우셨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다윗이 가진 성전관(聖殿觀), 성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단지 교회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지겨운 예배시간, 흥미 없는 설교, 지루한 찬양시간...뭐 이러한 생각을 하진 않는지 모르겠다. 누구 얼굴 보기 싫고, 누구는 밉고, 누구는 싫고, 교회 전도사는 너무 말이 많고 썰렁하고 어쩌구 저쩌구...그렇게 생각하진 않는지...교회 오면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부차적인 것들을 먼저 생각한다면 그것은 다윗이 가진 성전관이 아닌 것이다. 다윗을 성전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 원인은 바로

‘이렇게 힘든 피난길에 나를 도울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는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의 도움이 되셨고 피난처가 되시었다.

 

 

 

다윗과는 반대로 생각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 인물은 바로 ‘도엑’이다

[개역]삼상 21: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사울의 근위대 대장, 사울의 비밀 경찰 대장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는 ‘주 앞에서 하여야 할 일이 있어서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아마도 그는 어떤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기 위해서 있다가 우연히 다윗을 목격하게 된다. 그가 왜 성전에 왔는지 정확한 이유는 밝힐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종교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다윗처럼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찾고 성전을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그런 인물이라기 보다는 특별한 종교적인 행사나 활동을 위해서만 성전을 찾는 인물이었다.

 

 

도엑은 아마도 하나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뜻과 계획에는 둔감한 인물이었다. 오로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정치적인 사람이었다. 여러분들도 정치인이라면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도엑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 다윗은 성전에 와서 자신의 약한 모습과 죄악된 모습을 회개하고 눈물을 떨구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면 도엑은 단지 자신의 약점을 위장할 가리개를 얻는 장소였다. 그는 진실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었다. 도엑은 그저 적당한 교인, 종교인에 불과했다. 도엑은 다윗이 아히멜렉으로부터 빵과 칼을 가지고 성전을 나가는 것을 보았고 이를 자신의 성공, 자신의 승진의 기회로 포착했다. 그는 사울에게 ‘고자질’을 했다. 사울이 대단히 화가 난 채 신하들에게 왜 다윗을 아직도 잡지 못했냐고 윽박질렀다.

 

[개역]삼상 22: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개역]삼상 22:9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가로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것을 내가 보았었는데

 son of Jesse coming to Nob , to Ahimelech the son of Ahitub .

 

[개역]삼상 22: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식물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철두철미한 정치적인 기회주의자인 도엑은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고자질의 대가’였다. 사울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다윗을 도운 제사장 가문의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하지만 신하들은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But the servants of the king would not put forth their hand to fall upon the priests of the LORD ”(22:17) 아무리 왕의 명령이지만 하나님의 제사장을 죽일 순 없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러자,

 

[개역]삼상 22: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자 팔십 오인을 죽였고

[Kjv]삼상 22:18

And the king said to Doeg , Turn thou, and fall upon the priests . And Doeg the Edomite turned , and he fell upon the priests , and slew on that day fourscore and five persons that did wear a linen ephod .

 

[개역]삼상 22: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Kjv]삼상 22:19

And Nob , the city of the priests , smote he with the edge of the sword , both men and women , children and sucklings , and oxen , and asses , and sheep , with the edge of the sword .

 

왕의 신하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충신들었다. 그러나, 도엑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제사장 85명을 살해하고 가문의 남녀노소와 가축들까지 다 죽이는 살인을 저질렀다. 칼빈은 도엑을 ‘최고의 악한’이라고 불렀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격분했고 이 사건과 관련하여 시편 52편을 남겼다.

 

시편 52장

[개역]시 52:1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Kjv]시 52:1

To the chief Musician, Maschil , A Psalm of David , when Doeg the Edomite came and told Saul , and said unto him, David is come to the house of Ahimelech . Why boastest thou thyself in mischief , O mighty man? the goodness of God endureth continually .

[개역]시 52: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Kjv]시 52:2

Thy tongue deviseth mischiefs ; like a sharp razor , working deceitfully .

[개역]시 52: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셀라)

[Kjv]시 52:3

Thou lovest evil more than good ; and lying rather than to speak righteousness . Selah .

[개역]시 52:4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 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Kjv]시 52:4

Thou lovest all devouring words , O thou deceitful tongue .

[개역]시 52:5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셀라)

[Kjv]시 52:5

God shall likewise destroy thee for ever , he shall take thee away , and pluck thee out of thy dwelling place , and root thee out of the land of the living . Selah .

[개역]시 52: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저를 비웃어 말하기를

[Kjv]시 52:6

The righteous also shall see , and fear , and shall laugh at him:

[개역]시 52:7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Kjv]시 52:7

Lo, this is the man that made not God his strength ; but trusted in the abundance of his riches , and strengthened himself in his wickedness .

[개역]시 52:8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Kjv]시 52:8

But I am like a green olive tree in the house of God : I trust in the mercy of God for ever and ever .

[개역]시 52: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Kjv]시 52:9

I will praise thee for ever , because thou hast done it: and I will wait on thy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도엑이 하나님의 성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가 하나님의 제사장들에게 행한 잔혹함을 보면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성전은 어떠했는지를 갸늠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는 다윗의 성전관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도엑의 성전관이 존재하는가?

내가 힘이 들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지칠 때 교회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힘이 솟는가? 아니면 단순히 주일날 허겁지겁 교회 예배당 문턱을 지나쳐 도엑처럼 종교활동으로만 숙제처리하듯이 처리하고 치부하고 재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은 아닌가?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그의 우편을 지키셨지만 도엑에게는 하나님의 흔적을,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다윗에게는 하나님과 내가 하나unity였지만 도엑에게는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나는 나라는 주의ism가 존재하였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성전은 어떤 이미지인가? 다윗처럼 ‘빵과 칼’을 두 손에 쥐어주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장소인가? 아니면 도엑처럼 성전을 하나의 의식적인 절차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 자신의 성공을 위해선 잠시 먼지만 일으키고 지나가는pass 곳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삶은 언제나 세상적으로 흘러가는 그러한 공간인가?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다윗의 다윗됨은 언제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성전’의식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은 사무엘상 21장에 등장하는 다윗 VS 도엑에 대한 비교를 통해 인물을 살펴보았는데, 다윗이 가진 성전관과 도엑이 가진 성전관이 얼마나 달랐으며,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은 결국 그 두 사람이 생각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관에서부터 뿌리부터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굳이 조셉 파커나 찰스 스펄젼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ft. 나는 거품인가?)

이 포스팅은 조셉 파커와 찰스 스펄젼의 설교를 들은 미국 목회자들의 반응과 차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론은 우리가 대단한 설교자 조셉 파커나 찰스 스펄젼이 아니어도 좋다는 결

kkarl21.tistory.com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