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디모데후서 4:9-13을 텍스트로 하여 <바울의 고독>이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이다.
바울의 고독(孤獨)
[딤후 4:9-딤후 4:13]
(9)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10)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11)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12)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13)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바울은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복음사역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하나님을 성심성의껏 섬겼다. 그러한 바울에게 고독감이 찾아 왔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그를 찾아왔다. 바울이 뒤늦게 향수에 빠졌는가? 인생의 말년에 바울이 웬 감수성의 조각을 찾느냐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알다 싶이 바울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학자스타일의 사람이었다. 그에게도 가을이 찾아와 낙엽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면서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뭐 이렇게 시를 읊조리는 것이 아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기술한 바울, 그 치밀하디 치밀한 성격의 바울이 감수성이 갑자기 불거져서 고독감이 몰려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외로움이 왜 찾아왔는가? 그것은 바로 바울의 생이 다할 날이 오기 때문이다. 인생의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V.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the time has come for my departure
v.21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이제 바울도 떠날 날depature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갈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감지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의 육신적인 종말을 의미한다. 죽기 전에 자신의 사랑하는 디모데를 보기를 원했다. 1:2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무어라 부르는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라고 부른다. 바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결혼치 않았기 때문에. 바울에게는 여러 동역자가 있었지만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를만한 자는 디모데밖에 없었다. 부모님이나 돌아가시거나 아니면 장례식이 되면 자식이 가장 먼저 그 자릴 지켜야한다. 부모님이 병환중이거나 상중인데 자식이 그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잘못된 일이고 불효이고 사람들에게 욕먹을 짓이다. 디모데는 바울이 입양한 자식이나 다름없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더욱 디모데를 보고자하는, 옆에 두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V.9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단순히 빨리 오라는 말이 아니라 무언가 조급하고 조바심을 내면서 디모데를 재촉하고 있다. 바울이 이 편지를 보낸 때는 여름이었다. 겨울에는 바다 항해가 금지되어 있었다. 요즘 같으면 비행기를 타고 가면 금방 갈 수 있겠지만 그 당시의 교통편은 육로 아니면 해로뿐이었다. 육로보다 조금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이 뱃길인데 그게 막히면 바울이 디모데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좁아지는 것이다.
11월 10일-3월 10일/항해는 완전히 중단.
9월 15일-11월 1일, 3월 11일-5월 26일/역시 위험한 기간.
그래서 디모데는 겨울에 에베소에서 항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바울이 기대하는 듯이 보이는 것처럼(4:13)그가 육로 헬라 북쪽 길을 이용한다 해도 여전히 아드리아해를 가로질러 항해해야 했는데, 그 길은 막혀 있었다. 디모데는 지체한다면 봄이 될 때까지 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그 때까지 살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울은 이 편지를 여름에 두기고 편에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디모데는 신변을 잘 정리하고 올 시간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바울은 어쨌든지 간에 디모데를 보고 싶어 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친구들과 제자들이 옆에 지키고 있는 가운데 독배를 마셨다. 죽음이 다가올 시기에는 가장 자기와 가까운 이를 옆에 두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이다.
바울은 그토록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역을 했지만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옆에 두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기를 원했고 마가도 보기를 원했다. 누가가 자신과 함께 있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데마는 사역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등지고 떠났다는 데서 아쉬움을 남기고 그레스게와 디도는 사역에 열심을 내고 있고 두기고-편지를 전하는 자였다-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열심을 내고 있다는 것은 바울에게 있어 많은 힘을 실어주었을 것이다.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제껏 달려온 그 길the way에 대한 남다른 감회가 그에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바울에게는 인간적인 그러한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시기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고픈 그러한 마음이다. 여러분들도 드라마 같은 데서 보았을 것이다. 너무 힘들게 사랑하거나 이별한 연인이나 부부는 죽어서라도 무덤 옆에 묻히고자 하는 그러한 것을 말이다. 바울에게는 사랑하는 동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생을 마감하고자 했을 것이다. 비록 누가-He is a doctor...-가 옆에 있었지만.
바울은 디모데에게 올 때 두 가지를 부탁한다.
첫째는,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이다. cloak
여기서의 겉옷은 머리를 내미는 구멍이 있는 담요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걸치기가 아주 쉬웠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춥거나 비가 오는 날씨에만 유용했다. 바울은 따뜻해지기 시작했을 때 드로아에 놔두고 왔다. 이제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은 추위를 느꼈고 디모데가 도착한 직후에 겨울이 다가올 것을 예상하고 있다(참고 4:21)
이것은 아마도 바울의 육신적인 위로를 줄 수 있는 의복이었다.
둘째는,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책이다. my scrolls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대중화된 책의 형태였다. 그것들은 원래는 공책, 회계 원장 그리고 비문서적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재빨리 성경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성경 공부를 위한 공책에 염두해 두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책들’은 이 시기에 가장 흔한 형태의 문서인 파피루스 두루마리일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임종을 앞두고, 감옥 안에서 더 하나님의 말씀에 매진하고자 자신의 ‘성경’, ‘성경공부를 위한 공책’을 디모데에게 부탁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의 영적인 위로를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문서였다.
바울이 홀로된다는 것, 그 외로움과 고독감을 사이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자 했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으므로....그리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좀 더 연구하고자, 비록 감옥에 있지만 좀 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하여지기를 기도하였다. 죽음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올 여름 방학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 돌아보기를 바란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한 그 모든 삶들을 보면서 후회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늘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그가 종말을 맞이하면서 더 하나님께 매달리고자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여러분이 외롭고 힘들고 고독할 때 사랑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지...바울은 'my scroll'이라고 했다. 아마도 자신이 자주 사용하던 성경공부책자이거나 공책이거나 성경에 관련된 어떤 문서 일 것이다. 바울의 감옥에서의 월동준비는 <하나님의 말씀과 겉옷>이었다.
여러분의 월하준비는 무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우리 곁에 더 가까이 계시는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보는 남은 방학기간이 되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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