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는 숫자의 책Numbers이다. 또한, 소수의 야곱 가족이 출애굽을 통해서 한 민족을 이룬 역사를 숫자라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12지파 가운데서도 민수기 1장 20-46절에 나오는 레위 지파, 유다 지파, 요셉 지파가 특별히 받은 복에 대한 설교이다.
요즘 출산에 대한 현대의 트렌드와 추세는 reduce이다
“아이보다는 생활의 안정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사교육비가 힘들어 동생 없는 외로움을 더해 주었습니다."
"동생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아이는 당신과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나름대로 가족계획을 세우는 사람도 있다. 자식을 몇이나 낳을거냐? 딸을 낳을거냐? 아들을 낳을거냐?(선택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만 저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저는 2-3명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스케줄은 남달랐다. 연년생을 낳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행히 주위에 연년생을 낳았던 선배 부부들이나 연년생을 낳고 양육하는데 겁나게(?) 고생하는 동병상련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앞으로 연년생을 낳고 뒤늦게 고생하실 인생 후배의 부부들-축하합니다! 하하하! 라고 쓴 웃음을 지어 보내고 싶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자식은 재산’이라며 가치로 따질 때 ‘약 8억원’의 가치가 있다는 카피를 본 적이 있다. 요즈음은 전부 자녀를 적게 낳는 추세라서 공익광고를 그런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자녀를 출산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견해와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녀를 출산하는 것이 득이냐? 이득이냐? 아이가 부모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안전 장치이냐? 아이는 아이로써 독립된 인격체이지 부모를 위한 하나의 악세사리가 될 수 없다는 독하게 부정적인 이야기도 한다.
여러분은 과연 자녀를 출산하는 것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출산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본문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출애굽하고 가나안 땅을 향하는 가운데 광야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본문은 자녀 출산에 대한 성경적인 생각들을 부분적으로 잠시 살펴보는 대목이 될 것이다.
모세와 아론 그리고 각 지파의 지도자로 세워진 열 두사람은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종족을 대표할만한 전사-20세 이상된 남자들-들을 계수하는 장면이다. 그리하여 인구조사 결과, 전쟁에 나갈 수 있는 20세 이상된 남자들을 조사발표한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군인으로, 용사로 참전가능한 남자의 숫자를 계수하는 대목이다.
20절부터 43절까지 12지파의 아들들로부터 나온 전사들의 수를 적고 있다. 특별히 2절씩 반복적인 문구를 사용하면서,
...아들들에게 난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이 문구가 계속 2절씩 반복된다.
자 그렇다면, 각 지파가 몇 명인지 한 번 살펴보자.
- 르우벤: 45,500명
- 시므온: 59,300명
- 갓: 45,650명
- 유다: 74,600명
- 잇사갈: 54,400명
- 스불론: 57,400명
- 에브라임: 40,500명
- 므낫세: 32,200명
- 베냐민: 35,400명
- 단: 62,700명
- 아셀: 41,500명
- 납달리: 53,400명
---> 적게는 32,200명에서 많게는 74,600명으로 나타났다!
성경이 말하는 출산의 트렌드는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에서 번영과 번성과 성공을 많은 자손을 낳은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들어갈 당시에 그들은 고작 70명(창 46:27)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들만, 전투력으로 바로 투입될 수 있는 남자의 수만 해도 7만명을 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분명한 축복이었고 감사의 기도제목이었다.
창 1:28에 하나님은 분명 아담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히 ‘생육과 번성과 충만과 정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녀를 출산하고 산아제한하는 것은 분명 정책적인 효율성은 분명히 있겠지만 철저한 성경적인 해석과 바탕은 바로 ‘생육과 번성함’임을 기억하라!
20-43절, 조상의 순종, 후손의 복
중요한 포인트! 세 지파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여기 나오는 12지파에 포함되지 않은 지파이다. 바로 레위 지파이다!
❶ 레위 지파가 빠졌다!
레위지파는 하나님의 성전을 관리하고 예배를 책임지는 일로 인해 전쟁에 나가는 일에서 제외되었다. 성직자들의 의무는 그러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모든 업무에서 열외되었다. 신정정치의 국가에 성직자 그룹이 백성들의 중심에 늘 있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레위지파는 전쟁에서 열외되었다. 요즘 같으면 국방의 의무를 등한시하고 국민의 의무를 져버렸다고 욕하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연예인 MC몽이 병역의무에 대한 오해로 완전히 매도당한 사건을 보더라도 우리나라 남자, 대한민국 남자라면 국방의 의무에 비켜서 갈 수 없는 노릇이다.
특별히 요근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간절히 따기를 원했던, 추신수에 대해 미국의 한 매스컴은 추신수는 야구를 통해 병역면제도 받고, 부와 인기와 명예를 메이저리그에서 동시에 누린다고 비난하는 뉴스를 잠시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미국의 메이저리그 선수중에 한 친구는 한국전쟁이 났을 때 자신의 야구를 접고서 남의 나라인 한국전쟁에 투입되어 부상까지 당하였다는 소식을 이야기로 냈다. 정말 국방의 의무에 대해 민감한 우리나라의 정서상 레위지파는 ‘신의 아들’로 분류되어 질타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지파의 20세 이상 건장한 남자라면 누구나 현역으로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레위지파는 열외가 되었다! 구약시대 인터넷이 있었다면 ‘레위지파’는 네티즌의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전과 예배를 지키기 위해 레위인은 병역이 면제가 되었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따라서 성경을 해석해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원리를 통해서 병역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했음 한다.
레위지파에 대한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의 성직자, 교역자들이 더욱 말씀과 기도에 더 집중하도록 배려하는 훈련이 필요하겠다!
신약시대에 왜 집사제도가 생기게 되었는가? 교인이 불어나고 믿는 자들이 많아지자 헬라파/ 히브리파 상관없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역색이나 출신성분에 따라서 색깔이 있을 수 밖에 없듯이 헬라파와 히브리파 사이에 ‘구제’문제로 말미암아 갈등이 있었다. 그 갈등문제로 열 두 사도는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 ‘구제’문제도, ‘행정’문제도 중요하지만 사도의 본연의 의무는 ‘하나님의 말씀 사역과 기도’의 사역임을 재차 밝히면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7명, 집사를 세워, 집사 제도를 통해 교회의 행정을 분배하게 이른 것이 아닌가? 바로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기 위해서 집사제도를 나오지 않았던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기 위해 교회의 행정도 분배했던 사도들,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기 위해 전쟁의 의무에서 면제된 레위지파! 우리 교회도 광주 시민의 1/10을 담당하고, 각 예배마다 1,000명의 예배자를 세워가는 가운데 점점 더 말씀의 사역자들이 본연의 사역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배려하였음 좋겠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을 때 은혜가 더 배가될 줄 믿는다.
두 번째는,
❷ 유다지파-가장 큰 지파로 성장-74,600명으로 성장했다.
유다지파는 왜 이렇게 가장 많은 장정을 거느린 파워 있는 지파로 성장할 수 있었는가? 이것은 가시적이고 상징적인 이유이다. 그 이유는 메시야 탄생의 약속(언약) 때문이었다! 유다의 계보를 통해 그리스도가 나실 것이기 때문이다. 장남인 르우벤이 숫자적인 우세를 보인 것도 아니었다-르우벤의 육적, 육적 장자권은 유다와 요셉에게 빼앗겼다! Why? 그는 아버지의 하체를 범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첩과 동침한 패륜아였기 때문에 그는 축복의 자리에서 밀려난 것이다!
요셉의 두 아들도 아닌! 약간은 어중간한 순서의 유다지파! 시아버지와 며느리간의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관계에서 이 지파는 성장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며느리 다말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축복해주시니 이렇게 강성해진 것이다. 평생 과부를 살아야 할 운명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자신은 분명 자녀를 낳아 대를 이을 수 있는 여인의 신분을 깨닫고 그것을 시아버지에게 드러냈던 인물이 바로 다말이었다!
성경이 강조하고 칭찬하는 것은, 그녀의 지력과, 부당한 조치를 그냥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모습인 것 같다. 부당한 처우를 받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가계의 계보를 잇기 위한 생산을 향한 열정이 다말의 위대한 점이다. 여자라는, 약자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며 살 수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생산의지를 드러냈다. 이 부분이 마태가 그녀를 이 족보에 끼워둔 이유가 아닐까?(마 1:3) 이 여인은 다윗 족속의 조상이 된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순종이 돋보인다!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했던 다말의 용기! 우리의 상식과 법칙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어떻게 과부인 여자가 죽은 남편의 동생 사이에서 후손을 낳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스라엘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은 ‘형사취수혼’이라고 해서 그렇게 해야만 했다. 다말은 주저앉지 않고 그것이 편법이고 부도덕하고 반윤리적이긴 하지만 말씀을 지키고자 했고 하나님은 그녀의 편을 들어 ‘쌍둥이’를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에게서 이렇게 많은, 가장 많은 자손이 배출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번성의 축복이다! 이 대목은 정말 우리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어찌 이런 여자가! 어찌 이런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그런데, 그게 복음이다! 그렇지 않은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어떻게 아기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 불미스러운 조상들 밑에서 어찌 고결하고 순결하신 예수님이 탄생할 수 있단 말인가?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 이후에 어찌 부활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단 말인가? 교회에서 무슨 선한 것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교양도 없고, 멋도 없고, 재물도 없고, 인기도 없고, 권력도 없는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슨 역사를 이뤄가신다는 말씀인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만한 그릇인 지도 모른다. 내가 무언가 대단하고 탁월하고 유능하고 뛰어나고 무언가 내세울만한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나는 더 다듬어져야하고 훈련받아야 할 재목인 것이다.
복음은 유다 지파를 통해, 유다의 후손을 통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우리 같은 죄인이, 나같은 죄인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닌가? 이것이 놀라운 은혜가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나를 성공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순종하라고 부르셨습니다.
-마더 테레사
❸ 가장 주목하고 싶은 대목이다. 요셉지파-2지파(에브라임, 므낫세)로 분리되어 한 지파가 두 배의 복을 받았다.
40,500명 + 32,200명=72,700명,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는가? 여러분은 그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왜 요셉은 두 아들에게 축복을 받을 수 있었나? 그것도 아들 요셉이 아닌 손자,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요셉의 신실한 삶 때문이었다! 신실 때문이었다! 야곱이 임종 전에 축복한 대로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요셉은 두 몫의 복을 받아 실제로 장자의 복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창 48장, 대상 5:1-2 참조).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약속을 잘 지키시기로 유명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비전과 약속을 붙잡고 불평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삶 가운데 최선the best의 삶을 살았던, 신실한 자인 요셉에게 넘치는 축복, 번성의 복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이찬수 목사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조건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믿음”
요셉에게 꿈은 오늘날의 말씀과 같은 언약의 계시이다. 창 37장: 모든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 절하는 꿈, 해와 달과 별이 절하는 요셉에게 절하는 꿈은 개꿈이 아니라 오늘날의 말씀이었다. 오늘날은 성경이 66권으로 이렇게 표지까지 만들어지면 수많은 번역본들이 등장하는 시대이지만, 당시에는 성경이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정경이 완성되지도, 성경이 있는지조차도, 기록되지도 않았던 시대이기 때문에 꿈은 말씀 그 자체였다! 요셉은 감옥 속에서도, 어떠한 환경에서도 그 꿈을 곱씹었다. 믿음의 선진들이 감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소가 여물을 씹듯이 생각하고 다루었던 것이다.
The Best Life=약속을 붙드는 삶! + 신실한 삶!.
the Best가 되기 위해 신실한 Promise_Keeper가 되기를....
'성실한 사람은 따로 규율이 필요 없다'(Integrity has no need of rules)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붙드는가? 여러분은 얼마나 신실한 삶을 사는가? 사람들이 여러분을 칭찬할 때 여러분의 그 내면적 자실, 빛나는 보석 같은 신실의 자질, 성실함의 자질을 보여주길 바란다. 요셉처럼 신실하게, 성실하게!
딤후 2:2...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여러분이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다른 이들에게 보일 때 과연 ‘충성된 사람’이라는 별명이 생길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충성된,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지난 한 해동안 11개월 동안 한 해를 돌아보면서 목장리더로서, 목장원으로써, 직분자로서, 하나님 앞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은 얼마나 신실하게 말씀 앞에 나아가며 말씀을 붙들었는가? 충성스럽게 생활했는가? 한 번 돌아보라!
*. 요셉과 유다 두 지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던 조상들로 인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았다.
내가 자녀와 후손의 복된 삶을 위해 배려하고 준비하는 것은 무엇인가?
후손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사람이 되는 지혜는 무엇인가? 꾸준하고 일관성 있는 신실함! 충성스러움이 요구된다!
44-46절, 큰 민족으로 성장
장사의 숫자가 603,550명으로 성장, 번영했다.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는 상상할 수 없는 열매를 가져다준다. 인구조사 결과, 전쟁에 나갈 수 있는 20세 이상 된 남자들의 수는 603,550명이었다. 제외된 20세 미만의 유아, 어린이, 청소년, 20세 이상 된 여성 및 노인, 레위 지파 사람들을 합하면 이스라엘 백성의 총수는 약 200만 명이 넘었을 것이다. 430년전 에 애굽 땅으로 이주했을 당시에는 야곱의 가족은 처음엔 고작 70명 정도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해 큰 민족을 이뤘다. 이를 통해 모든 구성원을 하나님 나라의 일에 참여시키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모두 함께하는 것이다.
민수기Numbers는 숫자의 책이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서도 민수기 1장 20-46절의 본문 속에 등장하는 세 지파, 레위지파, 유다 지파, 요셉(므낫세, 에브라임) 지파를 통한 하나님의 생육과 번성의 복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복의 가로세로를 재라'는 제목으로도 표현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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