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디모데후서 3장 14-17절의 본문을 바탕으로 <성경 위에 비전을 세우라>란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신약성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성경을 사랑했던 존 워너메이커의 이야기도 해볼까 합니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영혼을 죽인다
행크 헤네그라프라는 작가는 매일 아침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날 스타벅스에서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을 보고 다가와 눈물을 글썽글썽한 채로 기독교 신앙이 진리라는 점을 다시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신앙의 뿌리가 깊지 못한 초신자였다. 그녀가 읽은 책은 한 때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바로‘다빈치코드’였다. 그 책이 많은 독자층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 책의 파급효과로 말미암아 많은 신자들의 믿음이 흔들렸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영혼을 파멸로 몰고 갈 수 있음을 기억하라!
한 권의 책
한 권의 책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대학시절에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고 지적인 방황은 한 적이 있다. 한 권의 책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기도 하지만,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기도 하고 방황케하기도 한다.
우리 교회의 표어는 무엇인가? ‘성숙과 미래가 있는 교회’이다. 매주 오후예배는 성숙과 미래 중에서 성숙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설교가 진행되고 있다. 저는 오늘 성숙 캠페인 가운데 특별히 ‘성경일독’ 즉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나눠보고자 한다.
성경은 어떤 책인가?
여러분, 성경이 어떤 책인지는 다 알고 계실 것이다. 누가 한 번 성경에 대해, 성경이 어떤 책인지 말 할 수 있는 사람 없는가?
우리 학생들 여러분, 전세계는 몇 개의 대양으로 나눕니까? 5대양, 몇 개의 대륙으로 분류되죠? 6대주이다. 성경은 6대주, 그중에서 세 개의 대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40여명의 저자들이 지었다. 그 40여명의 저자들은 다 학자가 아니고 어떤 사람은 농부출신 아모스, 어부출신 베드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학자출신의 바울, 나라의 고위관리였던 다니엘, 일개의 목동이었다가 천하를 호령하는 제왕이 된 다윗, 제사장이었다가 선지자로 탈바꿈한 예레미야, 세리였던 마태, 이집트의 왕자까지 올라갔다가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된 모세 등 다양한 사람들이 기록하였다. 그래서, 문체와 느낌이 성경마다 다 다르다. 히브리어, 헬라어(아람어도 포함)로 1500여년에 걸쳐서 굉장히 오랫동안 기록된 책이 바로 성경이다. 16절에 성경은 어떤 책이라고 하는가? ‘하나님의 감동을 되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숨을 쉰다는 헬라어의 의미가 바로‘영감(inspired)’이다. 영감은 바로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경이다.
한번 재밌게 읽는 소설은 다시 읽기 힘들다. 지루해서 힘들다. 문학평론가 아닌 다음에는 20대에 읽어도, 30대에도, 40대에 읽어도 다른 성경의 맛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그건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감동, 하나님의 영감으로 성경이 쓰여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성경의 맛이 늘 똑같다?
혹시나 여러분 중에서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늘 졸립고 피곤하고 똑같은 맛이라고 한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경이 인류의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가 된 것에는 분명한 원인과 이유가 있는데, 계속 똑같은 맛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텔레비전의 ‘달인’이란 프로그램을 보는데, 그날은 우동의 달인을 뽑는 날이었다. 전국의 3대 우동의 대가들을 보여주면서 우동의 달인을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근데 한 주방장이 자신의 우동의 맛의 비법을 소개하면서, 새벽5시에 일어나서 창고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서, 밀가루를 밟는데, 최소 200번이상 300번까지 밟는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면발이 살아있다고 탄력이 넘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주 남다른 발언을 했다.
“정성들인 만큼 밀가루는 반응을 합니다.”
밀가루도 밟으면 반응을 한다. 면발이 달라지게 탱탱하고 쫄깃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얼마나 반응을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 신구약 66권이 문제가 아니고, 성경을 읽고, 말씀을 읽는데 정성이 없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보라. 미물의 밀가루도 밟으면 반응하고 주무르면 반응하고 면발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만물의 영장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얼마나 반응하는가? 하물며 밀가루보다 못하지는 않는가?
성경을 읽지 않는 이유- 편리함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요즘 너무나 편리한 시대를 살고 있다. 성경책은 기독교서점, 일반 서점에 가면 넘쳐난다. 읽을 게 없어서 성경을 읽던 시대는 지나갔다. 요즘 볼 것도 많고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말이다. 여러분, 우리의 편리함이 우리의 영혼을 죽이고 있음을 기억하라.
삶은 개구리 일화 –게으른 안일함이 주는 경고
삶은 개구리의 일화를 잘 알 것이다. 개구리를 삶으려고 냄비 안에 넣어놓으면 개구리는 처음에는 발버둥치다가 그 물이 점점 따뜻해져 오는 것을 보면서 일종의 사우나하는 것으로 안일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물이 너무 뜨거워 자기가 죽을 것 같다고 느끼면서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그땐 더 이상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안일함과 나른함의 노예가 된 개구리는 결국 삶겨져 죽고 만다. 하나님의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편리함에 젖어서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도 삶은 개구리의 형국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편리하게 읽고 있는 성경은 원래 보통 사람은 읽을 수 조차 없었던 성경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성경을 번역하여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목숨을 건 틴데일
오래전에 개인이 성경을 갖는 것이 금지되어 있던 때였다. 1526년 윌리엄 틴델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을 당시에는 다른 유럽국가들에서 영국으로 번역된 성경을 밀반입해야 했다. 당시 영국에선 성경번역을 금지했다. 오직 라틴어 성경만 허용되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왜? 평범한 사람들은 라틴어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다. 틴데일은 모든 성도들이 성경을 읽을 자유와 책임이 있음을 알고 자기 목숨을 걸고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고, 그는 결국 이 일로 인해 사형을 당해야 했다.
성경을 번역하다가 7년만에 진이빠져 죽은 헨리 마틴
1805년에 인도에 갔었던 헨리 마틴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후에 파키스칸과 이란에도 갔었다. 그가 그곳에 도착했을때는 25살 밖에 안되었는데 매우 열심히 일한 결과 7년 안에 신약을 아랍어, 페르시아어, 그리고 우르두어 등 3개 국어로 번역했다. 그는 그 작업을 하느라 너무나 진을 빼서 32살에 죽고 말았다고 한다.
오늘날 틴데일이 모든 성도들이 성경을 자유롭게 읽게 하기 위해 순교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헨리 마틴이 7년 동안 진을 다 빼서 죽어가면서까지 번역되고, 만들어진 성경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읽는 것을 무엇보다도 지루해하고 싫어하는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람마다 성경을 쥐어주고 그들의 언어로 번역하면 무엇하는가? 읽지를 않고 있으니 말이다.
성경을 사랑하라!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그냥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우리 손에 쥐어져 있음을 기억하라. 중국에서 먼저 성경을 접한 조선시대의 한국의 상인들이 이 성경을 한국으로 가져올려니, 입국심사 절차에서 분명히 검열에서 발각될 것을 알고는 머리를 짜냈다. 자기들의 보부상들이 매는 쐐끼줄을 이 성경책 종이로 둘둘 말아서 만들어서 검열을 피했다고 한다. 그리고서, 조선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성경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에 보면, 북한의 지하교회 교인들이 성경을 소지하는 것이 발각될까봐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 뒤에다가 숨겨놓고 성경을 훔쳐보곤 하는 것이었다. 지하교회 교인들의 열정과 정성, 그리고 순교의 제물들이 우리 한반도의 통일이 가져올 줄 믿는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계획과 뜻 가운데 복음통일이 되길 소원한다.
성경이 만든 사람, 존 워너메이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성경이 만든 사람, 존 워너메이커’란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성경이 만든 사람, 존 워너메이커의 삶은 많은 신자들에게 도전을 준다. 특별히 성경책에 관한 일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랜스버드 주일학교를 다닌 존은 성경책을 처음 만난 것은 10살때였다. 누구보다 성경공부에 열심을 냈던 존은 자신만의 성경책을 너무나 갖고 싶었다. 요즘은 성경책이 남아돌지만 당시 존 워너메이커의 동네는 너무 가난한 시골이라 성경책을 소유한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다. 성경책이 필요한 친구에게 교회학교 선생님이 성경책을 저렴한 가격에 사다준다는 말에 존은 자신이 성경책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헐락 선생님에게 성경책 값으로 가져다 준 돈은 고작 37센트였다. 존은 그 가격이면 큰 감자자루를 살 수도 있으니 성경책은 거뜬히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경책 값은 무려 2달러 75센트였다. 10살짜리 소년에게 2달러 75센트는 아득히 멀기도 먼 금액이었다. 헐락 선생님도 선물로 성경책을 사다주고 싶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존은 일단 성경책을 사기로 하고 남은 금액이 얼마인가? 2달러하고도 38센트를 갚아야 할 생각으로 예배시간에 머리가 복잡했다. 존의 아버지는 벽돌공이었다. 아버지가 만든 벽돌 100장을 날라야 고작 2센트를 받았다. 존은 아버지에게 자초지정을 이야기하고 아버지의 일을 도우기 시작했다. 성경을 구입한 지 정확히 1년 반 되는 주일에 선생님께 마지막 남은 성경책 값 18센트를 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오늘이 성경책 값 마지막으로 내는 날이예요. 이제 이 성경책은 진짜 제 것이 되었어요.”
“존, 네가 결국 해냈구나!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이제부터 성경을 열심히 읽어서 그 말씀대로 열심히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를 축복하실거야!”
존은 딤후 3:15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을 자기 것으로 가지는 것부터 독특했다.
존은 성경을 어릴때부터 이렇게 알았던 것이다. 그는 정성을 들여 밀가루를 밟는 그 달인처럼 성경을 대했던 것이다.
외상으로 구입한 성경책값을 1년 반 동안 소위 말하자면 노가다를 해서 책값을 갚은 이 존 워너메이커! 우리에게 이러한 성경에 대한 애정이 있었음 좋겠다. 벽돌 100장을 날라야 2센트를 받았다. 그러면 1달러는 100센트, 존이 남은 성경책 잔금은 2달러 38센트니깐, 238센트이다. 100장 날라야 2센트니깐. 총 존이 나른 벽돌의 개수는 몇 개인가? 238/2=116 X 100장=11600장, 10세 소년이 11600장을 1년 반동안 나르면서 성경책 값을 갚은 것이다. 정말 이런 존 워너메이커를 하나님께서 축복 안하시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오늘날 우리는 성경책을 함부로 대한다. 없으면 또 사면 되고, 성경책 안 들고 오면 비치용 성경책 보면 된다. 자기만의 성경책을 가지는 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특별한 표시도, 색칠도, 메모도 없이 늘 깨끗한 성경책이 출판될 당시 그대로, 아주 깨끗하게 보관해두는 것에 의의를 둔다. 마치 그렇게 해서 나중에 중고로 다시 팔 것처럼 품질 최상으로 해서 성경책을 다룬다.
존 워너메이커는 이야기했다.
“성경을 주일에만 사용하는 사람은 나약한 인생을 살게 된다.”
딤후 3:15을 읽자!
존이 다니던 제일독립교회는 오래된 건물이라 비만 오면 지붕이 샜고, 교회 마당은 포장이 안 돼서 진흙탕이 되기 일쑤였다. 사람들의 양말과 구두가 젖는 것은 당연했고, 예배당은 지저분해지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교인들은 불평과 원망만 하고 아무도 대책을 세우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존은 이 안타까운 상황을 보고서 교회 마당 입구에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 존은 벽돌전공이었지 않는가! 마침 아버지가 벽돌공장에 계시니 벽돌 구하는 일은 누구보다 쉬웠다. 다음날부터 존은 하루 7센트의 자기 임금을 일부를 쪼개어 벽돌 한 장씩을 사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이른 새벽에 교회 마당 입구에 깔기 시작했다. 그 넓고 긴 교회 마당 입구를 어린 존이 혼자서 포장하려면 족히 2년도 넘게 걸릴 일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한 달도 채 못 되어 일어났다.
어느 날, 제일독립교회 담임목사인 존 챔버스 목사는 몇 주일째 벽돌까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아침에 숨어서 지켜보던 가운데, 주일학교 다니던 13세의 존 워너메이커가 열심히 벽돌을 날라 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일찍 아무도 모르게 벽돌을 날라 길을 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들도 하지 못한 일을 어린 존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다음세대 여러분! 어른들은 엄두도 못 내는 일을 여러분은 분명히 할 수 있다. 여러분이 바로 제2의 존 워너메이커가 되면 되지 않는가!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회 여러분이 바로 그 주인공이 되라! 어른들, 기성세대는 보지 못하는 부분을 여러분의 눈동자로 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거기에 여러분을 헌신하고 투자하라! 성경위에 비전을 세워보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해주실 것이다.
담임목사인 챔버스 목사는 너무나 감동이 되어서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어린 존이 어른들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존을 꼭 축복하셔서 삼심 배, 육십 배, 백 배로 갚아주세요!”
챔버스 목사는 주일 설교 때 모든 교인들에게 존이 한 일을 이야기했고, 교인들은 존의 신앙과 헌신에 감격하며 자신들의 이기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반성했다. 그리고 모두들 힘을 합쳐 교회마당 입구를 포장뿐만 아니라 낡은 교회 건물을 헐고, 새로운 교회를 신축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린 존과 그의 벽돌 한 장 한 장이 만들어낸 역사였다.
우리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의 용기가 어른들을 움직일 수 있다. 우리교회는 다음세대의 부흥을 위해, 다음세대를 세우는 목회방침을 가지고 전교인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다음세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 교회에서도 존 워너메이커가 나왔음 좋겠다. 저는 금요한밤의 기도회때 안수기도할 때마다 항상 존 워너메이커와 같은 친구가 배출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아이들이 제가 침을 튀기면서 기도하는 그 기도소리를 잘 들었는지 모르지만, 늘 존 워너메이커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워너메이커가 사업을 시작한 1800년대에는 아직 상점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구멍가게 수준의 소매업이 주류를 이뤘던 열악한 시대였다. 상점주인들이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신문이나 방송을 이용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존 워너메이커는 W & B(워너메이커 & 브라운의 오크 홀 의류점)라는 마크의 포스터를 도시 방방곡곡에 붙여 홍보를 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백화점이 태동하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백화점 왕으로 우뚝 선 존 워너메이커가 백화점 50주년 기념식 날이 되었을 때였다. 직원이 1만 3천 명이 넘었다. 직원들이 존 워너메이커 회장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감사의 맘을 선물로 전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50주년 깜짝 이벤트로 작은 봉투 하나를 워너메이커에게 전달했다. 워너메이커는 생각지도 못한 직원들의 애정이 담긴 선물을 받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선물 봉투는 과연 무었이었을까? 여러분 같으면 무슨 선물을 했을까? 사장님에게 말이다. 그가 봉투를 연 순간 뜻밖에 그 봉투에는 땅문서가 있었다. 바로 존 워너메이커가 태어난 시골집 땅문서였다. 직원들이 회장의 어릴 적 추억이 서린 고향집을 어렵게 구입해 선물한 것이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린 존 워너메이커는 그 자리에서 감사의 표시로 은퇴한 직원을 위한 복지시설로 사용할 30만 평의 땅을 기증하였다. 그 복지시설은 ‘하워드 S.레지던스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직원들이 이곳에서 노후를 즐겼다. 또한 직원들이 선물해준 자신의 출생지의 땅에는 평생 동지로 동고동락했던 오그덴을 기념하기 위해 ‘로버트 C.오그덴 병원’을 설립하였고, 직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 저소득층들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성경속에 비전을 세운 존 워너메이커! 그의 선한 영향력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성경이 주는 생명력을 공급받자!
연어가 강상류를 향해 돌진하면서 역류하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연어가 그렇게 물살을 가르며 올라갈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생명을 잉태하기 위함이 아닌가! 자신의 알을 낳기 위한 절대절명의 몸짓이 아닌가!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물고기의 몸짓이 그러할진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과연 얼마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가?
오늘날 한국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은 결국 우리의 문제가 성경으로 돌아가는데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과 교회가 달라야하지 않는가? 자기 영혼의 문제를 안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늘 자숙하며 돌아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아진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도 조금은 더 성숙되지 않을까? 성경 속에서 비전을 세워가는, 성경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제2의, 제3의 존 워너메이커, 윌리암 틴델이 우리 교회에서 나오길 전심으로 소원한다.
성경은 서로 다른 저자, 시대와 배경, 사람들, 등장인물들이긴 하지만 이 성경이 서로 통일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게 하시고 하나님이 모으셨기 때문이다.
엡 4:4-6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만유를 자기 아래에 두고 통일하시고 완전한 통일체로 만드신 하나님의 솜씨! 말씀도 마찬가지! 1500년동안 쓴 글이 어찌 통일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성령의 영감이 바로 그 이유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때마다 맛이 다른 이유도 성령의 역사 때문이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여기서 '거하라'의 헬라어 ‘메노’는 일시 체류가 아니라 장기 거주를 의미한다. 곧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진리 안에 머물라는 의미이다.
결론
이처럼 능력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곁에 두고서도 그 능력을 삶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됩니까?
1) 읽지 않기 때문이다
2) 읽어도 구미에 맞는 취사선택 때문이다. 십자가는 거부, 고통은 거부!
예레미야 42: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내가 좋고 좋지 않고가 아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결정적일 때 절대 믿지 않는다.
4) 행치 않는다. 우리는 말씀을 행할 때 역사가 일어난다.
마리아는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그 말씀을 믿었다. 사내를 알지 못하지만 능치 못한시는 말씀을 믿었던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처녀가 잉태하면 돌에 맞아 죽는데 말이다.
5) 여러분은 앞으로 이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 어떻게 하기로 결단했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읽는 것으로, 구약 1331페이지, 신약 423페이지, 신구약을 합치면, 총 1754페이지입니다.
- 앞뒤 한 장(2페이지) –877일이 걸린다.
- 앞으로 3페이지-585일 1년 7개월
- 앞으로 4페이지-438일
- 앞으로 5페이지-351일
- 10페이지-175일, 반년이면 된다.
성경이 이렇게 방대해보이지만, 재밌는 소설 읽듯이 읽으면 80시간 밖에 안 걸린다. 주일 빼고 매일 15분 동안 성경 읽으면, 1년이면 90시간이면, 매년 한독할 수 있다. 2박 3일 성경통독시간: 61시간 30분 동안 일독이 가능하다. 그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해야 능력이 나타난다.
나는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어떤 관계를 맺겠다는 고백과 결단을 적어보자!
-성경 앞 쪽에다 적어보자.
나는 앞으로 매일 성경의 몇 페이지를 읽어나갈 것을 약속합니다.
- 년 월 일 그리고 자신의 이름과 사인을 하라! 그리고 옆에 친구들, 5명이상의 증인의 사인을 받으라! 그리고 함께 기도하자!
이럴 땐 조심하세요
"만약 여러분이 기도보다 더 큰 즐거움을 발견한다면,
성경보다 더 좋아하는 책을 발견한다면,
교회보다 더 좋은 장소를 발견한다면,
주님이 베풀어 주신 식탁보다 더 좋은 식탁을 발견한다면,
예수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천국보다 더 좋은 희망을 발견한다면 여러분은 신앙에 경보를 울려야 합니다"
-워너메이커의 글 중에서-
오늘은 디모데후서 3장 14-17절의 본문을 가지고 <성경 위에 비전을 세우라>라는 주제로 설교한 내용을 포스팅했습니다. 성경을 위해, 성경번역을 위해 순교했던 틴데일, 헨리 마틴, 그리고 성경을 사랑했던 존 위너메이커의 일생도 함께 나눠보았습니다.
'설교 > 디모데전.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모데전서 4장 11-16절, 본이 되라 (1) | 2023.02.27 |
---|---|
디모데전후서 및 디도서 개괄 (0) | 2023.02.24 |
디모데후서 4장 6-8절,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0) | 2023.02.22 |
디모데후서 4장7-8절, 데살로니가후서 2장15-17절, 나는 예수 따라가는 (1) | 2023.02.22 |
디모데후서 1,2장 강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0) | 2022.10.02 |
댓글