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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마태복음

마태복음 22장 23-33절 설교, 부활 신앙을 증명하라

by Message.K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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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23-33절의 본문을 바탕으로 <부활 신앙을 증명하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입니다. 기독교에서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과의 변론 장면에서 보여줍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느냐 마느냐?’라는 정치적인 질문을 통해 예수를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하였지만 실패로 끝이 났다. 이제 사두개인들이 종교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 달리 부활을 믿지 않았다(23절: 행 23:8-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그들은 모세오경의 권위만을 인정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부활에 관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부활의 교리에 대한 근거구절인 이사야 26:191)이나 다니엘 12:22)에 나타난 부활 사상이 후대에 모세의 입장을 왜곡한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신념에 기초하여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의 맹점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책략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들이 제기하는 질문의 출발점은 모세오경에 규정된 수혼법이다.

 

신 25:5-6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식이 없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형수와 결혼하여 자기 형의 대를 이어 주어야 한다”(신 25:5-6).

 

 

  사두개인들의 논리에 따르면, 만일 부활을 인정할 경우에는 이 율법에 따라 일곱 남편을 갖게 된 여인이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부활 교리가 갖고 있는 맹점을 지적하고자 한다(25-28절).

  사두개인의 이러한 그릇된 의도로 빚어진 질문을 예수님은 오히려 부활에 대한 적극적인 교훈의 기회로 삼으신다. 예수님은 우선적으로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부인하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고 지적하신다(29절).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이 성경으로 인정했던 모세오경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모세오경만이라도 잘 이해했다면 부활을 부정하지 않았을 것임을 31-32절에서 밝히실 것이다. 그들은 착각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질문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신다. 사두개인들은 부활 이후의 삶과 이 땅에서의 삶이 동일한 것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데 있다.

‘7명의 남편을 취한 그 아내는 부활 후에 일곱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부활 이후나 이 땅에서나 삶은 똑같다는 전제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다.

 

 

 

 하나님을 능력(29절)은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실 뿐 아니라 그 부활 이후의 삶의 형태를 완전히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 결과 부활 이후의 삶이 땅에서의 삶과 전혀 다른 측면으로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사두개인들은 부활 이후에도 결혼하고, 시집, 장가가고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부활 이후의 삶은 죽음이 없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더는 아이를 낳아서 번성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따라서 결혼의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 이후의 부부관계에 대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리는 그 관계가 이 땅에서의 관계보다 더 탁월해질 것이라는 예상을 해볼 순 있겠다. 30절에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로 말은 삶의 내용이 천사들과 같다는 말보다는, 다만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 관련해서만 한정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끝으로 사두개인들도 인정했던 모세오경에 나타난 부활 관련 성경 구절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부활교리에 대해 정확하게 꼬집어 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부활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는 성경으로 출애굽기 3:6을 제시하신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32절 상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호렙 산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그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신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음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었는데도 그들의 ‘하나님이었다’(과거형)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현재에도 살아 있음을 전제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신 것은 죽은 자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돌보심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땅에서 죽음으로써 그들의 존재가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당시에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입증해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으신 언약이 영원하다면(참조, 창 17:7), 그분은 영원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그들도 영원히 살 것임이 분명하다. 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까지도 모든 신자의 생명을 붙잡고 계시며 언젠가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그들을, 우리들을 부활시킬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 모두가 하나님이 만드실 새로운 세상을 누릴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역사하는 하나님을 모시고 영원토록 부활의 주인공으로 서길 소원한다!

 

 


1)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복음의 핵심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의 말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기독교의 핵심, 복음의 중심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예수가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일 수가 없죠. 그리고 그리스도에겐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반드시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에게 소망이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사소한 변론 속에서도 기독교의 교리, 부활관, 내세관이 들어 있는 이 대목이 너무나 고무적이라고 생각하는 1인 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2장 23-33절의 신약성경의 본문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부활이 없다고 이야기한 사두개인들을 향해 뼈 있는 말씀을 대응하신 <부활 신앙을 증명하라>는 주제로 포스팅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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