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가운데 바울이 기록한 성경이 많습니다. 그중에 목회서신으로 분류되는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에 대한 개괄적인 이야기를 포스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목회서신the pastoral letters에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디모데전후서 및 디도서 개괄하기Overview
디모데가 목회사역을 했던 지역은 에베소이다. 에베소는 소아시로 통하는 주요항구 도시 중의 하나로 활발한 상업 중심지였다. 그러나, 다른 성경학자들은 바울 당시 에베소는 그 항구에 배가 다닐 수 없게 되면서 무역의 중심지의 위치를 상실했다고도 한다. 또한 군 조직 없이도 교역으로 주어지는 이익을 통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에베소는 대략 35만 명의 사람들로 붐비는 거주지이기도 했다.
에베소의 경제를 주도하는 아데미 신전
당시 ‘에베소 사람들의 여신’인 아데미(Artemis, 아르테미스)신전은 에베소의 경제를 주도하고 있었다. ‘고대 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인 이 신전은 견고한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로서 이집트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이었다.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가 큰 신전이라고 한다. 에베소의 무역업이 사양길에 들어섰을 때, 그 때로부터, 아데미 숭배가 그 도시의 경제적 생존 수단이 되었다. 아데미와 관련된 관광객과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역으로 에베소의 많은 주민들이 부자가 되었다. 은장색들은 아데미 여신상과 그 신전 모형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아데미 신전을 보기 위해 아주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는 수많은 숭배자들로 인하여 여관과 식당 주인들은 부유해졌다. 심지어는 신전의 회계가 은행 역할을 수행하여, 왕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거액의 돈을 대출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데미가 성(性)의 후원자였으므로, 창녀들은 마블가(Marble Road)의 이층 창기 집에서 아무런 정죄감 없이 몸을 팔았다.
마술과 요술에 의존하는 성향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아데미 숭배 외에도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마술과 요술을 부렸으며 그 내용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후에 에베시아 그라마타(Ephesia grammata)라 일컫어졌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에베소로 보내 거기서 살게 하시고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한 교회를 불러내셔서, 이 도시의 마술적 흑암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셨다(프리셉트 성경,309-3).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복음을 전한 곳이기도 하다.
로마 동쪽의 가장 큰 은행, 에베소
동시에 로마의 동쪽 지역에서 가장 큰 ‘은행’이기도 했다. 철학자이자 로마에서 가장 유명했던 변호사, 키케로-그의 말발과 언변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뿐만 아니라 암살공모자들에 의해 칼에 찔려 죽고 난 후 키케로의 연설과 변호로 말미암아 오히려 카이사르의 암살은 애국적인 처사에 우러나온 것이라고 로마인들이 속아 넘어갈 정도였다-가 에베소에 있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의 설교릍 통해 신전 경제에 의존하고 있던 상업 조합에 큰 소동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아데미 여신은 유방이 37개나 되는 풍요의 여신으로 지속적인 변화로부터 번영을 추구한다는 것을 상징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변화가 실제로 에베소에 일어났다.
다양한 문화의 충돌의 현장 에베소, 그리고 스포츠
에베소에서는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뒤섟여 충돌했다. 에베소는 헬라의 유산을 이어받았지만, 로마인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밀어닥치고 있었다.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작은 공동체들은 물론이고, 커다란 유대 공동체 역시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다. 모든 사람들이 경제 활동을 추구하는 중에 서로 다른 종교, 철학, 윤리 들이 충돌했다.
스포츠는 주요한 오락 중에 하나였다. 그리스 사람들은 운동 경기를 위해 두 개의 체육관을 지었고 로마인들 역시 검객들의 싸움을 위해 경기장을 건설했다. 2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극적인 폭력을 추구하는 로마적 경향이 단순한 경쟁을 추구하는 그리스적 경향을 압도했다(참조, 2:5 운동선수의 예).
빠질 수 없는 윤락사업
윤락 역시 중요한 사업이었다. 다양한 성 행위를 묘사하는 그림이 큰 건물의 담벼락을 장식하고 있었으며, 수간獸姦과 동성 연애가 보편적이었다. 로마인들은 고대의 위락 시설과 같은 목욕탕을 건설했는데, 여기에서는 상류 계급 사람들이 남녀를 막론하고 벌거벗고 목욕을 즐겼다. 매춘, 이혼, 이중 결혼, 어린이 유기, 연장자를 무시하는 풍조 등이 보편적이었다. 성에 대한 종교적인 태도들은 도착적인 성 행위를 장려하는 것에서부터 성 해위 일체를 죄악시하는 경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3장의 거짓교사의 성적 타락과 윤리적인 부패, 2:22의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
잡탕 종교의 온상지
종교적으로 우세했던 아데미 여신의 그늘 아래서 혼란스러울 정도로 종교가 서로 혼합되었다. 유대 공동체 역시 그러한 것들과 공존해야 했다. 소수 민족 집단들도 고유한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나 주도권을 쥐고자 하지는 않았다. 로마인들은 아데미 여신의 이름을 다이아나(Diana)로 개칭할 것을 주장했으며, 그리스인들이 신비한 체험과 신들의 이름이 ‘제일원인’(One Prime mover, 만물의 생성 원인인 신에 대한 철학적 명칭)의 다양항 명칭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해 논쟁을 일삼고 있다고 보았다.
공적인 자리에선 아데미 여신, 사적인 자리에선 마법
공적인 자리에서는 아데미 여신이 통치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개인 생활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마법’(magic)이었고, 이것은 모든 공적인 종교에 침투해 들어왔다. 이에 관한 두드러진 예로 행 19:13-17의 사건을 들 수 있는데, 이 사건에는 유대 대제사장의 가족까지 포함되어 있다. 에베소인들의 상업 정신은 마법 세계에서의 그들의 영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마법은 로마 세계 전체를 통해 유명해졌다.
에베소를 바울이 복음선포의 중심지로 접근하다
바울은 에베소가 복음을 선포해야 할 중요한 지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두 번째 선교 여행에서 에베소에 있는 동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세 번째 전도 여행에서는 꼬박 2년 동안 전도하고 그리스도인 지도자를 키우는 일에 전력하였다. 기독교 신앙은 널리 전파되었으며 그로 인해 마법 상인과 신전 경제는 급작스럽게 무너져 버렸다.
그러나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바울의 고별 설교는 그가 기독 공동체에 대한 이방 종교의 반격에 대비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심지어 회심자 중 몇 사람이 기독교 ‘지도자’로 가장하여, 성경과 복음 그리고 신비한 가르침이 뒤섞인 그들의 가르침으로 추종자들에게 여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언했다. 바울은 영적 권위가 결정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실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저술할 때의 상황은 이러했다.
바울에게서 디모데에게 리더십을 이양하다
바울은 소아시에서 가장 전략적인 가치가 있는 에베소 교회의 지도력을 총명하고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인 디모데에게 넘겨주었다. 그 당시 디모데는 40세였는데, 그러한 지도력을 전수받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였다. 거짓 가르침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참고, 행 20:20),
(행 20:20)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직접 편지를 쓰지 못하고 자신이 신뢰하는 디모데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디모데의 사역은 거짓 가르침으로 인해 일어난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고, 그는 유능한 교사였던 것 같다.
히 13:23에는 디모데가 결국 믿음 때문에 얼마 동안 투옥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디모데가 결국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편지들이 쓰여진 후 얼마 되지 않아 요한이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히 13:23)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저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바울의 목회적 염려와 관심이 서신으로 드러나
바울의 전도여행 대략 48-56년경 이뤄짐, 56-60년경 바울은 로마의 법정들을 거치면서 거의 로마에 이르른다.
61-62년경, 약 2년동안 로마의 감옥에 갇힌 바울, 이 기간이 끝나갈 무렵 그는 석방된 것으로 추정된다.
62-67년 동안 바울은 다소간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디모데는 에베소에, 디도는 그레데에 머물게 되었고, 그 결과로 그들에게 각기 서신을 보냈다.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의 연대는 대략 63-66년경, 그는 다시 체포되어 재차 투옥된 후에 디모데에게 두 번째 서신을 보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디모데후서’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최후의 서신인 디모데후서의 연대는 67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64년경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복음 사역을 위해 바울은 30여년 간 큰 희생을 하였다. 그의 몸에는 그리스도의 흔적(갈 6:17)이 있었다.
바울은 로마에서 2년 동안 셋집에 연금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굴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에베소 교회에 대해 염려하고 있었다. 그의 신실한 동역자, 디모데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그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의 방문이 지체될 가능성으로 인해 그는 편지를 썼던 것이다.
목회서신을 기록한 바울의 이유, 목적
전통에 의하면 이 서신이 기록된 이후 그리 오래지 않아 바울은 목베임을 당하였다. 딤후의 목적은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디모데를 격려하기 위함이다. 이 서신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핍박 속에서 믿음과 사역을 충실히 지킬 필요성에 관한 것이다.
오늘은 바울이 기록한 목회서신,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기록한 목적, 바울이 복음선포의 전략적인 중심지로 삼았던 에베소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들을 알아보았고 그 에베소에서 사역했던 디모데에 케어도 담고 있다는 개괄적인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설교 > 디모데전.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의 안내서 (0) | 2023.03.02 |
---|---|
디모데전서 4장 11-16절, 본이 되라 (1) | 2023.02.27 |
디모데후서 3장 14-17절, 성경 위에 비전을 세우라 (1) | 2023.02.23 |
디모데후서 4장 6-8절,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0) | 2023.02.22 |
디모데후서 4장7-8절, 데살로니가후서 2장15-17절, 나는 예수 따라가는 (1) | 2023.02.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