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태복음 20장 1-16절의 본문을 바탕으로 '품삯은 주인의 뜻대로'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합니다. 하나님은 일꾼들을 부르실때 모두가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약속했으며,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을 제삼시(9시), 제육시(정오 12시), 제구시(오후 3시), 제십일시(오후 5시)로 각각 불러 포도원의 일을 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되면, 요즘 아르바이트가 시간당 9,000원이 넘으니깐 그 임금을 계산할 것이고, 전문직이면 더 하겠지요. 그러면 품삯이 얼마이기 때문에, 시간으로 따져 사람들에게 일한 삯을 줄 것입니다. 가장 일찍, 삼시(9시)에 온 일꾼들에게 가장 많은 삯을 주고, 마지막으로 온 제십일시(11시)에 온 친구들에겐 가장 작은 임금을 준다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이러한 보편적인 특성에 대해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임금을 어떻게 지불합니까?
다 똑같이 지불합니다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기 때문에, 한 데나리온씩 임금을 똑같이 지불했습니다. 이것은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만약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조합(노조) 같은 것이 그 당시에 만들어져 있었다면, 회사의 근무시간과 그에 따른 임금차이, 포도원의 임금을 차별지급하는 상황에 대해서 불평과 원망을 퍼부으면서 노골적으로 비판의 반기를 들 것입니다.\
극단적으로는,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래전에 상영된, 영화 ‘전태일’에서 전태일처럼, ‘근로자의 기본권’을 존중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노동자의 권리와 자격을 존중해달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몸을 불태우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초점은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통해서, 당시 사회의 정의 문제, 근로조건의 불평등에 대해 말씀하시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9시에 온 친구나 저녁 5시에 온 친구가 차별 없이 대우받는 것에 대한 분노하고 불평하는 심정으로 이 본문을 대해선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유는 그 비유로 말씀하시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오직 마태복음에서만 나타나는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나중 된’ 자가 어떻게 ‘먼저 된’자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써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비유의 요지가 하나님 나라에선 모든 사람이 비유에서 한 데나리온을 받은 것처럼 똑같은 상급을 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는 상급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19:27에서 다소 자기중심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이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님은 19장에서부터 제자들을 경고하기 위해서 먼저 된 사람과 나중 된 사람에 대해서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들려주신 것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이 예수님과 가까이 있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혜택을 받는 소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예수님의 덕을 좀 보면서 부유하고 유명해질 차례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오직 십자가만이 새겨져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 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참 뒤에 들어온 다른 사람도 그들과 똑같이 하루 일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주지하고 있습니다(‘한 데나리온’은 당시에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받는 하루 일당).
예수님은 포도원 주인의 입을 빌어 말씀하십니다.
15절입니다.
“내 것을 갖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그렇습니다.
“세상의 원리는 가장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 가장 많은 액수의 임금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공정한 처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상급과 능력의 원리는 이런 모든 것이 배제되며 오직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 의해 운영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Kistemaker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흥정하거나 비축해 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물질, 어떤 임금의 차이처럼 누구는 많이 가지고, 누구는 적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점은 우리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섬겨서 얻는 것은 결코 ‘일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계약하지 않으십니다. 계약이라면 더 나은 거래를 위해 협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시고 그 대신에 우리로부터 모든 것을 요구하시는 언약을 맺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노력했기 때문에 보상해 주시는 게 아니라, 자비가 넘치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벌레보다 못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합시다. 혹여나 우리가 사역을 하고 하나님의 일에 뭔가 기여한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따른 보상과 상급은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처럼 자신이 뭔가 특별대우받기를 원하는 것은 자격없이 구원받은 우리가 할 노릇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에 관여한다보면 어느덧 우리가 그런 대단한 교만에 휩싸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된 자이든, 먼저 된 자이든간에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하는 것에 우리의 관심을 쏟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할 때, 우리가 이러한 모든 영적 교만의 함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마태복음 20장 1-16절의 본문을 가지고 <품삯은 주인의 뜻대로>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살펴보았는데요. 하나님은 세상의 형평성의 원칙에 제한받지 않으시며 모든 일꾼에게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으며, 나중된 자가 먼저 된 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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