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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마가복음

마가복음 2장 1-12절, 당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켜라

by Message.K 2022. 3. 11.

마가복음 2:1-12의 본문을 가지고 <당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켜라>란 주제로 설교한 포스팅입니다. 부활주일예배설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불가능과 불능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무수한 불능을 느낍니다.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었습니다. 그것도 만땅으로 넣었습니다. 이제 카드를 내밉니다. 그런데 웬걸 카드가 불능입니다. 한도가 넘어버렸습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불능의 비극을 경험합니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내밉니다. 그러자 점원이 이야기합니다. 여기 이렇게 많은 신분증이 있는데, 이 사람들 다 아직도 기름값 안내고 찾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역사는 그런 불능과 불가능의 연속입니다. 총각때 10여년전 창원에서 사역할 당시의 저의 경험입니다.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였습니다. 나는 내 주머니에 돈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카드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밥값이 없었습니다. 금식 아닌 굶식을 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굶주림을 경험해야 진정한 갈망이 싹을 틔위고 나오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족함과 결핍됨을 체험해봐야 진정한 목마름이 용솟음 쳐 올라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많은 위기의 불가능과, 불가능과 불능의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됩니다. 취업준비를 나름대로 열심히 해도 정말 만족할만한 직장에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부모님은 늘 다투십니다. 회복의 기미가 없습니다. 가정의 경제상황은 점점 더 내 숨통을 죄어옵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가 힘듭니다. 자격증을 땄지만, 직장 자리(티오)가 없습니다. 어찌해야할지 불가능, 위기일 뿐입니다.

 

 

 

언젠가 심리테스트 같은 걸 했습니다. 그때 그런 상황설명이 있었습니다. 아기가 울고 있습니다. 밖에서 손님이 찾아와 벨을 계속 누르며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가스렌지 위에는 물이 펄펄 끓어 넘치고 있습니다. 기타 등등의 복잡한 상황이 연출될 때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갈릴리에 나타나서 가버나움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싶어서 모은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모여들었습니다. 그 사람 주위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들이 치유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생이 변화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네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중풍병자의 친구였던지 아니면 지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중풍병자의 영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중풍병자에 대한 시선은 아마도 자신의 죄든지 아니면 가족들의 물려받은 죄로 인해 중풍병자가 되었다는 사회적인 편견과 선입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불편한 진실, 진리가 진리 아닌 시대에, 환자에 대한, 장애우에 대한, 병자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있는 가운데 그 환자를 데리고 예수님께 나왔다는 것은 아마도 그 영혼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우리도 시도해보자해서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2절에 뭐라고 나옵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문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는 불가능의 현실에 봉착합니다. 네 사람이 그 중풍병자를 데리고 나오는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는데, 문제는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대학부 여러분!

여러분이 용기를 내어 하나님 앞에, 세상 앞에 무언가를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아직도, 가정은 아직도, 내 마음은 아직도 열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어떻게 낸 용기인데, 그 용기의 지름을 다 깎아버릴 정도로 현실은 냉혹한 것입니다. 내가 내밀었던 용기를 다시 접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야하겠습니까? 아니면 더 기다려야겠습니까? 밤이 새도록 기다려야겠습니까?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늘 불가능의 걸림돌이 존재한다.

불가능과 불능의 장애물이 우리 앞에 가로 막고 있습니다. 그것이 경제적인 것이든, 건강의 문제이든, 가족간의 갈등과 아픔과 상처의 문제이든, 관계의 문제이든, 개인적인 콤플렉스와 치유되지 못한 쓴 뿌리이든,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데, 거기에는 무수한 방애물이 마치 이스라엘 백성 앞에 막았던 홍해바다처럼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습니까? 중풍병자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갔는데, 문제는 예수님께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에겐 믿음이 있었습니다!

 

 

 

5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들에겐, 네 사람에게 믿음이 있었습니다’그들의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데는 문제와 장애물과 방해자들과 절벽과 낭떠러지가 놓여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뭔가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나가고야 말겠다는 믿음의 의지, 용기의 결단, 단호함의 행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취한 조치는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2: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그들은 지붕을 뜯었습니다. 그리고 구멍을 내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붕같으면 난리 나겠죠? 드릴이나 아님 공구로, 망치로 두들겨야 해결되겠죠. 하지만, 이스라엘의 지붕은 우리나라 지붕과는 구조가 달랐던 것입니다. 지붕을 이용했습니다. 그런 행동은 보통 잘 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었기에, 용기가 있었기에, 그들은 지붕위로 가서 지붕을 뜯고, 무례함을 무릅쓰고, 구멍을 내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해가면서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신비스런 구석이 있습니다. 믿음은 기발한 행동과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그것이 보편적인 생각을 넘었지만, 그 평범함을 초월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믿음에서 나왔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5: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거기서, 주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5절에 선포하십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죄사함의 권세로 그 중풍병자를 치유하셨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주일에 웬 중풍병자 설교?

여러분,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우리가 부활주일을 맞이해 우리가 다시 회복시켜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십시오. 우리의 삶이 찌질하기에 우리의 믿음도 찌질하고 삶도 찌질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조차 찌질하지는 않습니다. 육신은 찌질하고 육체는 후패하고 썩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되신 부활이요, 길이요 진리이신 주님은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당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능력 그 자체이십니다.

 

 

 

 

대한민국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40%가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20-60대 사이의 사람들이 응답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나의 조건과 상황과 현실과 환경을 볼 때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 내리고 그렇게 어두움과 비극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더블린의 사람들>에 보면 더블린의 사람들은 마비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paralysis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마비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행복이 뭔지도 모르고 마비된 채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죄가 그들을 그렇게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죄의 삯의 사망입니다.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내리누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중풍병자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사 교회를 왔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교회사람들의 너무 이기적이라서, 서로 너무 끼리끼리 놀아서,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어렵거나 열정이 없거나 마음에 다가오지 않아서, 한국교회가 완전히 무너졌기에 더 이상 교회를 찾기를 포기합니다. 마치 2절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4절에 ‘무리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절망한채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현실입니다.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내 취업을 어찌할 수 없고, 내 가정을 어찌 할 수 없기에 나는 다시 세상을 향해 간다. 교회가, 예수가 내게 무엇을 해 주었는가?

 

 

 

 

사랑하는 대학부. 청년회 여러분!

부활주일에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편견과 상처와 고민과 문제와 장래의 일과 가정사로 인해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는 모든 어둠의 권세, 사망의 권세, 불가능의 권세, 불능의 권세 앞에 지붕을 뜯고 구멍을 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역사하시기 위해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믿음이 역사하길 원합니다. 나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여기신 하나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그 절박한 선지자의 고백의 나의 고백입니다. 내 안에 있는 지붕, 우리 가정을 둘러싼 지붕, 어둠의 권세로 점철된 내 과거에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가기 위해 부활의 주님을 만나 나도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 당신 안에 무덤에 갇힌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청춘 안에 무덤에 머무른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십시오!

 

 

 

 

 

또 하나 더 제안하고픈 것은

바로 당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그들 안에, 그 네 사람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중풍병자를 한 사람이 데리고 왔다면 다시 돌아갔을지도, 아니면 아예 예수님 앞에 얼쩡거리지도 못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네 사람이 그들의 믿음의 동력이 되고, 원인이 되어 그리스도께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대학부가, 우리 청년회가 바로 그 네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네 사람의 그들의 믿음의 주인공이 우리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입니다. 우리 공동체의 믿음으로 우리는 중풍병자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된 믿음, 우리 안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충성과 믿음이 중풍병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죄에서 해방시키고, 질병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하며, 세상의 저주에서 자유할 수 있으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부활할 수 있습니다. 새가족축제는 우리 혼자서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네 사람이 마음을 모아, 믿음과 힘을 모아 용기를 모아 예수님께 중풍병자를 데리고 나간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위에 있는 믿지 않는 영혼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 교회 청춘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은 죄사함의 권세, 치유의 권능을 베푸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적 후배 여러분!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십시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십시오.

그 부활의 주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새롭게 설계해 주실 것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이 우리 주위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중풍병자처럼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이 포기한 인생들을 살리게 하실 것입니다. 마른뼈가 소생케되는 역사가 우리가 믿는 부활의 주님으로 인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대학부. 청년회 여러분!

당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십시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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