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민수기 27장에 나타난 슬로브핫의 딸들이 이야기를 보면서 그들이 당시에 비록 여성이라는 지위에 있었지만 자신들의 기업, 약속된 은혜를 당당히 구하는 용기를 발휘한 대목을 보면서 '약속된 은혜를 구하는 용기'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이다.
민수기 27장 1-11절의 본문
1 요셉의 아들 므낫세 종족들에게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찾아왔으니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2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이르되
3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4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5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아뢰니라
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7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8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딸에게 돌릴 것이요
9 딸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10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아버지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11 그의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받게 할지니라 하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규례가 되게 할지니라
사랑하는 청년, 대학부 여러분!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가? 남녀, 성별 차이에 연연해하면서 남성가장주의적인, 권위주의적인 하나님이 아니심을 믿는가? 그렇다. 하나님은 남성우월주의자나 여성우월주의자도 아니시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구원의 기회도 남자에게만 준 것이 아니라 남녀 동등하게 주셨다. 하지만 구약시대에는 유독 하나님은 남성을 더 세우시고, 여성은 더 무시하시는 대목을 종종 볼 수 있다. 출애굽할 때 장정 남성들만 60만이라고 계수하면서 그 외 노약자와 어린이와 여성들은 계수하지 않았다. 다 합치면 약 200만 되지 않았겠는가? 그럼 왜 여성은 늘 이렇게 쏙 빠지게 되는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예만 보더라도, 여자들만 쏙 빠진 것이 아니라 노약자와 어린이들과 함께 여자들이 빠졌다는 것이다. 여자들 중에는 분명히 잔 다르크와 같은, 레지던트 이블의 ‘밀라노 요요비치’같은 여전사가 없었겠는가? 하나님은 여성들을 다른 노약자, 허약자들과 함께 빼놓으신 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연구는 안 해 봤다-여성은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보호대상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정 남성들만 계수하신 것은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숫자의 셈, 계수에도 들어가지 않는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등장한다. 여자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것은 참 특이하다. 성경상에서 계수하는 면에서 여자가 포함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여성의 이름이 등장하고 이름이 거론되는 대목도 특이하다. cf.) 드보라의 사사로의 등극 사건, 마태복음 4명의 여인의 이름이 등장-다말(유다의 며느리), 기생 라합(보아스의 아내), 우리야의 아내-밧세바, 요셉의 아내-마리아.
이 여자들의 이름이 등장할 때의 배경은 항상 남자가 제 구실을 다 하지 못할 때 등장한다. cf,) 드보라 Vs 바락(여성에 의지한 남성, 바락). 누가 등장하고 있는가?
슬로브핫의 딸들(1-7절)
2차 인구 조사의 목적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 20세 이상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 남자들이 조사의 대상이었다. 각 가정에서 20세 이상 남자의 숫자가 많으면 기업의 땅이 많이 돌아갔으며 숫자가 적으면 적게 주어졌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발생했다. 므낫세 지파의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었고 5명의 딸만 있었다(26:33)-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 이 딸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모세에게 나아갔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이 5명의 딸들만 두고 광야에서 죽었다. 그가 죽은 것은 고라 사건과 관련이 없었고 자기 죄 가운데 죽었다. 따라서 그 가정은 장차 이스라엘 내에서 기업의 땅을 받지 못한다. 슬로브핫의 이름 역시 이스라엘 내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딸들이 아버지의 기업의 땅을 자신들에게 달라고 나섰다.
모세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하나님께 여쭈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슬로브핫의 딸들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신다. 슬로브핫의 기업을 딸들에게 줄 것을 명령하신다. 이 규정은 비단 슬로브핫의 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오는 모든 세대에 아들이 없고 딸들만 있는 가정에 적용될 것이다.
(4)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삭제되리이까-‘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의해 물질의 양 혹은 사회적, 종교적 활동 영역이 감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들이 없으면(8-11절)
하나님은 이 문제에 관해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먼저 아들이 없으면 기업의 땅에 대한 우선권은 딸들에게 있다.
딸들의 경우는 원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슬로브핫의 딸들의 경우는 남자 상속인이 없을 경우에 상속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 경우 자기 아버지의 종족의 어느 씨족으로 시집을 가야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 규정에 따라 엘르아살의 딸들은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상속받고 자기 사촌 오빠와 결혼했다(대상 23:22). 만일 어떤 사람이 상속인 없이 죽었다면 재산은 죽은 사람의 남자 친족에게로 넘어갔다.
딸들->형제들->그의 아버지의 형제들->가장 가까운 친척!
이렇게 상속의 규례가 정해진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아버지로부터 받는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토지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토지를 가나안 정복으로 얻은 대가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토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이라는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즉 하나님이 세상에 복을 주시기 위해 먼저 그분의 백성으로 자신들을 택하시고, 자신들에게 거할 토지와 그에 따르는 모든 복을 주셨다는 것이다. 초기에 토지가 지파에 속한 것이었지만, 차츰 가족 단위로 관리되고 분할되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토지 외에 노비, 가재도구, 가축, 우물 등이 기업으로 대물림되었다. 장남은 다른 자식들보타 두 배 많은 기업을 가졌다. 이것은 장자가 일족의 대표로서 값비싼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바치고 손님을 접대해야 했기 때문에 이해된다. 후에 상속받는 기업은 물질적인 개념에서 영적인 개념으로 전이되었다.
이러한 기업, 그 기업을 상속하는 것에 대한 슬로브핫의 딸들의 고민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 받을 대상이 20세 이상의 남자들에게 국한됐다는 사실! 그들은 모세를 찾아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설명했다. 자신들의 아버지는 고라 자손의 반역에 가담해 하나님의 징계로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의 아버지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격과 권리를 박탈당하고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그가 여느 사람처럼 필연적으로 죽었음을 말한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아들이 있었더라면 그가 받았을 기업을 자신들이 받아 기업이 보존되기를 바랐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이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을 ‘죄’라고 단정한 것을 통해 그들이 바른 인간관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이 죄인임을 올바로 인식하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3)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스려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에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바른 성경적인 세계관과 관점을 소유한 슬로브핫의 딸들이었다!
이러한 요구가 어떤 ‘백’을 의지한 것도 아니었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슬로브핫의 딸들의 요구는 정당했고 성경적인 요구였다. 여자들이 나서서 무언가를 주도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오늘날처럼 개방적인 시대의 분위기와는 다른 당시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딸들에게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은혜를 구하는 용기-슬로브핫의 딸들
사랑하는 청년, 대학부 여러분은 하나님의 기업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슬로브핫의 딸들이 한 가문, 한 가정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의 기업과 은혜를 얻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슬로브핫의 딸들의 자신의 아버지나 아들(오빠, 동생)이 없는 것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상황과 환경에 좌절하지 않았다. 당시의 관습과 풍습의 정통적인 분위기를 알고 있었지만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있다. 관습과 시대의 분위기의 정통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정통성, 성경의 정통성에 기초한 생각과 의견을 내뱉을 수 있는 용기가 그녀들에겐 존재했던 것이다.
이런 용기의 사람의 성경상에 자주 등장하는데, 특별히 여러분이 잘 아는 ‘갈렙’을 들 수 있다. Ex) 사십일 가나안 정탐 후의 열 정탐꾼의 보고와 대별되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긍정적인 보고(민 13:25-33).
(민 14:9)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꿈을 바라볼 때 취해야 할 자세!
(수 14:12)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갈렙 또한 약속된 근거, 말씀의 근거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의 꿈과 비전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은 때론 꼭 우리들을 사용하시지 않고 대신 다른 사람을 사용하실 수도 있다.
들러리가 아니라 주인공이 되는 은혜가 있기 위해선 늘 준비된 용기와 믿음이 필요
지금 미국야구는 챔피언시리즈, 한국은 포스트시즌으로 열광중에 있다. 박찬호가 있는 다저스와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다저스는 다 이긴 경기였다. 5:3에서 투런 홈런을 맞고, 타석에는 맷 스테어라는 37살의 노장이 들어섰다. 메이저리그 16년차인 그가 post season은 제대로 밟아보지도 못한 경험의 그였다. 하지만 그가, 그 노장이 투런 홈런을 때려내면서 필라델피아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만약에 그 때 그 나이 많은 이 양반을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썼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 때 그 양반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대신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웠을 것이고 경기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필요하실 때 그 자리에 여러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노력하면서 준비하는, 준비하는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맷 스테어가 나이 많고 이젠 전성기도 지나간, 별 볼일 없는 선수라고 빼 놓았다면?-NL이다!
그래도, 그 사람이 그 자리에 대타라는 단 한 번의 찬스를 놓지지 않았을 때 그는 영웅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 슬로브핫의 딸들도, 갈렙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시고자 할 때 여러분은 그만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준비된 자를 하나님은 사용하신다.
감독이 역전승을 노려볼 수 있는, 결정적인 절호의 찬스에 ‘대타’를 기용하려고 하는 순간이다. 감독은 자신에게 남아 있는, 두 선수중의 한 선수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치자. 첫 번째 선수는 벤치에 앉아서 자신의 기회가 오기만을 마냥 기다리는 benchwarmer이고, 두 번째 선수는 첫 번째 선수와 처지는 같지만, 자신의 기회가 언제 올지는 불확실한 가운데서도 계속 스윙 연습을 하는 친구이다.
과연 감독은, 우리는 누굴 ‘대타’로 기용하겠는가?
당연히 후자의 선수가 아닐까?
공교롭게도 맷 스테어(Matthew Wade Stairs)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대타홈런 23개로 최고의 기록을 기록한 선수라고 한다.
준비되어진 자, 충분한 준비만이 자신감을 동반할 수 있다. 운동선수들이 그 한 번의 서브와 그 한 번의 스윙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과 훈련을 하는가? Ex) 테니스 일화...한 번 잘치는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잘 치는 것이 매번이 되기 위한 연습이다. 연습을 많이 한 사람은 온갖 실수와 실책을 다 범해봤기 때문에 온갖 경우의 수를 다 체크했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다. 거기서 바로 자신감이 자리잡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충분한 준비를 감당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얼마나 자신감이 있는가? 중간고사 시즌인데, 또 이런 이야기로 여러분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있는가? 우리가 공부와 성적 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 가운데, 영적인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서 연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용기를 내는 것이다. 말씀과 씨름하며, 본문과 함께 골치 아픈 묵상을 하게 될 때, 그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말씀을 평생 잊혀지지 않는 remind의 말씀이 되는 것처럼! 매일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용기가 있기를 바란다. 성경적인 원리가 충만하도록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하루의 은혜를,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용기가 있기를 바란다. 할 일이 수없이 많이 있는 날들이지만 그 시간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용기! 슬로브핫의 딸들!
은혜를 구하는 용기-모세
슬로브핫의 딸들의 경우처럼, 처리 방법을 몰라(이전의 판례가 없어서) 당혹스러운 경우가 광야에서는 종종 있었을 것이다. 광야는 광야일 뿐! 거기에는 도서관이나 서재나 박물관이나 자료실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짓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리더, 지도자 모세로서는 더욱 힘겨운 순간이었다. 그 때마다 모세는 여호와께 여쭈었다. 이것이 참된 지도자, 참된 신앙인의 중요한 자질이 아닌가?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 가운데 다 홀로 선 모세와 같은 사람들이다. 당황스럽고 놀랍고 힘든 문제들에 봉착하게 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질문하고 구하는 삶의 자세, 태도가 필요하다.
5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아뢰니라
민수기 27장에 등장하는 슬로브핫의 딸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들은 가문에서 남자로 태어나지 못해 유업(기업)을 포기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 모세에게 용기있게 은혜를 구했고 그 용기있는 은혜는 결국 그들의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는 설교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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