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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마태복음

마태복음 1장 18-25절, 요셉-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한 믿음의 사람

by Message.K 2023. 2. 12.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 18-25절을 바탕으로 한 <요셉: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한 믿음의 사람>이란 주제로 대학부를 대상으로 한 설교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피 한 방울 섟이지 않은 아들 예수이지만 그는 예수님의 육신의 아비였는데요.

  

 

 

 

배우 모건 프리먼이 의붓손녀와 결혼하다

언젠가 모건 프리먼이란 유명한 미국의 배우가 의붓손녀와 결혼한 사건으로 인해 굉장한 화제를 모았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밀하게 느껴지는 그 이미지의 흑인 배우가 의붓손녀와 결혼하다니! 정말 사람들은 은근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근데 2022 카타르월드컵 개막행사때 모건 프리먼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것도 좀 놀랬는데요). 또한 지금은 고인이 된 팝의 왕자, 마이클 잭슨에게 누가 친아버지냐는 친부 논쟁으로 고생했던 적이 있습니다. 화려한 팝가수의 정상에 서 있는 그 마이클 잭슨에게 친부 논쟁이 웬말입니까?

  

 

 

이것은 미국이란 나라, 다양한 혈통과 민족이 공존하는 세계 최고의 World power인 나라의 헐리우드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닌듯합니다. 오늘날의 가정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은 없습니까? TV코미디는 말 잘하고 약삭빠른 자녀들 앞에서 유약한 부모상을 잘도 그려냅니다. 신문은 살인, 강간, 마약 중독의 위협을 연일 대문짝만하게 보도합니다. 알코올 중독, 성폭력 등으로 인한 가정의 파괴는 이제 남의 나라의 일만은 아니며, 이들을 돕기 위한 사회 운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도움의 손길은 너무나 미미한 편입니다.

 

 

 

 

반윤리적, 비윤리적인들이 비일비재한 현대

오늘날은 반윤리적, 비윤리적인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는 시대입니다.

언젠가 신문을 보니, 오늘날의 한국사회의 남녀의 결혼관이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 남녀가 결혼하지 않고도 같이 살 수 있다는 답은 45.9%나 됐다. 남자(49.1%)가 여자(42.8%)보다, 연령대별로는 20대(61.1%)와 30대(61.7%)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답도 22.4%나 됐다. 이런 반응은 30대(32.1%)와 20대(28.1%)에서 30% 안팎에 달했다.

 

 

 

계약결혼의 시초,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드 드 보봐르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시몬느 드 보봐르와 계약결혼을 한다는 생각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생각에 대해 경악과 쇼킹을 보냈습니다만, 포스트모더니즘이 점차 우리 삶 가운데 번지면서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동거가 가능하게 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계약결혼, 계약동거가 20세기가 드러났다는 것은 장 폴 사르트르가 앞서갔다는 진단도 할 수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신앙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발상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실존주의 철학자가 죽었을 때 조문객이 무려 5만명이 몰렸다는 것이 또 하나 대단한 뉴스입니다. 그 사상가가 무엇이기에 5만명? 그가 대통령도 아닌데! -노무현 대통령 조문객 수와 비교!

[노무현 前 대통령 국민장] 조문객 500만명, 장의위원 1383명, 만장 2000여개

 

 

 

 

인기가 진리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구원받지 않은 인물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인기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습니다.

한때 싸이(PSY)도 그렇습니다. ‘강남스타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 인물! 이제는 BTS가, 10대의 여성 아이돌 그룹 뉴진스가 그 뒤를 이어 스포티파이 2억뷰를 돌파했다고 하는데요. 

인기가 진리인 듯 대두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기는 진리가 아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혼전 순결에 대해서 사람들은 진리, 비진리의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혼전 순결이 인기는 없습니다. 그것이 고리타분해 보이는 이를테면, 민속촌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혼전순결은 인기없는 종목, 그러나 인기가 진리는 아니다

 혼전 순결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의 천연기념물처럼 취급받고, 오히려 그런 이야기하면 ‘골동품’취급받는, Absolutely절대보수의 세력으로 취급받는 시대가 바로 오늘입니다. 계약동거, 계약결혼이 만연하고, 텔레비전에서는 한때 ‘우리 결혼했어요!’가 절찬리에 방영되었고, 지금은 동거에 대한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네요. 저는 예전에 그 프로그램이 처음 나올 때, 이 사람들 진짜 결혼하는건가?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을 가지고 장난치고 그런게 저는 상상을 못했답니다. 결혼은 신성한 것인데, 그 프로그램은 결혼은 하나의 오락물로 취급하면서, 결혼에 대한 신성함과 무게감을 떨구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녀가 만나 그 프로그램을 찍고 후에는 바이바이하는 그것이 이 여자랑 만나 결혼했다가 헤어지고, 다시 다른 여자랑, 다른 남자랑 만나 결혼하고 그런 스토리가 젊은 사람들에게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나 생각들을 가볍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이젠 그 프로그램을 한번씩 보다 보다 이젠 그게 연예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사랑하는 대학부 여러분, 인기있다고 거기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인기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한 사이

 요즘같으면 어떻게 보면 쉽게 이해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있는 상황이 예수님 태어날 당시에 발발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라는 여자와 요셉이란 남자가 약혼을 한 상태였는데, 성경에 나타나는 ‘정혼’(므네스튜에인)은 유대인 사회에서 결혼에 앞서 1년 정도 유지되던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 정혼은 오늘날 약혼보다 훨씬 더 강한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남녀가 정혼을 하게 되면, 그 둘은 법적으로 부부가 됩니다. 남자와 여자는 각각 서로 남편과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혼할 때까지 함께 살지 않았으며, 따라서 육체적 관계도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 정혼 관계는 오로지 이혼이나 죽음에 의해서만 종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정혼 기간 중에 여자가 부정한 것이 드러나면, 구약시대에는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었지만(참조. 신 22:20-21), 신약 시대에는 이혼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규범들은 마리아가 처하게 된 상황과 요셉이 직면하게 된 문제를 적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혼전 임신의 마리아

결혼하기 전에 약혼녀가 임신을 했다, 그런데 약혼녀가 임신한 애가 내 애가 아니다? 그럼 보편적인 룰에 의하면 뻔한 스토리가 나옵니다! 당장 헤어지고 파혼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이 약혼 기간에 부딪혔던 어려움은 나와 관계없는 약혼녀의 혼전 임신, 미혼모의 상황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속도위반에 발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1세기 율법시대의 상황에 ‘혼전임신’이라니! 이런 발칙한 상상력을 발휘한 마태복음 기자가 너무나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것은 상상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실을 기술한 책이기에 현실reality인 것입니다. 요셉이 얼마나 힘겨웠을까요? 약혼녀의 임신? 보통 보편적인 남자라면 자기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상대방의 범죄와 죄를 들추고 폭로하면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합니다. 요즈음은 목소리가 작으면 집니다. 자기 밥그릇을 자기가 챙겨야지 다른 사람이 챙겨주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임신 사태에 반응하는 요셉: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은 큰 소리로 호들갑 떨지 않았습니다.

19절에 보면, ‘이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라고 나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약혼녀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고 그냥 물러서는 것을 택했습니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마리아와 이혼해야만 하는 법적인 상황에 봉착한 요셉! 그러나 마리아의 수치가 만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두 증인 앞에서만 가만히 이혼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성품으로 인해 이 사건을 지혜롭게 해결하였습니다. 오히려 발설하고 폭로했다면 메시야탄생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는 그런 감당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의 의로운 성품과 인격은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는 데 더 박차를 가하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대학부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여러분의 성품으로 인해 공동체가 더욱 행복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성품과 인격과 은사로 인해서 우리 헷시바가 더욱 풍성해지고 있습니까? 말할 것 다 하고, 폭로할 것 다 폭로하고, 사람들의 신상과 일상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다 이야기하면서 가십거리를 만드는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가 없습니다. 입술의 할례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입술만 잘 놀려도 본전치기는 합니다. 입을 잘 못 놀림으로 인해서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불평의 말과 갈등이 만들어낸 교회 이름: 왼발 침례 교회

테네시주의 어느작은 마을에 ‘왼발 침례 교회’(left oot baptist Church)라는 예배당이 있다고 합니다. 그 곁을 지나던 어떤 학생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교회 이름이 하도 우스워서 계속 낄낄대며 웃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학생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 마을의 어떤 사람에게 교회 이름이 저렇게 된 데에 도대체 어떤 배경이나 사연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마을 사람은 수년전 그 마을 교회에서 발 씻기는 의식을 놓고 논쟁이 붙었고 그 결과 교회가 분열되었다고 합니다. 세족식에서 어느 발은 먼저 씻겨야 하는가에 대해 왼발이 먼저다, 아니 오른발이 먼저다 의견이 나뉘어서 결국 왼발을 먼저 씻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만 모여서 교회를 세워 이름을 ‘왼발 침례교회’라고 했다고 합니다.

 

불평과 불만, 서로의 갈등을 제대로 해소시키지 못하고 연합시키지 못하니 이런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정말 웃지도 못할 이야기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도대체 무어라고 비아냥거려도 할 말을 없는 처지일 것입니다. 교회가 비본질적인 일에 서로의 주장을 내세울 때 거기에 사탄이 틈타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일을 제외하고, 비본질적인 일에는 서로에게 양보하고 이해하고 양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요셉의 사건에 대한 처후: 침묵

요셉은 마리아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그녀를 단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조용히 침묵했습니다.

물론, 요셉의 마음도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 결혼이 요셉과 마리아가 연애 몇 년차라고 할 정도의 연애결혼이 아니라서 덜 괴로웠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과정 가운데 이 상황을 생각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20절 이 일을 생각할 때에But after he had considered this... 요셉이 심사숙고하면서 고민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아마도 내성적인 A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리아에게 왜 그런 얼토당토아니한 ‘혼전임신’, ‘미혼모’의 사태가 발생했을까요?

 

 

 

 

 

침묵하는 요셉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Message

하나님께서 주의 사자/메신저를 보내셔서 계시를 주십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내용은 ‘예수님은 성령으로 탄생하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남녀의 사랑으로 결실은 맺은 경우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는 것! 주의 사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은, 요셉이 남편과 아버지 역할을 감당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었겠습니까? 아마도 아내를 보호해줘야 하는 책임과 태아를 책임지고 거둬야 할 순종의 사명을 느낀 것입니다.

 

 

21-23절까지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입니다. 같이 한 번 읽을까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요셉은 이 사건을 하나님의 말씀, 약속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이 사건을 수용했습니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장래와 자기의 가정, 자손, 약혼녀, 자녀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말씀, 주의 사자, 꿈의 계시’라는 그 매개체를 통해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책임감을 느끼고 24절에 보면 어떤 행동을 취합니까?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말씀을 들은 요셉의 반응: 순종

약혼녀를 데리고 왔습니다. 주의 사자의 메시지에 따라서 분부대로, 명령받은대로 순종하여 아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행동을 합니까? 결혼을 했는데, 부부관계를 보류합니다.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물론 요셉이 주의 사자가 메시지를 주는 장면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신비스런 광경일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강렬한 영적인 임팩트impact가 있었을 것입니다. 전율과 경이가 감도는 그런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 메시야의 탄생의 부모로 설정된 마리아! 특별히 아버지로 선택된 요셉에겐 인류의 그 어떤 사람이 할 수 없었던 역할을 감당할 책임과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셉은 개인적인 판단과 생각 보다는 이성적인 하나님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은혜였습니다.

 

 

 

사랑하는 대학부 지체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주일날 한번 잠깐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말씀입니까? 주일날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언어목록입니까? 요셉은 자신이 감내해야 할 모든 감정적, 심리적, 영적, 문화적, 총체적인 댓가를 말씀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 때문에 지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포기하거나 지불한 것은 무엇입니까? 링컨은 No Bible, No Breakfast!라고 외치며 성경읽기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여러분이 놓아둔, 따라 구별해놓은 우선순위는 무엇이 있습니까?

 

 

 

 

 

태어난 아기의 이름은 예수

 태어난 아기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의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해서 도저히 우리 인간과 함께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 성경을 번역하거나 성경을 읽던 유대인들이나 율법학자들은 하나님과 관련된 단어, ‘아도나이, 엘로힘, 엘’...등의 단어가 나오면 목욕을 다시 재개하고 와서 글을 적거나 읽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함께 할 수 없는, 함께 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상대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임마누엘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께서 친히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친히 자신을 낮추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기 위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버리신 것입니다. 그 버리심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이 가능한 것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 구원자, 임마누엘!

 

 

이번 성탄절은 무엇보다 예수님의 생일을 마음껏 축하하고 환영하는 분위기가 되었음 좋겠습니다.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는 다른 서구나라에선 가족적인 축제여서 가족끼리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핀란드란 나라에선 그 날 술도 마시는 것을 금지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가족들과 보내기 보다는 연인들끼리 보내는, 밤새면서 올나이트하고, 젊은이들은 부어라 마셔라 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이 어떻다하더라도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마음껏 노래하고 그분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간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이 가능했던 것은 요셉의 순종에 있었다

특별히 한 사람, 요셉을 준비하심으로 말미암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을 펼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요셉이 자신에게 닥친 이 위기로 인해 완전히 판을 뒤엎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을 실행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아기 예수에 대해 책임을 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그날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피 한 방울 섟이지 않은 아들 예수를 양육한 요셉의 순종과 헌신과 섬김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한 지금, 우리 헵시바의 모든 지체들이 요셉처럼 의롭고 경건하고 말씀에 의해 삶의 방향과 미래까지도 하나님께 맡길줄 아는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아들을 죄많은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고 부활케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합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예수의 육적 아버지로 세워진 요셉의 업적을 기념하며 요셉의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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