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수님의 주기도문인 마태복음 6장 9-13절의 본문강해 8번째 시간으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시험에는 test와 temptation이 있는데, 이 모든 시험, 영적 전쟁의 승리는 예수님께 있음을 알아보자.
[마 6:9-마 6:13]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10)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11)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주기도의 다섯 번째 기원인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드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여섯 번째 기원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 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고, 다음 날 하루를 시작하기 전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이라는 현실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불문하고 시험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시험은 우주적이면서도 여러 가지 다양한 얼굴로 우리를 공격해 오기 때문에, 여간한 분별력과 영적 무장 없이는 대처해 가기가 어렵다. 시험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매일의 삶 가운데서 우리를 위협하고 얼굴을 들이민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질병, 가난, 불명예에 부딪치거나 우리의 의견, 충고, 계획, 말, 행동이 무시당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우리는 좌절과 흥분과 비애와 적개심을 품게 된다. 그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시험 가운데 있게 된다. 처음부터 그것이 시험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알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우리의 감정을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빠져 들어갈 때에는 결국 시험에 들게 된다.
또한 우리의 욕구, 욕심이 시험의 동기가 되곤 한다. 명예심, 영웅심, 탐욕, 허영심, 성적 욕망, 집착, 교만, 성공 같은 것들이 우리를 시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것들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노예가 되어 빠져 나오기 어려워진다.
시험의 은밀성을 잘 알고 있었던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시편 26:2)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시인은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검증받기를 원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기를 원했다.
시험은 temptaion과 test로 구성되어 있다
로메이어라는 신학자는 신구약 성경을 ‘시험의 책’이라고 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겪은 시험으로부터 신약성경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혹독한 시험이 나타나 있다. 성경을 시험의 책이라고 볼 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흔히 하나님이 인간을 시험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야고보서는 이에 대해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약 1: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러기에 성경에서 시험의 주체자는 인간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시험하신 것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은 그들이 약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깊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1)
누가복음은 이 청원의 앞부분만을 사용하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는데, 마태는 아마도 이 청원의 의미를 더 분명히 하기 위해 “악으로부터 구출하여 주소서”를 덧붙인 것 같다.
여기에 사용된 페이라스몬(peirasmovn)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마사’의 번역인데, 이 히브리어 마사나 헬라어 페이라스몬은 둘 다 이중적인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다. 하나는 유혹(temptation)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다른 하나는 시험(test)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어떤 때는 유혹과 시험이 섞여 사용되기도 한다.
이 시험 청원 본문은 “우리를 페이라스몬으로 끌어들이지 마소서”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 사용된 ‘끌어들인다’는 말은 “우리가 그 속에 빠져 가지 않도록 허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페이라스몬을 유혹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2)
김세윤 박사의 의견과는 달리 임영수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성서적 관점에서 볼 때, 시험은 유혹이라기 보다 테스트입니다. 주기도에 나오는 시험이라는 용어도 영어로 test trial입니다.’3)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다
여기서 저는 주기도문에 사용된 시험이 ‘유혹’인지 아니면 ‘테스트’인지 그것을 구별하기 보다 두 가지의 의미를 모두 함의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우리의 모든 삶의 ‘test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 test를 이기지 못하고 욕심이 더 과하거나 첨가하거나 부가될 때 test가 temptation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부과된 선악과 따먹지 말기는 일종의 ‘test’였다. 하나님께 순종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의 시금석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욕심에 이끌려 test는 temptation유혹이 되고 만 것이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시험을 받았지만 그 시험test를 잘 통과하여 test가 test가 되었지만 다윗은 밧세바라는 여인과의 관계에서 test가 temptation이 되었기 때문에 test가 test이지 못하고 유혹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수많은 유혹temptation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은 바울이 말한 롬 12:2의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는’ test이다. 그 test에 우리는 늘 승리해야 할 줄 믿는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 전쟁이다
또한 사도 요한은 이 세상 문화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다.
(요일 2: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건너뛰어야 할 장애물은 바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이 모든 것은 세상으로 쫓아 온 것이라고 못 박고 있다. 우리는 매일 부딪치는 일상 가운데서 수많은 시험꺼리들을 안고 산다.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고 유혹하는 밤 문화와 거리문화와 뒷골목의 문화, 인터넷 보급률 1위를 달리는 대한민국이기에 인터넷에서도 유혹거리들은 부지기수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사이버 범죄와 음란, 퇴폐문화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니 자녀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돈만 결제하면 쉽게 우리의 욕심을 채울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성경은 우리의 싸움이 영적인 전쟁임을 도전하고 있다.4)
(엡 6: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영적 전쟁의 승리의 주인공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우리의 힘으로 대적하려고 할 때 우리는 모두 악의 영들의 밥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악의 영들과의 사움에서 승리한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에덴에서 최초의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한 사탄이 여인의 후손에 의해 완전히 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시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종결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 16:33)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세상에서 시험을 이긴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영원한 대제사장이요 중보자로 계신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히 4:14-히 4:16] (1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16)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이렇게 우리가 간구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그분이 우리와 같은 시험을 당하셨고, 이기셨으며, 우리를 돕는 분이시라는 데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시험을 받아 멸망의 자리에서 우리를 떠나게 해 주신다. 그리고 그 시험을 이겨 가게 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 그 전에는 시험 가운데 영원한 형벌의 상황에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부터는 그러한 형벌의 자리에서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옮겨졌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한다
또한 복음서 기자들이 전해주는 분명한 메시지는 시험의 왕국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고 하나님의 왕국이 오고 있다는 희망의 미래이다. 그러나 그 시험의 왕국이 사라져 가는 뒤안길에는 많은 덫과 위험의 구렁텅이가 있다고 경고해 준다. 그것은 마치 전쟁직후의 상황과 같다. 전쟁에 패한 적군이 후퇴한 곳에는 각종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퇴각하는 그들이 매복해 있다가 갑자기 덮칠 때도 있으며, 퇴각하는 과정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잔인한 행동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제 시험의 왕국은 오고 있지 않고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시험에 동조한다면 사라져 가고 있는 이 어둠의 세력에 사로잡혀, 오고 있는 희망의 하나님 나라와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그러한 삶에 비록 육적인 쾌락이 있고, 일시적인 성공이 있고, 부의 축적이 있다 해도 다 무의미한 것이다. 그것은 속임수이다. 우리는 사라져 가고 있는 시험의 왕국의 자녀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로 태어나서 부름받았음을 명심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 기도와 함께 해햐 할 일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다. 그 전신갑주는 무엇인가?
[엡 6:13-엡 6:17]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15)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5)
우리가 주기도의 이 여섯 번째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이처럼 우리의 무장을 매일 매일 점검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시험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물리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승리하는 귀한 하루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한다.
1) 임영수, 주기도문학교(서울: 홍성사, 2003), 89-91.
2) 김세윤, 주기도문강해(서울: 두란노, 2003), 177-178.
3) 임영수, 92.
4) 김세윤, 190-193. 영적전쟁이란 복음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것이다.
김세윤 교수는 187-190에서 영적전쟁에 대한 귀신론, 사탄론의 잘못된 접근을 설명하고 있다. 이 접근의 부작용은 첫 번째,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다는 것이며, 두 번째, 이런 식으로 자주 억측을 하면 지금 하나님의 통치가 매순간의 가치 판단과 윤리적 선택으로 다가오는 현실 앞에서 나의 결단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C.S.Lewis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사탄, 사탄! 귀신, 귀신!”하는 사람들은 자꾸 그 귀신의 마력에 빨려 들어간다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귀신 공포증을 유발시키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사는 사람들은 귀신이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김세윤 박사의 영적전쟁에 대한 견해는 ‘제자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5) 임영수, 92-98.
오늘은 마태복음 6장 9-13절의 본문인 주기도문강해 8번째 설교를 공유했는데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에 대한 뜻과 의미를 해석해보면서 우리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모든 관건은 바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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