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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사무엘상.하

사무엘상 23:14-18, 다윗과 요나단-모든 사람이 다 우릴 좋아하진 않습니다

by Message.K 2024. 1. 2.

오늘은 사무엘상 23장에 등장하는 다윗과 요나단의 절친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텐데요. '모든 사람이 다 우릴 좋아하진 않습니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번 포스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설교의 대상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사무엘상 23:14-18, 다윗과 요나단-모든 사람이 다 우릴 좋아하진 않습니다
사무엘상 23:14-18, 다윗과 요나단-모든 사람이 다 우릴 좋아하진 않습니다

 

 

 

 

제가 군대를 가기 전, 군 입대는 누구나 다 참 힘든 순간일 것이다. 그 때 나의 성경공부 리더였고, 형이자 선배였던-지금은 선교단체 간사로 섬기고 있다-나에게 엽서 한 장을 써 주었다.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해야’(삼상 23:16)

 

오늘 본문중의 한 구절이다. 그 형님이 나에게 쓴 준 엽서의 내용이다.

 

'여름날씨 같지 않아 좋았던 어제(월, 17일)

오늘 아침 조용히 경건의 시간을 가지며 요나단이 쫓기고 쫓겨 지쳐 있는 다윗에게 한 격려의 메시지가 나의 눈 안으로 강하게 밀려들었다. 이때 OO가 가장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해야 할 때임을 생각한다. 여린 듯한 너의 모습 가운데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나며 이 시대의 교회와 신학을 위해 헌신된 자로 설 너를 기대해 본다. 너의 잘 다듬어진 글들이 사람의 가슴을 녹이고 치유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라. ....훈련 가운데 함께 하실 하나님을 잊지 말아라~!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할 Guy 7.18.Qt후

추신...노래는 잘 못하지만,

 OO이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다윗과 요나단. 둘은 친구였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우정(友情)!

 

 

 

모든 사람이 우리를 다 좋아하진 않는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친구들이 다 우리를 좋아하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에 다니는 학창시절을 보내는 여러분들을 학교 선생님들이나 학교 반 급우들, 선후배들, 그리고 교회 친구들과 어른들, 선생님들....여러분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을 다 좋아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정말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다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태어나서 기저기를 찰 때에는 우리는 다른 사람-심지어 엄마나 아빠에게-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으로 여겨지다가 나중에는 점차 학교에서 라이벌의식을 느낄 때도 있고 심지어 원수같은 적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다윗이 그러했다. 다윗은 이러한 적대감을 젊은 나이에 경험했다. 어쩌면 여러분과 비슷한 나이 아니면 한 두 살 더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젊고 왕성한 나이에 다윗은 이러한 경험을 했다. ‘비판, 조롱, 무시, 공격, 비난, 버림, 욕, 저주, 박해, 타박, 중상 모략, 동네북 취급, 칭찬을 가장한 조롱 등’...여기에는 '왕따‘라는 말도 들어갈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우리를 늘 이해하고, 늘 사랑하고 늘 용서해주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런가? 그렇지 않다.

 

 

 

적: “다윗을 벽에 박아버리겠다”

다윗을 이토록 미워한 사람은 바로 사울 왕이었다. 사울 왕이 왜 다윗을 미워했는가? 나이든 사울 왕이 왜 아들 같은 나이의 다윗을 증오했을까? 다윗의 얼굴이 너무나 잘 생겨서 샘이 나서 그랬는가? 아니다. 단지 다윗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그랬는가? 아니다. 사울이 다윗을 미워한 이유는 다윗이 너무나 선했기 때문에 그를 증오했다. 웃기지 않는가? 여러분들 같은 경우에 친구가 너무 밉살스럽게 보이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친구를 미워하지 않는가? 그런데 다윗은 아니었다. 다윗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미움을 받았다.

 

사울은 다윗을 너무나 미워한 나머지, 질투한 나머지 다윗을 죽이려 했다. 사울이 처음으로 다윗에게 흥미를 보인 것은 다윗의 연주실력이었다. 사울은 자신이 나라의 일과 국정으로 시달리며 힘들고 피곤하여 때론 악령이 출현하기도 했는데 다윗의 음악을 들으며 말끔히 씻기는 효과가 났기 때문이다. 다윗은 음악 치료사Music Therapist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러한 치유 대신에 증오심이 사울 왕을 사로잡았다.

삼상 18:11...‘다윗을 벽을 박아버리겠다!’

  

다윗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을 때, 창을 던져 다윗을 벽에다 꽂아 버릴려고 했다.

창은 다윗의 머리를 살짝 빗나가 벽에 박혔다. 사울은 또 다시 창을 던졌고 이번에도 다윗은 몸을 겨우 피했다. 이렇게 사울의 비이성적이고 살인적인 광기는 점차 침착하고 계산된 살인 음모로 발전해 갔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하면 그 끝은 언제나 이럴 수 밖에 없다. 여러분이 누굴 미워하면 무슨 생각을 하는가?

 

“저 놈 좀 없어졌음 좋겠다. 세상에 저 자식이 왜 태어났지? 저 놈(년)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분위기 다 해친다. 잡친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미움은 이것보다 더했다.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면 왕으로서 당연히 기뻐해야 할 사울이었지만 오히려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고서 왕이 될까봐 경쟁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사울 왕은 다윗에게 전쟁에서 수훈을 세우면 자신의 딸 메랍과 결혼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은 다윗은 험한 전쟁터로 내몰아서 결국 블레셋 인들의 손에 죽도록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결혼할 자격을 갖추자, 사울은 황급히 딸 메랍을 다른 사람(므홀랏 사람 아드리엘)과 결혼시켜 버리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는 사실 다윗을 자신의 사위로 삼을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 후 사울은 메랍의 동생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것을 이용하여 또 다시 다윗을 죽일 악랄한 음모를 꾸민다. 어떻게 아버지라는 작자가 자신의 딸의 결혼을 빌미 삼아 사위를 죽이고자 하는 작전을 세우는가? 전부 권력욕에 눈이 먼 사울의 욕심 때문이었다. 블레셋 전사 백 명의 신체 부위중의 하나인 포피를 가져오면 미갈과 결혼시켜 주겠다고 했다.-사울은 백 번 중에 한 번은 다윗이 당하지 않겠는가!- 다윗은 이러한 어렵고 잔인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 역겨운 결혼지참금인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의 두 배인 200개를 왕 앞에 내놓는다. 이것으로 결혼이 성사되어 미갈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사위가 된 다윗에 대한 사울의 증오심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딸 미갈의 다윗에 대한 사랑은 오히려 사울의 미움을 더 부추겼다. 그리하여 다윗은 사울로부터 궁정에서 달아나 광야의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세상에 사위를 죽이려하는 장인이 여기에 있다. 사울은 또 다시 ‘암살단’을 조직해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잠을 자고 있는 다윗을 무방비상태에서 죽이고자 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 할 때 다윗은 바른 일만을 행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스라엘의 난국을 해결했고-거인 골리앗을 죽임-,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울의 영혼에 안정과 치료를 해 주었다. 정말 다윗은 사울에게 더 나아가 이스라엘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도 다윗은 거의 죽을 뻔했던 것이다.

 

  여러분들 중에 좋은 일을 했는데, 다른 사람에게서 욕을 얻어먹는다면 참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고 당혹스러운 사건이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에게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토한다.

 

삼상 20:1...“내가 무슨 못할 일을 하였느냐? 내가 무슨 몹쓸 일이라도 하였느냐? 내가 자네의 아버님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아버님이 이토록 나의 목숨을 노리시느냐?”

 

시편 7편은 다윗이 자신의 억울한 이러한 심정을 고백한 시이다.

 

 

 

친구: 다윗에게 마음이 끌린 요나단

 이렇게 악랄한 살인 음모가 펼쳐지는 와중에도 그 속에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야기가 아주 비범하게, 평범하지 않게 들어 있다. 요나단이 누구였는가? 바로 사울의 아들이었다. ‘손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사울의 아들은 아버지인 사울 편을 들어야만 한다. 그러나 사울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 있었고 요나단은 이러한 아버지를 무조건 편들지 않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다. 다윗과 요나단은 둘 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울 왕을 위하려고 했다. 마침내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삼상 20:33), 다윗이 도망가도록 도왔다.

 

 왜 이토록 요나단은 다윗을 위했는가? 아버지보다 다윗을 더 위했다. 왜인가?

 

“요나단은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마치 제 목숨을 아끼듯, 다윗을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요나단은 제 목숨을 아끼듯이 다윗을 아끼어, 그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고”(삼상 18:1,3)

 

18장 나머지부터 20장까지는 사울이 여섯 번에 걸쳐 다윗을 없애려고 한 일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

요나단의 우정이 없었더라면 다윗은 아마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사울에 대한 충성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너무나도 달랐던 요나단은 다윗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보았고,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의 위험과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와 우정의 약속을 맺었다. 요나단의 우정은 다윗의 영혼을 강하게 붙들었다.

 

  여러분, 우정이 무언가? 여러분에게 우정이라는 것이 있는가?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라는 신학자는 우정을 ‘그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것을 굳게 다져 주는 것이다. 즉 시간을 들여서, 상대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가장 그 사람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알아보고, 인정과 격려를 통해 그것을 다져 주는 일이다.’고 했다.

 

 

  우리는 교회에서 학교에서 우리의 겉모습만을 보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애들이 우리를 보면서,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이용 가치가 있을지 그리고 우리에게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지 계산하기 시작한다(유우머 감각, 공부(성적), 시험정보, 싸움 잘하는 힘, 깡다구, 운동감각...)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친구들로 규정지어 버린다. 그런 친구들은 우리를 우리 이하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우리 또한 그들을 별 볼일 없는, 쓸모 없는 친구로 취급해 버린다. 투명인간 취급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생활에 이와는 다르게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그 친구는 우리를 이용할 목적으로 우릴 바라보지 않는다. 내가 공부를 잘 하던 못하던, 엽기이야기를 많이 알든 모르든, 유우머 감각이 풍부하든 못 하든, 욕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 싸움을 잘 하는지 못하는지, 축구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 컴퓨터를 잘 만지는지 못 만지는지 등...이러한 것들에 아무런 상관이 없어 내 마음의 진실된 면만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서 내가 가진 약점이나 결점을 꼬집어 내기 보다는 내 속마음을 일깨워주고 내가 어려울 때 내 마음을 편하게 쉬게 해주고 이해해준다. 그게 바로 친구다.

 

 

 

친구가 있는가? 우정이 있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이런 친구가 있는가?

다윗과 요나단 중에서 여러분의 요나단이 있는가? 아니면 역으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친구에게 요나단과 같은 친구인가?

 

요나단이 되는 일은 위대한 일이다.

 

요나단이 없었다면, 다윗은 자신의 왕에 대한 소명을 포기하고 단순한 목동 생활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의 선의를 짓밟는 사울 왕에 대해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윗은 요나단이 있었기에 이 두 가지의 길로 빠져들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두 가지의 기도제목이다.

 

"요나단과 같은 친구를 제게 주옵소서!
요나단과 같은 친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다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다." -요한복음 15:13-14

 

기억하라! 영원불변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영원한 친구라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은 구약성경 사무엘상 23:14-18의 본문을 가지고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다루면서 '모든 사람이 다 우릴 좋아하진 않습니다'라는 주제의 설교인데, 요나단과 같은 우정과 친구를 얻는 것,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친구라는 사실을 같이 나눠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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