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 9-13절은 주기도문 본문인데요, 오늘은 주기도문강해 여섯번째 시간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문구를 디테일하게 해석하여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마 6:9-마 6:13] 주기도문 본문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10)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11)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의 첫 번째 목적-하나님의 목적이 우선.
주기도문의 두 번째 목적-우리의 목적이 우선.
- 1-하나님의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다.
- 2-우리의 양식, 우리의 죄, 우리의 시험, 우리의 악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우리 식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볼 때 모두 우리를 위한 목적이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가 그의 이름과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구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교회와 우리 가정에 우선 문제가 되는 빵의 문제, 죄의 문제, 매일 부딪히는 시험의 문제, 악의 문제도 해결점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역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1)
이것은 주기도문 전체의 문지방 또는 심장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의 죄, 시험, 악의 문제는 거의 다 양식(빵)의 문제와 관련되며, 양식의 문제는 우리의 배고픔, 결핍과 관련이 있다.
주기도문은 양식은 단순히 ‘양식’, ‘빵’, ‘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양식은 ‘우리의 결핍된 존재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 모든 것은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거하는 것, 농지, 자연, 가축, 돈, 좋은 배우자, 자녀, 좋은 통치자(곧 선거철이 다가온다-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좋은 정부, 평화, 건강, 명예, 좋은 친구, 신뢰할 수 있는 이웃이 다 포함된다.
성경은 인간을 영과 육으로 구분해서 대립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플라톤의 이원론에서 영은 선한 것이고, 육은 악한 것이라는 논리가 나온 것이지 성경에서는 영과 육을 갈라서 설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기가 도는 한 인격체로 설명하고 있다. 즉 영과 육이 합한 존재를 말한다. 그러므로 양식에 대한 의미도 오로지 육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삶 전체를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양식은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필요한 모든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또 하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영과 육으로 분리된 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의 빵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마 4: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지상 생활에서 인간의 모든 생의 물음에 대한 해답은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그리고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양식은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원기를 공급해주는 요소이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배고픔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양식은 그의 지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한 의미에게 이 주기도문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름 받은 교회의 행동목표의 중심이자, 주기도문 전체의 심장이다.
3가지 관점
- ❶-양식은 우리 인간 존재의 필요한 결핍을 채워 줄 수 있는 일상적인 삶의 모든 필수 품목이다.
- ❷-양식은 우리가 영양실조에 걸려 병들지 않게 하는 영양소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필수품을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게으른 자에게 공급할 수 없다고 했다(살후 3:10). 왜냐하면 영양소는 열심히 일하는 자들에게만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 는 게으른 자들에게는 이것이 필요치 않다.
- ❸-양식은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잔치의 상징이다.
(눅14:15)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일용할2)
...이것은 시간의 길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양(量)을 의미한다. 즉 이것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양’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양식으로 내려 주셨다. 그러면서 거기에 단서를 붙이셨다. 그 날 필요한 양만을 가져가고 더 이상은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에 불순종하여 그 날의 양보다 더 많이 가져갔다. 그런데 더 가져간 양식은 하루가 지나자 썩어 버릴 수밖에 없었고 먹을 수도 없었다(출 16:1-30).
하나님은 한 개인의 하나님이 아닌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시기에 한 개인의 욕심으로부터 나오는 부당한 축적을 허락지 않으셨다. 그리고
오늘날 주석가들이 즐겨 택하는 세 가지 해결책이 있다.
첫째, ‘삶에 필요한’ 또는 ‘삶을 가능케 하는’의 뜻일 가능성,
둘째, ‘당일을 위한’ 이라는 뜻, 여기에 ‘헤메란(헬라어)’이 생략된다고 보는 것이다. ‘당일에 필요한’ 또는 ‘당일을 위한’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셋째, ‘오는 날’ 또는 ‘다음날’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오고 있는 날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이 해석들 중에서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첫 번째와 세 번째이다...그렇다면 ‘다가오는 하루를 위한 나의 양식을 주시옵소서’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기도를 아침에 한다면 이제 지금부터 시작하는 다가오는 하루를 위한 양식을 달라는 것이고, 저녁에 드린다면 내일 오는 다가오는 하루를 위한 양식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된다...최근에 주석가들은 특히 세 번째의 의미로 많이들 해석한다. 세 번째일 가능성이 상당히 큰 이유는, ‘오늘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옵소서’라는 청원이 출애굽기 16장의 만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 16:4)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_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따라서 주기도문의 ‘오늘날’이라는 말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그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생명을 가능하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즉 생명을 보존해 달라는 기도이다. 그렇게 생명에 필요한 것을 주시는데 그것을 누가식으로 하면 ‘날마다’이고, 마태식으로 하면 ‘오늘 하루’를 위해 달라는 것이다.3)
그러기에 주기도문에서 나타나는 바, 단지 ‘일용할’ 양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이라는 시간적 제한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위탁하신 ‘오늘날’이라는 한 시점에서 우리의 생을 위해 충분히 쌓아 두는 것으로 끝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매점매석하지 말라’는 깊은 뜻이 있다.
미국의 유명한 부호였던 록펠러, 록펠러의 어머니의 교훈 10가지 중 첫 번째는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친아버지보다 더 중요한 공급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4)라는 지침이었다. 그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록펠러는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다가 부자로 죽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뉴욕 시에 헌납해서, 뉴욕 시에 사는 시민은 누구나 그 시가 없어질 때까지 물값을 내지 않도록 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신약성경의 이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눅 12:15)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자신을 위해 쌓아 두고 저장하는 것은 생에 대한 불안과 배고픔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양식에 대한 배고픔이 있다. 그러한 인간의 배고픔은 모든 시험과 악의 근원이 된다. 인간은 권력, 명예, 성, 물질에 대해 늘 굶주림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우상으로 섬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배고픔이 무엇에 대한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마 5: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라고 하셨다. 진정한 존재의 굶주림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만족시킬 수 있는 참된 양식은 바로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도에서 물질에 대한 욕구로부터 자유함과 절제함을 배워 가야 한다.
우리에게
이 양식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없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풍족한 양식을 구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무시한 채 양식만을 추구하는 일이 얼마나 인간을 타락시키고 있는지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한 인격이다. 그 하나님의 형상의 모든 인류인 ‘우리’를 위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되어 있다.
우리들 주위에 일용할 양식이 없어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병이 들었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있는 사람들, 먹을 것이 없어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영혼의 고갈 가운데 있는 이웃들, 불의한 사회 구조와 시스템 가운데 불이익을 당하고 억울해서 울고 있는 이웃들....이들은 모두 양식이 필요한 사람들이다.5)
이 일용할 양식이 정당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권력 구조가 있고 정치 구조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지도자들이 있다. 이번 선거를 위해 우리가 기도할 때 주기도문의 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를 생각하면서 기도하였음 좋겠다.
또한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내가 내 힘으로 벌어서 먹고 살아가는 자력인생이 아니라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여야만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신앙고백의 기도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 40대 남자 사망률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높다고 하는데, 아마도 죽어라 일하니깐 죽는게 아닌가? 궁극적으로 일이 자기를 구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을 죽도록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의 열매로 얻게 되는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러한가? 기억하자.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자.
하인리히 뵐(Heinlich Boll)의 ‘젊은 날의 빵’
하인리히 뵐이라는 독일의 유명한 소설가가 있다. 그는 노벨상을 받기도 한 작가이다. 그가 쓴 ‘젊은 날의 빵’이라는 책에 이런 짧은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어떤 독일 사람이 스페인에 관광을 갔다. 북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일조량이 적기 때문에 여름이면 지중해 연안으로 휴가 가는 것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1년 내내 기다리는 목표일 정도다. 독일 사람들에게 무엇을 위해 1년 내내 열심히 일하는가 물어 보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로 휴가를 가기 위해서 일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 독일 관광객이 일년 내내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모아 스페인으로 휴가를 갔다. 그 아름다운 바닷가에 허름한 차림의 어부가 테가 큰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배 위에서 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이 관광객은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넓은 백사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는 그 뱃사람에게 가서 물었다.
“고기는 많이 잡았소?”
“고기를 많이 잡았소.”
“얼마나 잡았소?”
“대구 여섯 마리 잡고 고등어 이십여 마리 잡았소.”
“열 시도 안 되었는데 그렇게 많이 잡았소?”
“그렇소.”
“아, 그럼 또 가서 열심히 잡지 않고 왜 이렇게 쉬고 있소? 오늘 하루 종일 적어도 서너 배는 더 잡을 것 아니겠소. 그러면 곧 얼마 안 되어 당신은 아마 훈제 공장도 차릴 수 있고 회사도 차릴 수 있을 거요.”
“그렇게 해서 훈제 공장을 차리고 유통 회사를 차리면 뭐합니까?”
그랬더니 이 관광객이 또 말한다.
“아 그렇게 되면 당신은 직원들에게 다 맡기고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와서 바다를 즐길 수 있지 않소!”
그러니까 이 어부가 이렇게 말했더란다.
“아, 이보시오.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데 당신 무슨 소리 하는 거요.”
이 이야기는 우리의 삶, 아담의 혈통을 따라 태어난 인간의 삶과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6) 날마다 내 일과 내 일의 열매가 우상화 되어서 죽어라 일해다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가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의 현실이 아니가? 그러기에 우리는 주기도문을 보면서 우리의 양식 보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이 먼저 앞서야 함을 주기도문의 순서를 통해 확인하였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음 구절이 모든 핵심을 담고 있기도 하다.
(마 6: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1) 양식 청원에 대한 마태복음판과 누가복음판의 본문이 서로 다르다.
마태복음판: ‘오늘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옵소서’-<주시다> 동사가 부정과거형(aorist).
누가복음판: <주시다> 동사가 ‘현재형’일 뿐 아니라 ‘오늘’이라는 말 보다는 ‘날마다’ 또는 ‘그날에 필요한’이라는 뜻의 ‘to; kaq! hJmevran: ’이라는 문구로 되어 있다. 이처럼 마태판과 누가판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to; kaq! hJmevran’은 누가가 즐겨 쓰는 표현 양식이다.
김세윤, 주기도문강해(서울: 두란노, 2003), 133.
2) '생존을 위한', 즉 '필요한' <마 6:11>형. oncoming;
1)(구에서 발견되는 단어)우리의 '일용할' 양식, '매일의' 충분한 빵
디럭스 바이블, 마 6:11 원어분해.
3)김세윤, 134-136.
4) 이채윤,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 록펠러(서울: 미래사, 2006), 44.
5) 임영수, 주기도문학교(서울: 홍성사, 2002), 65-74.
6) 김세윤, 149-151.
김세윤 박사는 여기의 글의 소제목을 ‘영성조차도 물질화되는 현실은 위기다’라고 달고 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 9-13절의 본문,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중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주제로 해석하고 설교한 내용을 함께 공유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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